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들 애증하는 '나만의 주식'이 왜 없을까요. 놓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 팔았어도 기웃거리게 되는 그런 주식 말입니다. 내 인생을 망치기도, 내 인생을 살리기도 하는 그런 주식.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내 인생 종목'을 만나게 됐는지 [노정동의 어쩌다 투자자]에서 '첫 만남',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래 기자페이지 구독을 눌러주세요. [편집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주변에서 LG전자 주주라고 하면 '왜 그랬냐'며 놀림받곤 했는데. LG전자가 인공지능(AI) 산업의 수혜를 받는다니 이제는 진짜 오를 때인가 싶습니다."

2008년부터 LG전자에 투자한 '찐 LG전자팬'이자 주주인 여의도의 50대 회사원 주모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음 투자할 때 '1등 가전회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입했는데 16년이 지난 지금도 가전 말고는 눈에 띄는 사업이 없는 게 씁쓸했다"며 "AI 관련 매출이 확실히 늘어서 '제2의 애플카'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투자자는 "처음 투자 이후 3년 만에 손절하고 고급 TV 판매 1위, 구글 인수설, 애플카 협력설이 나올 때마다 다시 매입했는데 한 번도 이익을 못 냈다"며 "되레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이후 주가가 오르면서 익절한 것이 유일한 수익"이라고 토로했습니다.

LG전자 주가가 AI데이터센터 수혜 전망에 다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AI시대가 도래하면 데이터센터의 전력효율화를 위해 발열관리가 필수적인데, LG전자가 그동안 가전사업을 하면서 쌓은 냉난방시스템 노하우가 냉각장치 개발·운용에 핵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LG전자 주가 흐름. /야후파이낸스
LG전자 주가 흐름. /야후파이낸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전자 주가는 지난달 28일 이 같은 전망이 담긴 증권사의 한 보고서 발간 이후 당일 13.3% 급등한 10만9300원에 마감했습니다. LG전자 주가가 종가기준 10만원 위에서 끝난 건 지난해 12월28일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입니다. 그러나 이후 LG전자의 해당사업 매출이 전체의 5%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는 다시 되돌림 했습니다.

실제 이 보고서를 작성한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의 50%가 냉각용 전력에 사용되고, 데이터센터 운영자의 3분의 1 이상이 데이터센터 설치 후 전력 효율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LG전자 냉각시스템의 높은 전력 효율과 낮은 유지비용은 크게 부각될 전망"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LG전자의 냉난방공조 매출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과 발열 문제를 동시에 해결 가능한 칠러(chiller)를 포함한 AI 냉각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다"며 "2030년 8조5000억원 규모로 증가해 지난해 대비 2배 넘게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LG전자 칠러. /LG전자 제공
LG전자 칠러. /LG전자 제공
김 연구원이 말한 칠러는 열교환기의 일종입니다. 물을 차갑게(cooling) 하거나 따뜻하게(boiling) 만들어 온도조절이 필요한 곳에 쓰입니다. 칠러는 에어컨보다 시스템 작동 원리가 단순해 통상 전력 효율이 관건인 대형 산업시설에 많이 쓰입니다. 에어컨이 '정밀타격'에 필요한 스나이퍼라면, 칠러는 대포를 쏘는 탱크에 비견됩니다.

LG전자는 그동안 가전사업을 하며 이러한 '공조장치' 기술을 고도화했는데 2011년에는 LS엠트론의 공조사업부를 인수하며 산업장치에 쓰이는 칠러사업에 본격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가정용 및 상업용 에어컨뿐만 아니라 중앙공조식 칠러, 원전용 칠러, 빌딩관리솔루션(BMS) 등을 아우르는 풀 라인업을 확보하며 국내 최대 종합공조기업이 됐습니다.

냉난방 공조 시장은 향후 AI데이터센터 증설 영향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냉난방 공조시장은 지난해 2335억달러(약 317조원)에서 2030년 3826억달러(약 519조6000억원)로 커질 전망입니다.

가장 간단한 기술로 AI데이터센터 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만큼 열관리 업체가 AI 시대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김 연구원은 "AI데이터센터는 서버 10만대 이상을 가동하는 전력 소모도 크지만, 서버에서 발생되는 열을 식히는 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며 "AI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의 절반이 냉각용 전력에 사용되는 만큼 AI 시대의 최종 주도권은 열관리 업체가 차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마존 데이터센터. /사진=EPA
아마존 데이터센터. /사진=EPA
관건은 글로벌 시장에서 LG전자의 경쟁력일 겁니다. 국내에서는 공조사업 1등 사업자이지만 글로벌 공조시장은 미국의 캐리어, 트레인, 요크 등이 전세계 시장 점유율을 절반 넘게 확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거리(格力), 메이디(美的), 하이얼(海爾) 등과 일본의 다이킨, 미쓰비시, 파나소닉도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공조기업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세우고 글로벌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LG전자는 최근 미국 현지에 구축되는 대형 데이터센터 단지에 '칠러'를 활용한 5만냉동t(RT) 규모의 냉각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북미 공략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1RT는 물 1t을 24시간 내에 얼음으로 만들 수 있는 용량입니다. 2017년 LG전자가 국내 쇼핑몰 스타필드에 공급한 칠러 용량이 1만4720RT임을 감안하면, 스타필드 3.5개 규모 공간에 냉방을 공급할 수 있는 용량입니다.

AI데이터센터 산업은 이제 막 꽃을 피우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LG전자에 이미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전자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지난달 말 기준 31.1%로 코로나 때인 2021년 9월(31.2%) 이후 가장 높아졌습니다. 통상 외국인 투자자는 단기 호재보다 중·장기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