※[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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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2022년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2년 내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초의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한다”는 결의안에 합의했다. 유엔총회는 그동안 해양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논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생산부터 사용, 폐기 등 처리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생애 전주기'를 다루기 위한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협약 마련에는 현재까지 195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4차 회의는 지난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진행됐다. 오는 11월 한국 부산은 마지막 5차 협상회의를 유치한다. 로이터통신은 “지구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기로 합의한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플라스틱 협약이 기후 온난화 방지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협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라스틱은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대부분의 '버진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추출된다는 점에서다. 플라스틱은 원유 증류 과정에서 나온 나프타나 액화석유가스(LPG)를 고온 스팀으로 열분해해 만들어진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기초 재료로 삼는다. 최근 미국 연방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산업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까지 20%로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플라스틱의 근본적인 문제에 더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 등의 석유화학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플라스틱의 원료물질이 과잉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료물질의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너무 낮아지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 플라스틱 대체재의 경제성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美·中 모처럼 손잡은 이유 있었네…유럽은 '결사반대'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이 추세대로면 2060년엔 플라스틱 생산량이 현재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석유화학 생산량 증가의 60% 가까이를 중국이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는 석유화학을 전체 산업망의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기간산업으로 보고, 기초유분 자급률을 100%까지 제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도 지난해 석유화학 생산량 증가의 20% 가량을 담당했다. 셰일업체들이 원유 생산량을 사상 최대치로 늘리면서다. 이에 미국과 중국은 플라스틱 원료 물질의 생산량 감축을 반대하는 측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과 일본, 섬나라 등 60개국은 높은 목표 연합(High Ambition Coalition)에 속한다. 이들 연합은 “재활용 규칙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비경제적 해결책”이라며 “1차 플라스틱 폴리머(PPP·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고분자로 결합한 물질)의 생산과 소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유럽이 자칫 석유화학 산업을 옥죌 수도 있는 강도 높은 플라스틱 규제를 주장하는 데에는 유럽에서 석유화학이 쇠퇴하는 산업군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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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높은 에너지 비용 ▲에틸렌 등 원료물질의 소비량 급감(하기 자료 참고) ▲정책적 무관심 등으로 인해 석유화학 기업들이 자산을 매각하거나 중국 등으로 생산 기반을 이전하고 있다. 기초유분의 수요량이 급감한 것은 유럽인들이 플라스틱 소비를 줄여서가 아니다. 나프타를 사용해 에틸린 등을 생산하는 스팀 크래커의 가동 비용이 너무 높아지는 등 직접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자 미국, 아시아 등에서 수입량을 늘리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지난해 기초유분 생산량은 1975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기 침체와 에너지 위기 속에서 EU 당국의 기조가 반(反)산업적이란 판단에 따라 바스프 등 유럽 석유화학 기업들은 역내 투자에 제동을 걸고 설비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고 있다. 즉 유럽의 선도적 행보는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적 입장에 '산업적 현실'이 맞물린 결과라 이해할 수 있다. 원자재시장 분석기업 ICIS는 “유럽 당국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유럽 석유화학 기업들은 '몽유병 상태'로 해외를 떠돌게 될 것”이라며 짐 랫클리프 이네오스 회장이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의 표현을 인용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