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장 흐루샤 "프라하의 봄은 나에게 빈·베를린 필보다 중요"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세계적 명문 악단들이 앞다퉈 찾는 체코 출신의 젊은 거장 지휘자가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휘자”(2017)라고 평한 지 6년 만에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 중 한 명”(2023)이라고 인정한 명(名)지휘자 야쿠프 흐루샤(43)다. 이미 정상에 오른 그에겐 직함이 많다. 2016년부터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흐루샤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도 겸하고 있다. 내년부터 영국의 명문 로열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자리까지 꿰찬다.

그야말로 현재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지휘자 중 한 명인 흐루샤를 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에도 지친 기색 없이 환히 웃으며 악수를 먼저 청한 그는 “‘프라하의 봄’은 내게 단순히 유명한 클래식 페스티벌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때부터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를 보면서 지휘자로서의 꿈을 키웠어요. 축제의 전통 중 하나가 바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첫 프로그램으로 올리는 것인데, 매년 한 작품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똑같은 악보, 똑같은 지시어, 똑같은 작곡가의 언어일 지라도 지휘자, 오케스트라에 따라서 들리는 소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단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제게 소리의 특성과 연주의 질을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단 걸 알게 된 인생의 첫 번째 순간이었죠.”
젊은 거장 흐루샤 "프라하의 봄은 나에게 빈·베를린 필보다 중요"
프라하의 봄은 그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흐루샤는 “보통 지휘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빈 필, 베를린 필의 공연 포디엄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지만 나의 방향은 조금 달랐다”며 “프라하의 봄 오프닝 콘서트에서 지휘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고 했다.

“유명해져서 얻을 수 있는 명예보다 천천히 실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고, 매일 더 좋은 지휘를 하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시간이 쌓이면서 세계적인 악단을 지휘하는 일은 자연스레 따라왔고, 2010년과 2019년 드디어 꿈의 무대에 오르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막연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올해 그는 음악제에서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 ‘영광스러운 리부셰’를 이끄는 마에스트로로도 활약했다. 그는 “나는 스메타나 오페라 ‘리부셰’를 수십 년간 사랑하고 존경해 왔지만, 아쉽게도 그간 지휘할 기회가 없었다”며 “체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인 ‘리부셰’를 공연할 수 있게 된 건 내게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리부셰’는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작품이지만, 일단 들어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화적인 주제와 입체적인 인물 묘사, 1870년대 현대음악의 요소 등을 살리는 데 집중했죠.”
젊은 거장 흐루샤 "프라하의 봄은 나에게 빈·베를린 필보다 중요"
흐루샤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브람스, 브루크너 등 특정한 시대, 나라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탁월한 지휘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 그에게 비결을 묻자 이런 답을 들려줬다.

“지휘할 때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경직되는 순간 청중은 더 이상 음악적 상상을 펼칠 수 없고, 주어진 선율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언어나 시각적 장면을 떠올리기보단 악보에 담긴 감정과 인상, 분위기 등 추상적인 특성에 집중하면서 전체 음악의 흐름과 세부적 요소를 살려내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요. 지휘자로서 집중해서 다뤄야 할 구조적(기술적) 측면이 있기에 무대 위에서 완전한 자유를 바라는 게 욕심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겁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프라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