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본능' 발견한 전직 부산대 교수의 '1인 식당' 폐업기 [서평]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노소동락>
손일 지음
푸른길
284쪽|1만8800원
손일 지음
푸른길
284쪽|1만8800원
퇴직한 지리학과 교수가 일식집 셰프가 됐다. <노소동락>은 그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책을 쓴 손일은 1956년 일본 오카야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1961년 귀국해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고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교수가 돼 대한지리학회장까지 지냈던 그는 2017년 부산대에서 퇴임했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정년을 5년 앞두고 조기 퇴임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내재한 ‘요리 본능’을 발견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요리 프로그램을 봤다. 레시피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아내의 권유로 교회 식당에서 200명분의 점심을 준비해 본 적도 있다.
개업을 마음먹고 요리학원에 갔다. “나이도 나이지만 경험이나 이력이 전무한 요리 분야에서 취업하거나 요리 관련 사업을 하려면, 뭔가 그럴듯한 라이선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학원은 후쿠오카에 본교가 있는 일본 3대 요리학원 중 하나인 나카무라 아카데미였다. 그 분교가 서울에 있었다. 6개월을 배운 뒤 2019년 가을 개업했다. 서울 송파경찰서 뒤에 조그맣게 가게를 냈다. 1인 식당이었다. 오뎅이 주였다. 조림, 계란말이, 가라아게, 지라시즈시, 참치회, 가이센동, 나베 등도 팔았다. 책에는 가게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러 시장을 돌아다니는 일, 카운터석에 앉은 손님에게 메뉴에 없는 요리를 건네며 슬그머니 웃었던 날, 어린 손주와 요리를 나누어 먹었던 시간 등이 그려진다.
그가 운영했던 식당 ‘동락’은 2022년 1월 폐업했다. 코로나도 이겨냈고, 맛집으로 소문이 났지만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 때는 영업시간이 짧아 몰랐다. 이후 영업시간이 연장되고 손님이 늘자 실감했다. 예순 후반 노인의 체력으로는 혼자서 음식 준비와 서빙, 청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을. 사람을 쓰기엔 인건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폐업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렇게 벌여 놓은 가게를 어떻게 정리할까가 문제였다. 사실 정리하는 것도 개업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 할지라도 설비는 기본이며, 조리 도구와 각종 그릇과 술잔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 수도, 인터넷, CCTV 등 정리해야 할 일이 개업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에 그간의 추억과 시련이 묻어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몸은 고달프고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지만, 잃기만 한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히려 얻은 게 더 많았다. 밝고 다정한 아내에게 이렇게나 강한 면이 있었는지. 가족과 둘러앉아 재료를 다듬는, 그 작은 순간이 얼마나 오래가는 기억인지. 가게 안팎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견디고 지나왔는지를 또렷하게 느꼈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정년을 5년 앞두고 조기 퇴임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내재한 ‘요리 본능’을 발견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요리 프로그램을 봤다. 레시피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아내의 권유로 교회 식당에서 200명분의 점심을 준비해 본 적도 있다.
개업을 마음먹고 요리학원에 갔다. “나이도 나이지만 경험이나 이력이 전무한 요리 분야에서 취업하거나 요리 관련 사업을 하려면, 뭔가 그럴듯한 라이선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학원은 후쿠오카에 본교가 있는 일본 3대 요리학원 중 하나인 나카무라 아카데미였다. 그 분교가 서울에 있었다. 6개월을 배운 뒤 2019년 가을 개업했다. 서울 송파경찰서 뒤에 조그맣게 가게를 냈다. 1인 식당이었다. 오뎅이 주였다. 조림, 계란말이, 가라아게, 지라시즈시, 참치회, 가이센동, 나베 등도 팔았다. 책에는 가게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러 시장을 돌아다니는 일, 카운터석에 앉은 손님에게 메뉴에 없는 요리를 건네며 슬그머니 웃었던 날, 어린 손주와 요리를 나누어 먹었던 시간 등이 그려진다.
그가 운영했던 식당 ‘동락’은 2022년 1월 폐업했다. 코로나도 이겨냈고, 맛집으로 소문이 났지만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 때는 영업시간이 짧아 몰랐다. 이후 영업시간이 연장되고 손님이 늘자 실감했다. 예순 후반 노인의 체력으로는 혼자서 음식 준비와 서빙, 청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을. 사람을 쓰기엔 인건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폐업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렇게 벌여 놓은 가게를 어떻게 정리할까가 문제였다. 사실 정리하는 것도 개업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 할지라도 설비는 기본이며, 조리 도구와 각종 그릇과 술잔은 말할 것도 없고 전기, 수도, 인터넷, CCTV 등 정리해야 할 일이 개업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에 그간의 추억과 시련이 묻어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몸은 고달프고 결국 중도 포기하고 말았지만, 잃기만 한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히려 얻은 게 더 많았다. 밝고 다정한 아내에게 이렇게나 강한 면이 있었는지. 가족과 둘러앉아 재료를 다듬는, 그 작은 순간이 얼마나 오래가는 기억인지. 가게 안팎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견디고 지나왔는지를 또렷하게 느꼈다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