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징병제가 부활하고 있다.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꺼낸 ‘국민복무제’가 오는 7월 4일 영국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18세가 되는 영국 국민은 1년간 군사훈련을 받거나 지역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군사 훈련을 받는 인력은 3만 명으로 제한된다. 2022년을 기준으로 18세가 된 영국인 77만5000명의 약 3.8%다.영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 중 징병제를 시행했으나 1960년 완전 폐지했다. 64년 만에 징병제가 다시 논의되는 것은 러시아 중국 등이 주변국에 무력 위협을 가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수낵 총리는 지난 25일 참전용사들과 만나 “(지금의) 세계는 지난 수십 년보다 더 위험하고 도전적”이라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있고, 이들(의 위협)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독일에서도 징병제 부활 논의가 뜨겁다. 제1야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은 지난달 당 회의를 통해 2011년 폐지된 징병제를 복원하기로 의결했다. 앞서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지난 3월 “독일에 징병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여름까지 징병제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부활하는 징병제의 특징은 남녀가 모두 병역 의무를 진다는 점이다. 덴마크는 지난 3월 의무복무 기간을 4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리고 대상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확대했다. 스웨덴은 징병제를 폐지한 지 7년 만인 2018년 남녀가 모두 복무하는 징병제를 부활시켰다.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영국은 National Health Service (NHS)라는 공공의료 제도를 운용하면서 한때 ‘의료 천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영국 국민과 거주자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NHS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이면서 동시에 지역 간 건강 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왔다.하지만 최근 NHS는 자금 부족, 인력 부족, 노후한 인프라스트럭처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NHS 파산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가 하면, 수술을 위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면서 국민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이런 분위기 가운데 최근 한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NHS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하게 쓰였는데, 잘못된 의료 체계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느낌이다.<여기서 일하기 위해 당신도 미칠 필요는 없습니다(You Don’t Have to Be Mad to Work Here)>. 책 제목부터 재치가 넘친다. 에든버러 축제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수상 경력이 있는 벤지 워터하우스는 NHS 정신과 전문의로서 의료 최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의학계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분야인 정신과에서 생겨나는 흥미진진한 사례가 이어진다.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왜 정신과 의사가 되려고 할까? 엉망진창으로 복잡하게 얽힌 삶의 해결책이 정말 의학 교과서에 있을까? 의료진, 병상, 치료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어떻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책에는 ‘청진기를 든 사회복지사’라는 오명을 듣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고단한 삶이 그려진다.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며 물 위를 걷다가 수영장에 빠져 익사할 뻔한 환자, 영국 유명 가수와 결혼하기 위해 신부 드레스를 입고 스스로 병원을 찾아온 환자, 자신이 입원한 정신과 병동이 TV 세트장이라고 생각하는 환자,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가 있다고 믿는 조현병 환자, 의사라는 직업을 숨기는 우울증 환자 등 책에는 정신과 병동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정신 질환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게 확산해 있다. “통계적으로 영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어느 시점에서든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합니다. 정신 질환은 국가 전체 질병 부담의 28%를 차지하지만, NHS 자금의 13%만 지원받고 있습니다. 정신 건강 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영국의 정신 병상은 1988년 6만7000개에서 2019년 1만8000개로 줄어들었습니다.”조현병 환자는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파라세타몰 개수를 제한하면 자살을 줄일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은 잘못됐다. 책은 정신 건강과 관련해 올바른 정보도 제공한다. 저자가 가장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정신 건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데도 이를 위한 연구나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영국 의료 체제의 허점’이다.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회고록을 통해 독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정신 건강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구체적으로 깨닫고 있다.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7월 조기 총선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여론조사에서 집권 보수당이 야당인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던진 정치적 승부수다.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오려는 노동당과 안보·경제 정책으로 막판 ‘역전극’을 노리는 보수당 간 한판 승부 결과에 따라 영국의 경제·외교 노선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수낵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회견을 열고 “7월 4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빗속에서 우산 없이 연설에 나선 수낵 총리는 “영국이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 왔다”며 “오늘 찰스 3세 국왕과 만나 다음 총선을 위해 5월 30일 의회를 해산할 것을 요청했고, 찰스 3세가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조기 총선 카드는 수낵 총리에게 ‘정치적인 도박’이나 다름없다. 당초 영국 총선은 10~11월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가 이끄는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시장 선거가 치러진 11개 지역 중 단 한 곳에서만 승리했고, 지방의회 의석은 절반 가까이 잃었다. 법률상 차기 총선은 내년 1월 28일 전까지 치르면 된다.수낵 총리가 승부수를 던진 배경에는 ‘늦을수록 불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작년 3, 4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올해 1분기 플러스(0.6%)로 전환했다. 이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3%로 영국중앙은행(BOE) 목표치(2%)에 근접했다. 이는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다. 수낵 총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를 여러분께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강한 안보와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웠다. 수낵 내각은 보수당 내부와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노동당은 14년 만에 집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다. 노동당이 가장 최근 집권한 건 1997년부터 2010년까지다. 보수당은 2010년부터 15년째 집권 중이지만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네 번 총리가 바뀌었다.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