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1일 SK는 최태원 회장을 SK(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1998년 9월 1일 SK는 최태원 회장을 SK(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SK그룹 사람들 힘들다죠?"

다른 대기업 임직원들은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묻는다. 우리 회사에 사고가 터지면 입이 바싹 마른다. 하지만 남의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팝콘각'이다. SK그룹 '세기의 이혼'은 그동안 재계를 뒤흔든 사건의 축약판이다. 적잖은 대기업들이 겪은 '경영권 분쟁', '오너가 리스크', '정경유착' 등이 모두 녹아 있다.

SK그룹은 이번 이혼 소송의 결과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SK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점과 상당한 자사주 보유 지분을 문제 삼을 채비다. SK는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 '우호주주(백기사)'에 자사주 지분 24.4% 상당수를 넘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 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SK그룹의 우호주주로 남겠다'고 발언한 보도를 부인했다. 노 관장 측 법률 대리인은 지난 1일 "노 관장은 SK그룹의 선대회장 시절 좋은 추억만 갖고 있어 계속 우호지분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노 관장은 이튿날 한 언론에 "내 언어가 아니다, 정리되면 말하겠다"며 SK그룹 우호주주로 남겠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앞서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달 30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주식도 분할 대상'이라며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0억원가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혹은 SK㈜ 지분을 유동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그만큼 대주주의 지배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 노 관장이 1조3800억원의 자금을 바탕으로 SK 주식을 사들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SK 경영권을 흔들기 위해 노 관장에게 여러 세력이 몰려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만큼 SK그룹의 경영권 위협도 커질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 틈을 타서 SK그룹에 대한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4일 SK㈜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현재 SK㈜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3배로 극도로 저평가받고 있다. 저평가의 원인에 대해 SK㈜가 보유한 자사주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 회사의 자사주는 1805만8562주(지분율 24.4%)에 달했다. 지난 5일 종가(16만4000원)를 반영하면 SK㈜가 보유한 자사주 가치는 2조9616억원에 이른다.

자사주는 통상 기업의 자기자본을 계산할 때 자사주는 장부 가치만큼을 차감한다. 그만큼 주주의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소각을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 투자회사 돌턴인베스트먼트도 2022년에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돌턴과 행동주의 펀드 등이 연합해 SK를 공격하는 이른바 ‘늑대무리(wolf pack) 전략’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가 자사주를 팔지 않고 보유하는 배경은 경영권 분쟁의 악몽 때문이다. 미국 헤지펀드인 소버린은 2003년 SK㈜ 지분 14.99%를 매입해 경영권을 흔든 바 있어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다. 하지만 경영권 공격이 있을 땐 의결권을 되살릴 수 있다. 특수관계인이나 백기사에게 지분을 넘기는 방법을 통해서다.

SK그룹은 이번에 자사주를 활용해 이 같은 외부 위협에 맞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SK는 앞서 2000년대 국민은행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서로의 백기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겪는 고려아연, 한진칼은 물론 4대 금융지주, 포스코그룹, 네이버 등을 SK 백기사로 거론하는 중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