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번스타인도 찾은 '프라하의 봄'…전 세계 클래식 팬들 몰려들었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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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를 가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를 가다
“훌륭한 국제 클래식 음악 축제는 많지만 ‘프라하의 봄’은 단 하나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올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오프닝 콘서트를 맡는다는 소식을 전하며 올린 글귀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를 보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이 먼저 떠올랐을 수 있다. 체코 현지인과 음악인들 사이에선 다르다.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5월 12일 시작해 6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악 축제의 공식 명칭이 프라하의 봄이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독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창설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클래식 음악제로 꼽힌다.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레너드 번스타인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예후디 메뉴인,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까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라하의 봄에서 전설이라고 불린 음악가들이 수많은 세기의 명연(名演)을 토해냈다.
지난달 열린 제79회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현장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다. 올해 음악제에 담긴 의미는 예년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스메타나는 체코 밖에선 ‘신세계 교향곡’을 쓴 안토닌 드보르자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곡가지만, 체코 안에선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 그 자체다. 스메타나가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체코 독립에 대한 열망, 고국의 행복과 영광을 향한 염원을 담아 작곡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매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오프닝 콘서트 때마다 연주되는 전통이 있다. 올해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선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와 체코 관광청의 공식 초청을 받아 현지를 다녀왔다. 블타바강을 따라 흘러넘치던 클래식 음악의 봄날을 기록했다.
지난달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3일간 이어진 ‘제79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체코를 대표하는 공연장 오베츠니 둠(시민회관), 루돌피눔을 중심으로 프라하 일대에서 펼쳐졌다. 이 기간 열린 공연만 총 50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장 키릴 페트렌코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출신의 거장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명지휘자들과 명문 악단들이 연일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교향악, 실내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프닝 콘서트는 특별히 프라하 캄파 공원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됐다. 그 덕에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마음껏 환호하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제 기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도 열려 젊은 연주자들의 경쟁과 새로운 신예의 탄생을 직접 확인할 기회도 있었다. 올해 프라하의 봄을 달군 두 명의 주역을 인터뷰했다. 베를린필이 연주한 '나의 조국'…스메타나 200주년 기념비적 사건
올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오프닝 콘서트부터 화제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지휘 명장들이 이끌어온 독일 명문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연주로 축제의 문을 연다는 소식 때문이다. 베를린 필은 1966년 당시 상임 지휘자 카라얀과 함께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 초청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인연을 맺어왔으나, 이 페스티벌의 선봉에 서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 내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파벨 트로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감독(40·사진)은 “체코에서 스메타나의 음악은 모든 국민이 음표 하나하나를 꿰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우린 언제나 그의 작품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길 열망해왔다”며 “현시대 최고의 명문 악단인 베를린 필의 오프닝 콘서트를 수년간 구상해왔고, 올해 드디어 실현됐다”고 했다. 그는 또 “베를린 필의 ‘나의 조국’ 연주는 스메타나의 음악이 세계적 작품이란 걸 증명할 기회였다”며 “스메타나의 200번째 생일을 맞이한 해여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국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예술가의 관점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는 아주 열정적으로 스메타나 음악의 진가를 표현해냈고, 그의 손짓 아래 악단은 대단한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프라하의 봄 축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겁니다.”
2022년 8월 프라하의 봄 축제 감독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파벨 트로얀은 2년째 음악제를 이끌고 있다. 유서 깊은 유럽 대표 음악 축제의 미래를 그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프라하의 봄’이 지금껏 쌓은 명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는 동시에 현대적 시각을 끊임없이 접목하면서 지속 발전하도록 하고 싶어요. 전통을 지키려는 정신,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정신이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결합한 클래식 축제니까요. 경제적, 지정학적 상황이 격동하는 요즘이지만 그 어떤 과정에서도 최고의 예술적 경험을 전할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80주년을 맞는 내년 프라하의 봄 축제엔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얍 판 츠베덴) 데뷔 무대 등이 예정돼 있다. '프라하의 봄' 지휘는 오랜 꿈…세계적 악단 데뷔보다 더 기뻤다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세계적 명문 악단들이 앞다퉈 찾는 체코 출신의 젊은 거장 지휘자가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휘자”(2017)라고 평한 지 6년 만에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 중 한 명”(2023)이라고 인정한 명(名)지휘자 야쿠프 흐루샤(43·사진)다. 이미 정상에 오른 그에겐 직함이 많다. 2016년부터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흐루샤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도 겸하고 있다. 내년부터 영국의 명문 로열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자리까지 꿰찬다.
