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리메이크를 왜 했나...실패한 상업영화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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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계자> 리뷰
홍콩 누아르 거장 두기봉 작품 리메이크
신선한 컨셉, 그러나 활용 미비
구태의연한 설정과 단조로운 대사
두루뭉술한 결말, 남는 의문들
홍콩 누아르 거장 두기봉 작품 리메이크
신선한 컨셉, 그러나 활용 미비
구태의연한 설정과 단조로운 대사
두루뭉술한 결말, 남는 의문들
리메이크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할리우드가 특히 그러한데, 영화산업의 역사가 길어서 라이브러리 관리가 잘 돼 있고, 리메이크를 하기에 용이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타이틀이 워낙 많아 그 안에서 리메이크 대상을 찾는 것이 때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이점, 그리고 성공한 선례를 발판 삼았을 때 오는 위험 감소 등으로 리메이크 프로젝트들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스타 이즈 본>의 경우 무려 세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
한국의 경우 자국 영화 리메이크보다는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경우가 더 많은데 (<완벽한 타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등) 이는 할리우드에 비해 판권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아 일일이 (개인)판권 소유자를 찾아 협의를 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이야기에 따르면 가격도 천차만별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 때가 많아 국내 작품 리메이크는 오히려 해외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호러 걸작 영화, 고영남 감독의 <깊은 밤 갑자기> 역시 리메이크 시도가 있었지만 판권 해결이 되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작품은 홍콩 영화다. 물론 유럽 (특히 스페인)이나 여타 다른 해외 작품들도 빈번히 리메이크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홍콩 영화 리메이크가 많은 것은 판권 사용료가 비교적 저렴하고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한국에 있어 홍콩 영화는 누아르나 형사물 등에 편중되어 있어 그 선호가 충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조의석 감독의 <감시자들>, 이해영 감독의 <독전> 등이 홍콩 원작을 리메이크해서 성공시킨 대표적인 예들이다. 현재 상영 중인 <설계자> 역시 홍콩 영화 <엑시던트> (2009)의 리메이크다. <독전>의 원작 <마약전쟁>을 연출하고 <감시자들>의 원작 <천공의 눈>을 제작한 홍콩 누아르의 거장, 두기봉 감독이 제작을 한 작품이다. <설계자>의 연출은 재기발랄한 광화문 시네마의 간판 인디 영화 <범죄의 여왕>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요섭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해 타깃을 제거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가까운 동료 ‘짝눈’(이종석)을 교통사고로 잃고 괴로워하던 중, 새로운 사건을 의뢰받는다. 이번 타깃은 모든 언론과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고 그를 제거하고자 사건을 맡긴 의뢰인은 그의 딸(정은채)이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지만 영일은 그의 팀원인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과 함께 이를 맡기로 결심한다. 철저한 설계와 준비를 거쳐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영일은 계획된 살인을 가장한 이 사건의 배후를 쫓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설계자>는 실패한 리메이크작이자, 실패한 상업영화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킬러’ 혹은 ‘청부살인 회사’의 이야기가 아닌 살인을 사고로 위장한다는 ‘설계자’라는 컨셉을 가져온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영화는 흥미로운 컨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킬러의 역할을 설계자가 대신하지만, 그가 맡는 사건, 즉 유명한 정치인의 비자금 비리를 쫓는다는 설정은 기존의 한국 영화들의 구태의연한 설정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럼에도 영화의 더 큰 패착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대사에 있는 듯하다. 영일을 포함한 재키, 월천 등 중심인물들의 대사는 마치 한 인물의 대사를 4명으로 나눈 듯 일률적이고 단순하며 틀에 박힌 것들이다. 아쉽게도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이야기의 반듯한 끝맺음조차도 포기한 듯, 두루뭉술하게 막을 내린다. 영일이 뒤쫓는 ‘청소부’라는 존재는 영화 전반부터 거대조직인 듯 암시가 되지만 궁극적으로 영화는 그들의 정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운영이 되는지 모든 필요한 답을 함구한 채, 충격 효과만 노린 듯 뜬금없는 인물·단체를 청소부로 지목한다.
