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이 사상 처음 800억달러(약 110조원)어치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만 150억달러(약 20조7000억원) 늘어났다. 반면 유가증권시장에서 개미들은 11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관련주가 미국 등 주요국의 증시 랠리를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서학개미의 ‘머니 무브’가 가속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금액은 821억1849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초 673억6297만달러에서 5개월여 만에 21.9% 증가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관련주 주가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 국내 투자자의 엔비디아 보유금액은 연초 44억달러에서 최근 119억달러로 2.7배가량 불어났다. 개인과 기관들이 공격적으로 사들인 데다 주가가 150%가량 오르며 전체 보유금액이 급증했다. 이 영향으로 엔비디아는 지난달 말 서학개미의 ‘최애’ 주식으로 꼽히던 테슬라를 제치고 해외 주식 보유금액 1위에 올랐다.

다른 AI주도 비슷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보유금액은 같은 기간 38.7% 늘어난 38억달러, 알파벳은 19.4% 증가한 24억달러로 집계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가 상승해 평가금액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주가가 계속해서 오르다 보니 이들 종목에 신규 매수가 이어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액은 2020년 초만 해도 91억달러에 불과했다. 불과 4년여 만에 투자 규모가 아홉 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대조적으로 국내 증시에서 개인의 투자 열기는 식어가는 양상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들은 올해 11조5142억원의 매도 우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 발 뒤처진 데다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한 2차전지 관련주까지 주춤하다 보니 증시를 이끌 만한 주도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해외 증시로의 자금 이탈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