그야말로 현재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지휘자 중 한 명인 흐루샤를 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에도 지친 기색 없이 환히 웃으며 악수를 먼저 청한 그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내게 단순히 유명한 클래식 페스티벌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열 살이 되기 전부터 프라하의 봄 축제를 즐기며 지휘자의 꿈을 키웠어요. 축제의 전통 중 하나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첫 프로그램으로 올리는 것인데, 매년 한 작품을 반복해 들으면서 저에게 소리의 특성과 연주의 질을 구별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죠. 음악가로서의 삶을 생각하게 된 인생의 첫 순간이었습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흐루샤는 “보통 지휘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빈 필, 베를린 필의 공연 포디엄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지만 나의 방향은 조금 달랐다”며 “프라하의 봄 오프닝 콘서트에서 지휘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고 했다.
“유명해져서 얻을 수 있는 명예보다 천천히 실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고, 매일 더 좋은 지휘를 하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시간이 쌓이며 2010년과 2019년 드디어 꿈의 무대에 오르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막연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올해 그는 음악제에서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 ‘영광스러운 리부셰’를 이끄는 마에스트로로도 활약했다. 그는 “체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인 스메타나 오페라 ‘리부셰’를 공연할 수 있게 된 건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리부셰’는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작품이지만, 일단 들어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화적인 주제와 입체적인 인물 묘사, 1870년대 현대음악의 요소 등을 살리는 데 집중했죠.”
흐루샤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브람스, 브루크너 등 특정한 시대, 나라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탁월한 지휘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 그에게 비결을 묻자 이런 답을 들려줬다.
“지휘할 때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경직되는 순간 청중은 더 이상 음악적 상상을 펼칠 수 없고, 주어진 선율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언어나 시각적 장면을 떠올리기보단 악보에 담긴 감정과 인상, 분위기 등 추상적인 특성에 집중하면서 전체 음악의 흐름과 세부적 요소를 살려내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요. 지휘자로서 집중해서 다뤄야 할 구조적(기술적) 측면이 있기에 무대 위에서 완전한 자유를 바라는 게 욕심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겁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프라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올해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오프닝 콘서트를 맡는다는 소식을 전하며 올린 글귀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단어를 보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이 먼저 떠올랐을 수 있다. 체코 현지인과 음악인들 사이에선 다르다.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5월 12일 시작해 6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악 축제의 공식 명칭이 프라하의 봄이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독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창설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 클래식 음악제로 꼽힌다.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레너드 번스타인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예후디 메뉴인,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까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라하의 봄에서 전설이라고 불린 음악가들이 수많은 세기의 명연(名演)을 토해냈다.
지난달 열린 제79회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 현장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였다. 올해 음악제에 담긴 의미는 예년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스메타나는 체코 밖에선 ‘신세계 교향곡’을 쓴 안토닌 드보르자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곡가지만, 체코 안에선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 그 자체다. 스메타나가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체코 독립에 대한 열망, 고국의 행복과 영광을 향한 염원을 담아 작곡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매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오프닝 콘서트 때마다 연주되는 전통이 있다. 올해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선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와 체코 관광청의 공식 초청을 받아 현지를 다녀왔다. 블타바강을 따라 흘러넘치던 클래식 음악의 봄날을 기록했다.
지난달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3일간 이어진 ‘제79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체코를 대표하는 공연장 오베츠니 둠(시민회관), 루돌피눔을 중심으로 프라하 일대에서 펼쳐졌다. 이 기간 열린 공연만 총 50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장 키릴 페트렌코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출신의 거장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명지휘자들과 명문 악단들이 연일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교향악, 실내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프닝 콘서트는 특별히 프라하 캄파 공원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됐다. 그 덕에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마음껏 환호하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제 기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도 열려 젊은 연주자들의 경쟁과 새로운 신예의 탄생을 직접 확인할 기회도 있었다. 올해 프라하의 봄을 달군 두 명의 주역을 인터뷰했다.