<설계자>의 순제작비는 134억으로 손익분기점은 270만 관객 정도가 된다. 개봉 1주일을 조금 넘긴 지금 이 시점의 영화는 42만명 정도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쯤 되면 전액 손실은 아닐지라도 손익분기점에서 200만 관객 미만의 적지 않은 참패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A급 배우에, 재능 있는 감독을 갖춘 이 영화의 운명이 이렇게 된 것에 분명 한국 영화산업 내의 제도적 병폐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한국의 경우 자국 영화 리메이크보다는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경우가 더 많은데 (<완벽한 타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등) 이는 할리우드에 비해 판권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아 일일이 (개인)판권 소유자를 찾아 협의를 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이야기에 따르면 가격도 천차만별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 때가 많아 국내 작품 리메이크는 오히려 해외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호러 걸작 영화, 고영남 감독의 <깊은 밤 갑자기> 역시 리메이크 시도가 있었지만 판권 해결이 되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작품은 홍콩 영화다. 물론 유럽 (특히 스페인)이나 여타 다른 해외 작품들도 빈번히 리메이크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홍콩 영화 리메이크가 많은 것은 판권 사용료가 비교적 저렴하고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한국에 있어 홍콩 영화는 누아르나 형사물 등에 편중되어 있어 그 선호가 충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조의석 감독의 <감시자들>, 이해영 감독의 <독전> 등이 홍콩 원작을 리메이크해서 성공시킨 대표적인 예들이다. 현재 상영 중인 <설계자> 역시 홍콩 영화 <엑시던트> (2009)의 리메이크다. <독전>의 원작 <마약전쟁>을 연출하고 <감시자들>의 원작 <천공의 눈>을 제작한 홍콩 누아르의 거장, 두기봉 감독이 제작을 한 작품이다. <설계자>의 연출은 재기발랄한 광화문 시네마의 간판 인디 영화 <범죄의 여왕>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요섭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해 타깃을 제거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가까운 동료 ‘짝눈’(이종석)을 교통사고로 잃고 괴로워하던 중, 새로운 사건을 의뢰받는다. 이번 타깃은 모든 언론과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고 그를 제거하고자 사건을 맡긴 의뢰인은 그의 딸(정은채)이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지만 영일은 그의 팀원인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과 함께 이를 맡기로 결심한다. 철저한 설계와 준비를 거쳐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영일은 계획된 살인을 가장한 이 사건의 배후를 쫓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설계자>는 실패한 리메이크작이자, 실패한 상업영화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킬러’ 혹은 ‘청부살인 회사’의 이야기가 아닌 살인을 사고로 위장한다는 ‘설계자’라는 컨셉을 가져온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영화는 흥미로운 컨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킬러의 역할을 설계자가 대신하지만, 그가 맡는 사건, 즉 유명한 정치인의 비자금 비리를 쫓는다는 설정은 기존의 한국 영화들의 구태의연한 설정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럼에도 영화의 더 큰 패착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대사에 있는 듯하다. 영일을 포함한 재키, 월천 등 중심인물들의 대사는 마치 한 인물의 대사를 4명으로 나눈 듯 일률적이고 단순하며 틀에 박힌 것들이다. 아쉽게도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이야기의 반듯한 끝맺음조차도 포기한 듯, 두루뭉술하게 막을 내린다. 영일이 뒤쫓는 ‘청소부’라는 존재는 영화 전반부터 거대조직인 듯 암시가 되지만 궁극적으로 영화는 그들의 정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운영이 되는지 모든 필요한 답을 함구한 채, 충격 효과만 노린 듯 뜬금없는 인물·단체를 청소부로 지목한다.
<설계자>의 순제작비는 134억으로 손익분기점은 270만 관객 정도가 된다. 개봉 1주일을 조금 넘긴 지금 이 시점의 영화는 42만명 정도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쯤 되면 전액 손실은 아닐지라도 손익분기점에서 200만 관객 미만의 적지 않은 참패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A급 배우에, 재능 있는 감독을 갖춘 이 영화의 운명이 이렇게 된 것에 분명 한국 영화산업 내의 제도적 병폐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