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랠프 월도 에머슨

산과 다람쥐가 서로
말다툼을 했다.
산이 “꼬마 거드름쟁이”라고 하자
다람쥐가 응수하기를
“자네는 분명히 덩치가 크네.
하지만 만물과 계절이
모두 합쳐져야만
한 해가 되고
또한 세상을 이룬다네.
그리고 나는 내 처지가 다람쥐라는 걸
별로 부끄럽게 생각지 않네.
내가 자네만큼 덩치는 크지 못하지만
자네는 나처럼 작지도 않고
나의 반만큼도 재빠르지 못하지 않은가.
나도 자네가 나를 위해서
오솔길을 만들어준다는 건 시인하네.
그러나 재능은 제각기 고루고루일세.
나는 등에다 숲을 지지 못하나
자네는 도토리를 깔 수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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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그루 숲도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19세기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입니다. 큰 산과 작은 다람쥐를 통해 세상 만물의 특성과 가치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지요. 몸집은 작아도 재빠른 ‘꼬마’의 디테일이 거대한 산의 큰 덩치와 대조를 이룹니다. “천 그루의 울창한 숲도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다”고 한 에머슨의 명언도 이런 사유에서 나왔습니다.

에머슨은 인간의 선함을 강조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유행한 염세주의를 벗어나 낙관적인 미래를 꿈꿨습니다.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본 볼테르나 바이런 등과 달리 인간에게는 선함이 악함보다 많다는 것을 믿었지요. 그는 <팡세>를 쓴 블레즈 파스칼이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1832년 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연이 우리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의 한 부분이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후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며, 모든 사람이 다 특별하고 중요한 인간”이라고 강조했지요. 그리고 1836년 9월 초월주의 사상을 담은 에세이 <자연>을 출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초월주의는 이런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하지만 사회와 제도에 의해 타락할 수 있다. 통찰력과 경험은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 영적인 경험은 조직화된 종교에서가 아니라 개인에게서 얻을 수 있다. 자연은 아름다우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초월주의의 상징인 ‘투명한 눈’의 개념도 언급했지요. 우리가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신과 세계를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숲에서 우리는 이성과 믿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인생에서 어떤 것도 내게 떨어질 수 없다고 느낀다—치욕도, 재앙도, (내 눈을 남겨두고,) 자연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맨땅에 서 있는—내 머리는 밝은 공기에 잠겨서 무한한 공간으로 떠오른다—이 모든 것은 이기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투명한 눈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우주의 존재 흐름은 나를 순환한다. 나는 신의 일부이거나 입자이다.”

6년 전에 에머슨 시 ‘우화’를 소개하면서 ‘디테일 경영’의 대가인 왕중추(汪中求) 칭화대 명예교수 얘기를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얘기를 짧게 옮기면 이렇습니다. 베스트셀러 <디테일의 힘> 저자인 그를 서울에서 처음 만났을 때였는데, 그는 이미 ‘1000만 부 작가’ 반열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날 인터뷰 후 저녁을 먹는 자리였지요. 그는 말수가 적고 술도 즐기지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대화가 밍밍하게 이어졌죠. 그러다 아주 작은 대목에서 그가 반색했습니다. 무슨 말끝에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라는 소동파 시 구절을 인용했더니 자기 고향이 여산이라며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한번 말이 트이니 일사천리였지요. 동갑내기인 우린 그날 밤 친구가 됐습니다.

이듬해 중국 상하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에서 릴레이 강연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원샷’을 권했지요. 빈속이라며 손사래를 쳤더니 “첫 잔은 우리 인연이 잘 풀리도록, 마지막 잔은 참 만족스러웠다는 뜻으로!”라며 그가 잔을 먼저 비웠습니다.

그날 마지막 잔까지 좍 비운 그가 “사실은 담낭을 절제해서 술을 못 마시는데, 오늘 특별한 날을 위해 조금씩 몸을 만들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온몸으로 보여준 디테일의 배려에 감동이 밀려왔지요.

이런 게 ‘1000만 부 작가’의 힘일까요. 그는 쌀집 점원에서 대만 제일 갑부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남의 쌀집에서 일하다 16세에 독립한 왕융칭(王永慶)은 주변 가게들과 다른 전략을 썼습니다. 당시만 해도 벼를 길에서 말렸기 때문에 잔돌이 섞여 밥할 때마다 쌀을 일어야 했죠. 그는 동생들과 함께 돌을 다 골라낸 뒤 쌀을 팔았습니다.

배달할 때는 쌀독 크기와 식구 수를 미리 알아놨다가 쌀이 떨어질 때쯤 바로 갖다줬지요. 쌀독에 남은 쌀을 다 퍼낸 뒤 새 쌀을 붓고 그 위에 남은 쌀을 부어 줬습니다. 묵은쌀의 변질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처럼 작고 섬세한 배려 덕분에 당대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를 ‘100+1=200 공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지요. 1%의 디테일이 ‘200’을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큰 산을 완성한다는 에머슨의 시와도 닮은 얘기이지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