베를린필이 연주한 '나의 조국'…스메타나 200주년 기념비적 사건
2년째 축제 이끄는 파벨 트로얀 총괄 감독
올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오프닝 콘서트부터 화제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지휘 명장들이 이끌어온 독일 명문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연주로 축제의 문을 연다는 소식 때문이다. 베를린 필은 1966년 당시 상임 지휘자 카라얀과 함께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 초청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인연을 맺어왔으나, 이 페스티벌의 선봉에 서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 내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파벨 트로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감독(40·사진)은 “체코에서 스메타나의 음악은 모든 국민이 음표 하나하나를 꿰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우린 언제나 그의 작품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길 열망해왔다”며 “현시대 최고의 명문 악단인 베를린 필의 오프닝 콘서트를 수년간 구상해왔고, 올해 드디어 실현됐다”고 했다. 그는 또 “베를린 필의 ‘나의 조국’ 연주는 스메타나의 음악이 세계적 작품이란 걸 증명할 기회였다”며 “스메타나의 200번째 생일을 맞이한 해여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국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예술가의 관점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는 아주 열정적으로 스메타나 음악의 진가를 표현해냈고, 그의 손짓 아래 악단은 대단한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프라하의 봄 축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겁니다.”
2022년 8월 프라하의 봄 축제 감독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파벨 트로얀은 2년째 음악제를 이끌고 있다. 유서 깊은 유럽 대표 음악 축제의 미래를 그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프라하의 봄’이 지금껏 쌓은 명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는 동시에 현대적 시각을 끊임없이 접목하면서 지속 발전하도록 하고 싶어요. 전통을 지키려는 정신,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정신이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결합한 클래식 축제니까요. 경제적, 지정학적 상황이 격동하는 요즘이지만 그 어떤 과정에서도 최고의 예술적 경험을 전할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80주년을 맞는 내년 프라하의 봄 축제엔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얍 판 츠베덴) 데뷔 무대 등이 예정돼 있다.
'프라하의 봄' 지휘는 오랜 꿈…세계적 악단 데뷔보다 더 기뻤다
체코 출신 젊은 지휘 거장 야쿠프 흐루샤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세계적 명문 악단들이 앞다퉈 찾는 체코 출신의 젊은 거장 지휘자가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휘자”(2017)라고 평한 지 6년 만에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지휘자 중 한 명”(2023)이라고 인정한 명(名)지휘자 야쿠프 흐루샤(43·사진)다. 이미 정상에 오른 그에겐 직함이 많다. 2016년부터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인 흐루샤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도 겸하고 있다. 내년부터 영국의 명문 로열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 자리까지 꿰찬다.그야말로 현재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지휘자 중 한 명인 흐루샤를 지난달 2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에도 지친 기색 없이 환히 웃으며 악수를 먼저 청한 그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내게 단순히 유명한 클래식 페스티벌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열 살이 되기 전부터 프라하의 봄 축제를 즐기며 지휘자의 꿈을 키웠어요. 축제의 전통 중 하나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첫 프로그램으로 올리는 것인데, 매년 한 작품을 반복해 들으면서 저에게 소리의 특성과 연주의 질을 구별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죠. 음악가로서의 삶을 생각하게 된 인생의 첫 순간이었습니다.”
프라하의 봄은 그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흐루샤는 “보통 지휘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빈 필, 베를린 필의 공연 포디엄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지만 나의 방향은 조금 달랐다”며 “프라하의 봄 오프닝 콘서트에서 지휘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고 했다.
“유명해져서 얻을 수 있는 명예보다 천천히 실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고, 매일 더 좋은 지휘를 하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시간이 쌓이며 2010년과 2019년 드디어 꿈의 무대에 오르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막연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올해 그는 음악제에서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 ‘영광스러운 리부셰’를 이끄는 마에스트로로도 활약했다. 그는 “체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인 스메타나 오페라 ‘리부셰’를 공연할 수 있게 된 건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리부셰’는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작품이지만, 일단 들어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화적인 주제와 입체적인 인물 묘사, 1870년대 현대음악의 요소 등을 살리는 데 집중했죠.”
흐루샤는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브람스, 브루크너 등 특정한 시대, 나라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탁월한 지휘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 그에게 비결을 묻자 이런 답을 들려줬다.
“지휘할 때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경직되는 순간 청중은 더 이상 음악적 상상을 펼칠 수 없고, 주어진 선율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언어나 시각적 장면을 떠올리기보단 악보에 담긴 감정과 인상, 분위기 등 추상적인 특성에 집중하면서 전체 음악의 흐름과 세부적 요소를 살려내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요. 지휘자로서 집중해서 다뤄야 할 구조적(기술적) 측면이 있기에 무대 위에서 완전한 자유를 바라는 게 욕심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겁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음악을 만드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프라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