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사가 모든 주주를 한 번에 챙겨야 한다"는 위험한 발상
최근 정부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총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으로 도입한 국가는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주 정도에 불과하다. 과연 이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은 1998년 상법 개정 시 신설됐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항 해석에 대한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개정안은 혼란을 가중할 것이다.

우선 회사와 이사는 직접적인 고용 관계이므로 이사가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는 주주에게까지 충실의무를 부담할 근거는 부족하다. 또한 주주는 회사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이미 회사의 이익을 간접적으로 누리고 있으므로, 굳이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더하는 것은 실효성이 낮다.

법이 개정되면 이사는 앞으로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한다면 의사결정이 수월하게 이뤄지겠지만, 불일치하면 이사가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대주주, 소액주주, 기관투자가 등 주주 전부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이사회는 주주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소극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이는 주주에게도 손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이사회의 사법 리스크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주가 하락 등으로 손실을 본 소액주주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근거로 주주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회사가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임원배상책임보험 비용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회사의 비용 지출이 커질수록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은 줄어든다.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자는 취지의 법 개정이 오히려 그 이익을 축소하는 꼴이다.

이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만큼 이를 면제할 수 있는 조항이 함께 도입돼야 한다. 이사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선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이를 ‘경영판단의 원칙’이라고 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상법에 명문화되면 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막고 이사의 의사결정에 폭넓은 재량을 부여할 수 있다. 이사가 적극적이고 과감한 경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진정한 기업가치 성장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