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지난해 12월 11일 쇄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계열사들이 스타트업처럼 각개전투에 임하는 카카오 특유의 ‘자율경영 체제’를 철폐하고, 확장 중심의 기존 경영 전략을 리셋(초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여러 변화가 시도됐다. 본사뿐만 아니라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교체했고, 컨트롤타워도 마련했다. 외형 키우기에 급급하던 ‘문어발 확장’을 멈추고 계열사 가지치기까지 단행했다.

하지만 회사 안팎의 반응은 시들하다. 혁신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실질적인 변화의 모습은 감지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불거진 ‘카카오 사태’ 이후 8개월간의 행보를 되짚어 봤다.
시간은 없고 쇄신은 멀고…새판짜기 6개월 '고난의 카카오'

카카오, 무엇을 바꿨나

9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고강도 쇄신 경영에 들어간 뒤 6개월 동안 △계열사 수 감소 △주요 계열사 경영진 교체 △컨트롤타워 마련 △준법·윤리경영 감시 외부 기구 설립 등에 주력했다. 지난해 12월 카카오 및 카카오 관계사의 준법·윤리경영을 감시할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를 발족시킨 것이 시작이었다. 외부로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직후인 2020년 2월 출범시킨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본떴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내부 준법 경영을 강화한 것처럼 사회적 눈높이에 부응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카카오 준신위 위원장엔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촉했다. 준신위는 카카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6개사에 대한 준법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엔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개선 방안을 권고하기도 했다.

리더십에도 변화가 있다. 지난 6개월간 총 5곳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지난해 12월 정신아 카카오 대표를 내정(올해 3월 공식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카카오벤처스(김기준 대표) △카카오엔터테인먼트(권기수·장윤중 공동대표) △카카오페이증권(신호철 대표) △카카오게임즈(한상우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

중앙집권화 시동 건다

지난해 10월 카카오 경영에 위기가 닥친 핵심 요인으로 컨트롤타워 부재가 꼽혔다. 통제받지 않은 채 확장에 매몰되다 보니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30일부터 매주 월요일 비상경영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김 창업자는 2차 비상경영회의 때부터 ‘분신’ 같은 수염까지 깎았다. 각종 논란을 씻어내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변화였다. 당시 김 창업자는 “부분적인 개선과 개편으로는 부족하다”며 “내년(2024년)부터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고 했다.

올해 1월 출범한 ‘CA협의체’가 고민의 결과물이다. 카카오 그룹 내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독립 기구로 김 창업자와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공동 의장을 맡았다. 2월에는 CA협의체 산하에 △경영쇄신위원회 △전략위원회 △브랜드커뮤니케이션위원회 △ESG위원회 △책임경영위원회 등 5개 조직이 설치됐다. 최근까지 5개 위원회 위원장 선임을 마무리하고 역할을 정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는 중앙집권 의사결정 체제를 조만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카카오 계열사의 중요 의사결정은 모두 CA협의체 각 위원회의 ‘리스크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어발 확장 멈추고…조직 수술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 지난달 카카오 계열사는 128개다. 1년 전(147개)보다 19개 줄었다. 카카오 측은 “핵심 사업과 관계없는 계열사를 정리하며 조직 효율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라이프엠엠오, 아이파이어웍스, 에이치쓰리, 스테이지파이브, 트레이스문화산업전문 등이 정리된 계열사다. 케이큐브임팩스, 오닉스케이, 뉴런잉글리쉬는 카카오와 직접 연관이 없지만, 김 창업자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계열사로 묶였다. 이들 역시 최근 청산 및 지분 매각 등으로 카카오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그룹사 구조도 개편했다. 인공지능(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의 언어모델사업부문, 칼로사업부문, 톡채널사업부문, MM사업부문을 본사에서 양수한 게 대표적이다. 본사 차원에서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AI 사업을 해보겠다는 취지다.

카카오는 4월엔 의사결정 구조를 간소화하기 위해 직급도 줄였다. 기존 대표급 아래 부문장·실장·팀장·파트장·셀장 5단계로 돼 있던 관리자 직급 체계를 성과리더·리더 2단계로 개편했다. 회사 관계자는 “의사결정 단계를 간소화하고, 조직 및 직책 구조를 단순화해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한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먹튀’ 인사 재기용 논란

카카오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올해 1월 15일 쇄신 기대로 6만1100원까지 반짝 회복한 주가는 금세 고꾸라졌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7일 4만4250원. 1년 전(5만7400원)보다 몸값이 22.9% 하락했다.

박주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사업 측면에서 실질적 쇄신이 눈에 띄지 않았다”며 “더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사업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카카오표 혁신의 문제점으로 ‘불완전한 인적 쇄신’을 꼽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대규모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로 논란을 일으킨 정규돈 전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4월 카카오 신임 CTO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CTO는 2021년 8월 카카오뱅크가 상장한 며칠 후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매도해 7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뒀다. 세금 납부를 위한 결정으로 전해졌다. 이 일은 같은 해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900억원대 차익 실현이 이어져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준신위가 3월 정 CTO 내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지만, 카카오는 임명을 강행했다.

김 창업자의 대내외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의문스럽다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10~11월 “내년(2024년)에는 달려보겠다”던 김 창업자를 올해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 김 창업자는 CA협의체 회의 참석 외 별다른 활동사항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