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과 식인, 욕망과 성의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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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효정의 금지된 영화 욕망의 기록
영화 <301, 302>
영화 <301, 302>
섹스에 굶주린 여자는 끊임없이 요리를 해대고, 섹스가 두려운 여자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한다. 결국 영화는 한 여자가, 다른 한 여자를 요리해서 말끔하게 먹어 치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간단한 요약문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에 압도되는 듯한 이 영화는 박철수 감독·연출의 영화 <301, 302>(1995)다. 1975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입사해 연출부로 영화에 입문한 박철수 감독은 마침내 1978년 <골목대장>으로 연출 데뷔한다. 이후로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매년 한 해에 1~2편의 장편을 제작하며 지치지 않는 생산력을 보이는 작가·감독으로 활약했다. 박철수 감독의 커리어에 있어 중후반기에 탄생한 이 영화 <301, 302>는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이단아적이고 강렬한 작품이다.
영화는 꿈과 희망의 상징, ‘새희망바이오 아파트’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301호에는 송희(방은진)가 이사를 온다. 송희는 결혼 후 남편을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며 (음식을 먹고 기운을 얻은 남편과 섹스를 하는 것으로) 삶의 만족을 얻었으나 남편의 외면으로 음식에 집착하는 대식증에 걸린다. 그녀는 급기야 남편의 애완견을 요리로 만들어 먹이고, 그로 인해 이혼당한 과거를 가졌다. 송희는 밤낮이고 요리를 해서 이웃인 302호 여자 윤희 (황신혜)에게 갖다주지만, 거식증을 가진 그녀는 받는 요리를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윤희는 어린 시절 정육점을 하던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피해 냉동고에 숨던 자신을 흉내 내다 얼어 죽은 동네아이를 본 후로 음식과 섹스를 거부하는 거식증에 걸리지만 현재는 여성잡지에 섹스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이다.
송희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자신의 음식을 발견하고 윤희와 갈등을 빚지만 각자의 과거를 알게 된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송희의 갖은 노력에도 거식증을 고치지 못한 윤희는 자신을 음식 재료로 써줄 것을 제안하고 송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영화 <301, 302>는 장정일 작가의 산문시 '요리사와 단식가'에 영감을 받은 이서군의 각본에 기반한 이야기로 알려진다. 당시 스무 살을 막 넘긴 이서군은 임순례 감독과 함께 19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몇 안 되는 여성 영화 작가·감독 중 한명이다(데뷔작 : '러브, 러브'(1998)). 여성 작가에 의해 탄생한 영화라는 이력처럼, 영화는 여성 캐릭터들에 의한, 여성 서사를 따라가는 듯하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영화는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창우의 분석을 비는) 이수연의 논문에 의하면 "이 영화의 여성주의가 그로테스크로 표현된 점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고 “심지어 이 영화가 ‘여성의 피해의식의 패배적 순환’으로 봉합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비평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 특히 두 캐릭터가 남성의 (성)폭력 혹은 남성의 외도로 인한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비판들에 있어 그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근본적으로 영화는 이들을 ‘패배자’로 그리지 않는다. 예컨대, 송희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그의 무관심과 차별의 대항하여 그 차별의 대상, 즉 그의 강아지를 제거하고 그것을 요리해 남편에게 먹이는 것으로 그에게 복수를 하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성공적으로 이혼을 하고 받은 위자료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이러한 선택이 정상적인 형태의 복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송희의 존재적 가치를 가장 짓밟는 비교 대상으로서의 강아지를 직접 제거했다는 점에 있어 그녀는 적어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패배자는 아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윤희의 행보 역시 강간 피해자로서의 삶의 굴복으로 보기 어렵다. 그녀는 트라우마에 의해 음식을 끊게 된 인물이지만, 그것의 해결책, 혹은 또 극복의 매개체로 (자유 의지에 의해) 송희의 육체를 선택한 것이다. 