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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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무조건 제일 싼 거로 찾았거든요. 요즘엔 가격표에 작게 쓰여있는 '100g당 가격'을 제대로 봐요. 가격만 따지다가 포장지만 요란하고 중량이 적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4일 오후 서울역 인근 대형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던 30대 박모 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제품 하나 담는 것도 신중히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란 업체가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의 양을 줄이는 현상을 말한다. 원재룟값 상승과 불경기가 맞물려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에 강한 저항을 느끼는 것을 알고, 가격은 유지하되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꼼수로 인식되면서, 최근 식품업계에서는 가격은 유지하면서 중량을 다시 늘리는 '역(逆)슈링크플레이션'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쟁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 상황을 역이용해,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상품이라는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사진=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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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농심켈로그는 4월 중순 컵 시리얼 4종 제품의 중량을 30g에서 40g으로 33.3%씩 늘렸다. 이 제품들은 정가는 1900원으로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오뚜기도 지난달 10일 냉면사리와 고명을 증량한 여름면 제품을 리뉴얼 출시했다. '김장동치미 물냉면'과 '함흥비빔냉면'에 포함된 면사리 1인분의 양은 150g에서 165g으로 10%씩 늘렸다.

편의점 업계도 역슈링크플레이션 전략에 뛰어들었다. GS25가 지난 1~4월 출시한 도시락 제품의 평균 중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늘어났다. 밥과 반찬은 각각 2.3%, 19% 늘렸다. CU도 지난달 8일 990원 나쵸와 치즈볼 과자를 출시하면서 '기성 과자류에 비해 가격은 30% 낮추고 중량은 20% 늘렸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역발상으로 가격 정책을 펼치는 제품들에 소비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4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만난 60대 소비자 이모 씨는 "'한 번 오른 물건값은 절대 안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내용물이라도 늘려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다"면서 "외식이 줄어 집밥 해 먹는 일도 많아 용량이 큰 제품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해외 식품업계서도 역슈링크플레이션의 성공 사례가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뉴스와이어 캐나다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캐나다의 피자 프랜차이즈 기업 '피자피자'는 7월부터 피자 가격 유지하고 크기 키워 지난해 3분기 매출을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9% 증가시켰다.

이후 지난해 11월 컨퍼런스콜에서 폴 고다드 피자피자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이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고객에게 대안을 제공하고 싶었다"며 유통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 관행을 직격하기도 했다.
가격은 유지하되 내용물을 증량했음을 포장지로 홍보하는 과자들. /사진=김영리 기자
가격은 유지하되 내용물을 증량했음을 포장지로 홍보하는 과자들. /사진=김영리 기자
업계의 역슈링크플레이션 정책과 관련,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취할 경우 단발적으로 기업의 수익 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인 신뢰 관계 구축에는 방해가 된다"면서 "내수 시장 상황은 신규 고객을 발굴하기에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에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장이 됐다"며 역슈링크플레이션 상품이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젠 '누가 더 단골을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라며 "여기에 가격 중심으로 물건을 사는 불경기형 소비 패턴까지 맞물려, 업계가 역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취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