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26조원과 5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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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로 26조원가량을 지출했다. 같은 해 초·중·고교생 5만2000여 명은 학교를 자퇴했다. 전체 학생 중 1%가 학교를 떠난 것이다. 고교생의 학업 중단율은 1.9%에 달했다. 내신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이 시험 준비에 집중하려고 자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강남 지역 자퇴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대치동을 정점으로 선행학습 위주 사교육에 1년간 26조원을 썼고, 이것도 모자라 5만 명이나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게 현실이다. 국가 1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웃도는 비용이 국·영·수 선행학습에 들어갔고, 매년 한 개 읍(邑) 인구만큼의 학생이 학교를 떠났다.
올해는 스승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겹쳐 스승의 날 행사가 예년보다 더 초라했다. 2016년부터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으로 제자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조차 기준이 엄격해지다 보니 행사 자체가 움츠러들었다.
스승의 날은 교사들이 제정을 건의한 것은 아니고, 60여 년 전 중앙정부에서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의 생신인 5월 15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요즘 교사들은 이날을 아예 기념일로 치르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고, 교사들은 온갖 행정 처리에 내몰리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커진 것 같다.
대학이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교수는 논문 실적 경쟁에 내몰렸고, 대학 총장들의 졸업식 축사가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되고 울림을 주는 시대는 먼 옛날이 됐다. 등록금이 10년 이상 동결되고 학생 정원조차 대학이 알아서 정하지 못하는 등 정부는 대부분 대학의 존폐를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정부가 R&D 지원 등 정책 수단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우리나라 대학은 모두 공립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생존에 급급한 대학이 스승의 날에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이다. 캠퍼스에 스승의 날은 없어진 지 오래다. 스승으로 추앙받는 교수도 이제는 보기 힘들다.
스승의 본분은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고,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부처도 대중에게 지식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법을 자주 설법했다. 부처와 스승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지혜를 알려준 분들이다. 매년 수만 명의 학생이 자퇴하게 만들고, 선행학습에 학부모들을 볼모로 잡아넣는 게 현실이니 스승의 날을 말하는 것조차 버겁다. 당연히 스승이 보일 리도 없다. 부처님 오신 날과 대비되는 스승의 날을 지나고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을 고통에 내몰기만 하는 현실이 안쓰럽다.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교육 문제도 껄끄럽다. 이것도 우리 사회의 업보일까.
대치동을 정점으로 선행학습 위주 사교육에 1년간 26조원을 썼고, 이것도 모자라 5만 명이나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게 현실이다. 국가 1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웃도는 비용이 국·영·수 선행학습에 들어갔고, 매년 한 개 읍(邑) 인구만큼의 학생이 학교를 떠났다.
올해는 스승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겹쳐 스승의 날 행사가 예년보다 더 초라했다. 2016년부터 시행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으로 제자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조차 기준이 엄격해지다 보니 행사 자체가 움츠러들었다.
스승의 날은 교사들이 제정을 건의한 것은 아니고, 60여 년 전 중앙정부에서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의 생신인 5월 15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요즘 교사들은 이날을 아예 기념일로 치르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고, 교사들은 온갖 행정 처리에 내몰리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커진 것 같다.
대학이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교수는 논문 실적 경쟁에 내몰렸고, 대학 총장들의 졸업식 축사가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되고 울림을 주는 시대는 먼 옛날이 됐다. 등록금이 10년 이상 동결되고 학생 정원조차 대학이 알아서 정하지 못하는 등 정부는 대부분 대학의 존폐를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정부가 R&D 지원 등 정책 수단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우리나라 대학은 모두 공립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생존에 급급한 대학이 스승의 날에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이다. 캠퍼스에 스승의 날은 없어진 지 오래다. 스승으로 추앙받는 교수도 이제는 보기 힘들다.
스승의 본분은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고,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부처도 대중에게 지식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법을 자주 설법했다. 부처와 스승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지혜를 알려준 분들이다. 매년 수만 명의 학생이 자퇴하게 만들고, 선행학습에 학부모들을 볼모로 잡아넣는 게 현실이니 스승의 날을 말하는 것조차 버겁다. 당연히 스승이 보일 리도 없다. 부처님 오신 날과 대비되는 스승의 날을 지나고 보니 학생과 학부모들을 고통에 내몰기만 하는 현실이 안쓰럽다.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교육 문제도 껄끄럽다. 이것도 우리 사회의 업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