송희가 윤희의 육체의 한 부분이 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통해 거식증을 극복하고 음식을 즐기는 삶으로 윤회함으로써 그녀는 피해에 대한 일종의 저항, 그리고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상대를 말끔히 먹어 치우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루카 구아다노의 영화 <본즈 앤 올> (2022)과 어느 정도의 궤를 함께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영화는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유기체다. <301, 302>는 영화의 그러한 유기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매우 출중한 예다. 90년대 중반에 한 신인 여성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영화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적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이 영화가 30년이 지난 현재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윤희의 육체처럼, 시대와 육체를 건너 윤회할 수 있을 것인가.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는 꿈과 희망의 상징, ‘새희망바이오 아파트’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301호에는 송희(방은진)가 이사를 온다. 송희는 결혼 후 남편을 위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며 (음식을 먹고 기운을 얻은 남편과 섹스를 하는 것으로) 삶의 만족을 얻었으나 남편의 외면으로 음식에 집착하는 대식증에 걸린다. 그녀는 급기야 남편의 애완견을 요리로 만들어 먹이고, 그로 인해 이혼당한 과거를 가졌다. 송희는 밤낮이고 요리를 해서 이웃인 302호 여자 윤희 (황신혜)에게 갖다주지만, 거식증을 가진 그녀는 받는 요리를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윤희는 어린 시절 정육점을 하던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피해 냉동고에 숨던 자신을 흉내 내다 얼어 죽은 동네아이를 본 후로 음식과 섹스를 거부하는 거식증에 걸리지만 현재는 여성잡지에 섹스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이다.
송희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자신의 음식을 발견하고 윤희와 갈등을 빚지만 각자의 과거를 알게 된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송희의 갖은 노력에도 거식증을 고치지 못한 윤희는 자신을 음식 재료로 써줄 것을 제안하고 송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영화 <301, 302>는 장정일 작가의 산문시 '요리사와 단식가'에 영감을 받은 이서군의 각본에 기반한 이야기로 알려진다. 당시 스무 살을 막 넘긴 이서군은 임순례 감독과 함께 19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몇 안 되는 여성 영화 작가·감독 중 한명이다(데뷔작 : '러브, 러브'(1998)). 여성 작가에 의해 탄생한 영화라는 이력처럼, 영화는 여성 캐릭터들에 의한, 여성 서사를 따라가는 듯하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영화는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창우의 분석을 비는) 이수연의 논문에 의하면 "이 영화의 여성주의가 그로테스크로 표현된 점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고 “심지어 이 영화가 ‘여성의 피해의식의 패배적 순환’으로 봉합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비평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 특히 두 캐릭터가 남성의 (성)폭력 혹은 남성의 외도로 인한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비판들에 있어 그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근본적으로 영화는 이들을 ‘패배자’로 그리지 않는다. 예컨대, 송희는 남편의 외도 그리고 그의 무관심과 차별의 대항하여 그 차별의 대상, 즉 그의 강아지를 제거하고 그것을 요리해 남편에게 먹이는 것으로 그에게 복수를 하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성공적으로 이혼을 하고 받은 위자료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이러한 선택이 정상적인 형태의 복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송희의 존재적 가치를 가장 짓밟는 비교 대상으로서의 강아지를 직접 제거했다는 점에 있어 그녀는 적어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패배자는 아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윤희의 행보 역시 강간 피해자로서의 삶의 굴복으로 보기 어렵다. 그녀는 트라우마에 의해 음식을 끊게 된 인물이지만, 그것의 해결책, 혹은 또 극복의 매개체로 (자유 의지에 의해) 송희의 육체를 선택한 것이다. 송희가 윤희의 육체의 한 부분이 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통해 거식증을 극복하고 음식을 즐기는 삶으로 윤회함으로써 그녀는 피해에 대한 일종의 저항, 그리고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상대를 말끔히 먹어 치우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루카 구아다노의 영화 <본즈 앤 올> (2022)과 어느 정도의 궤를 함께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영화는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유기체다. <301, 302>는 영화의 그러한 유기적 정체성을 증명하는 매우 출중한 예다. 90년대 중반에 한 신인 여성 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 영화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적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이 영화가 30년이 지난 현재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윤희의 육체처럼, 시대와 육체를 건너 윤회할 수 있을 것인가.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