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해서체) /작가 제공
<반야심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해서체) /작가 제공
선조들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금빛으로 되살아났다. 오는 12일부터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사경(寫經)으로 본 유(儒)·불(佛)·선(仙)' 전시에서다. 일흔 평생 한학자이자 서예가의 길을 걸어온 월천 권경상 작가의 생애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경전 총 35점을 사경한 작품이 걸린다. 사경은 불경을 보급하거나 내면을 수양하기 위해 경전을 베끼어 쓰는 의식을 뜻한다. 작가가 10년에 걸쳐 필사한 <묘법연화경>을 비롯해 <금강경>, <미륵경> 등 불교 경전이 32종에 이른다. 이 밖에도 유학 경전인 <대학>과 <중용>, 도교의 뿌리가 되는 <노자> 등이 전시된다.
<반야심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전서체) /작가 제공
<반야심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전서체) /작가 제공
권 작가가 선보인 사경은 도합 35만자(字)에 이른다. 글자 하나하나를 정자로 눌러쓴 해서(楷書)가 주축을 이루고, 중국 고대 문자체인 전서(篆書)와 소박한 형태의 예서(隸書)가 가미됐다. 특히 <반야심경>과 <묘법연화경>의 도입부는 금가루를 입힌 '금색 사경'으로 제작됐다. 이러한 형태의 '금자사경'이 조선 초기 이후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학>과 <중용> 등 해석이 어려운 경전에 대해선 해설도 덧붙였다. 작가가 전시 기간에 맞춰 출간한 번역본에 선현들의 이론을 망라한 주석을 수록하면서다. 여원구 동방연서회 회장은 전시 축사에서 "경전 35종의 수많은 글자를 각주를 붙여 사경한 것은 초유의 일"이라며 "사경의 교본으로서 한국서법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믿는다"고 평했다.
<묘법연화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 /작가 제공
<묘법연화경> 도입부를 다룬 '금색 사경' /작가 제공
권 작가가 처음 붓을 집어 든 건 6세 때 일이다. 선친의 지도로 서예와 한문을 배운 게 시작이었다. 결혼한 뒤 서예의 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 문하에서 배우고,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위원과 동방대학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도 성남에 동방한문연수원과 월천서예연구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권 작가는 "간송미술관에서 평생을 보내신 최완수 선생의 권유로 틈틈이 (사경을) 했다"며 "지난 2019년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두문불출하고 사경에 몰입하게 됐으니, 사경과는 평생 이어질 인연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18일까지다.
권경상 '반야심경' 시작 부분 /작가 제공
권경상 '반야심경' 시작 부분 /작가 제공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