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돈키호테’에서 청년 돈키호테와 환상 속 여인 둘시네아가 2인무를 펼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발레 ‘돈키호테’에서 청년 돈키호테와 환상 속 여인 둘시네아가 2인무를 펼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돈키호테의 꿈속. 노쇠한 모험가 돈키호테가 큐피드의 화살을 맞자 갑자기 젊은이로 변한다. 그의 옆으로 이상 속에 품어왔던 여인 둘시네아가 등장했다. 둘이 만나 환상의 춤을 추자 바질(남자 주인공)과 키트리(여자 주인공)라는 원래 주역들은 불 꺼진 듯 뇌리에서 잠시 사라졌다. 회춘한 돈키호테가 파드되(2인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를 관람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최종 리허설이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청년과 노년을 오가는 돈키호테. 마리우스 프티파의 원작 발레 돈키호테에서 구석에 앉아 마임만 하던 캐릭터가 생명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원이자 몇 해 전 안무가로 데뷔한 송정빈이 돈키호테를 재해석한 결과다. 발레 팬들은 일찍부터 “이번에 돈키호테로 변신할 무용수가 누군지 궁금하다”며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에서는 바질·키트리, 돈키호테·둘시네아가 두 축으로 극을 이끌어가며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국립발레단은 이번 공연에서 젊은 시절의 이상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원작 버전에서는 돈키호테의 꿈에 대해 치기어림, 어리석음 등으로 과소평가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꿈과 사랑을 탁월한 안무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리허설 무대는 다방면으로 분주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템포는 폭발하듯 빨랐고, 무용수들의 안무는 잽싸고 날렵했다. 속도감도 빠르고 군무 인원도 늘어나 굵직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2막 1장 돈키호테의 꿈속 장면에서는 춤을 추는 인원이 무려 24명이다. 지난해 군무 16명보다 더 많은 댄서를 기용했다. 무용수들은 스페인의 열정을 담아 손끝과 발끝에 에너지를 가득 채운 채 무대 위를 누볐다.

1막 2장의 유랑극단 신도 액자식 구성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극은 괴물이 나타나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방해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연극 속 괴물은 돈키호테가 꿈에서 본 둘시네아와 자신의 사랑을 방해한 괴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괴물로 여겨 공격하는 원작의 장면을 각색해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는 극적 장치로 활용됐다.

세기디야, 플라멩코, 판당고 등 스페인풍의 현란한 움직임도 이번 공연의 백미다. 리허설 무대에서는 고전 발레답게 신체를 아름답게 통제해야 하는 댄서의 고뇌도 읽을 수 있었다. 무용수의 팔 각도가 틀어지거나 착지할 때 발 모양이 아름답지 않으면 강수진 단장이 “다시 한번 맞춰보자”고 주문했다. 전직 수석무용수인 이영철 발레마스터는 다양한 각도로 군무를 점검하느라 무대 안팎을 오가며 코칭을 거듭했다.

리허설 끝 무렵, 2막의 파드되를 마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녀 주역 무용수(이재우·조연재)에게 안무가는 “각각 솔로(1인무) 한 번 더 해보자”고 외쳤다. 곧바로 텅 빈 객석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피루엣을 한 이재우는 수석무용수로 갈고닦은 기량과 든든한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바질 역에 이재우를 비롯해 김기완·하지석, 키트리 역에 조연재·심현희·안수연, 돈키호테로는 이유홍·이재우·변성완 등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오는 9일까지.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