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무덤·석탑 둘러싸인 마을 변화 담은 책 '서악마을 이야기'
돌봄 사업에서 시작한 마을 가꾸기의 힘…"문화유산 활용이 보존"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신라 천년고도, 경주의 서쪽. 옛사람들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이 있다 해서 '무열왕릉 동네'라 불렀다.

무열왕릉 너머로 대형 무덤 4기가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옛 무덤이 줄줄이 있다.

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보물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과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도 만날 수 있다.

역사와 문화유산에 둘러싸인 조용한 동네, 경주 서악마을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던 이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건 2010년부터였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방치돼 있던 닭장을 치우고, 곳곳에 볼품없이 산재한 대나무 잡목을 걷어냈다.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빛바랜 푸른색 패널 지붕에는 검은 페인트를 칠했고, 집마다 담장도 깔끔하게 고쳤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을은 사람들이 모이는 체험 관광 마을이 됐다.

구절초가 피어나는 10월이 되면 하루 평균 3천여 명이 마을을 찾아 꽃밭과 음악회를 즐긴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서악마을 이야기'(뭉클스토리)는 문화유산과 지역 주민의 삶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고민한 서악마을의 14년 변천사를 다룬 책이다.

서악마을 문화유산 경관 정비와 관리를 맡아 온 신라문화원의 진병길 원장(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양희송 해리하우스 대표가 글로 정리했다.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책은 2010년 신라문화원이 서악서원 고택 숙박 체험 행사를 시작한 뒤, 마을의 문화유산과 주변을 정리하고 문화유산을 활용하고자 한 노력을 찬찬히 풀어낸다.

서악동과 선도산 일대의 고분군, 보물 석탑과 마애여래삼존입상, 서악서원과 도봉서당 등 마을의 주요 유산을 소개한 뒤 이들이 10여년 새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는다.

진 원장은 문화유산 돌봄 사업이 변화의 실마리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돌봄 사업은 국보, 보물, 사적 등 국가유산(옛 문화재)을 상시로 관리해 훼손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업으로, 신라문화원은 2010년부터 경북 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신라문화원은 2011년 서악동 삼층석탑 일대를 돌봄 대상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뒤, 주변 40m 반경의 대나무와 잡목을 제거하고 비탈을 평탄하게 정비하면서 마을 정비에 나섰다.

주변의 사유지 밭은 장기 임대해 국화, 구절초 등을 심었다.

자연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지는 마을로 바꾸기 위해서다.

"10월이 되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꽃밭 사이를 취한 듯이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서악마을 구절초 꽃밭 거닐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
책은 2017∼2018년 KT&G의 지원을 받아 마을 가꾸기를 본격화한 이후 과정도 조명한다.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담장을 낮추고, 다양한 행사를 열며 관광객이 모이는 명소가 된 과정도 보여준다.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진 원장은 책 곳곳에서 '활용이 보존이다'는 철학을 강조한다.

"문화유산을 잘 활용해보자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한 뒤 서악마을은 문화유산으로 인해 불편하고 피해 보는 마을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인해 혜택을 누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책 추천사에서 "경주 서악마을은 국가유산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미리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 청장은 "국가유산청이 그리는 미래는 국가유산이 지역주민께 불편을 주는 게 아니라 국가유산이 있어 해당 지역이 문화적·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책을 판매한 수익금은 서악마을 가꾸기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320쪽.
무열왕릉 동네는 어떻게 '핫플'이 됐을까…경주 서악마을의 변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