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클럽 속으로 들어간 예술이 주는 즐거움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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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아트와 클럽의 사이에서
아트와 클럽의 사이에서
베를린은 ‘테크노 음악의 성지’이자 ‘세계 클럽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클럽 문화는 다양성과 개방성이 존중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시 베를린을 상징하며 단순한 유흥 공간의 의미를 넘어 베를리너의 사상과 태도, 패션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클럽 문화는 서독과 동독 젊은이들이 테크노 하우스 파티를 함께 즐기며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게 하는 데 공헌했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클럽의 문화는 성 소수자를 포용하고 성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베를린의 대표적 클럽 베르크하인(Berghain)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클럽에서 주로 착용되는 블랙 컬러는 쿨함과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이 도시의 색으로 여겨진다.
이곳의 클럽 문화는 여름에 가장 활짝 피어나는데, 바로 어두운 실내 공간을 활용한 ‘박스 클럽’과 더불어 공원과 강변 등 야외 공간에 펼쳐지는 ‘오픈에어 클럽’이 열려서 실내와 야외 모두에서 다양한 음악과 열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슈프레 강을 따라 위치한 클럽들은 마치 야외 페스티벌 같은 바이브를 전하며 여름의 에너지를 만끽하게 한다. 이러한 베를린 클럽 바이브를 미술 공간으로 전환한 듯한 장소이자 박스형 클럽과 오픈에어형 클럽을 결합한 것 같은 공간인 ‘다크 매터(Dark Matter)’를 소개하려 한다.
다크 매터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이트 아티스트(light artist) 크리스토퍼 바우더(Christopher Bauder)가 2021년 베를린 동부 리히텐베르크에 설립한 미술 공간이다. 바우더는 독일 통일 기념행사를 위해 제작한 대형 라이트 설치 작업 'Light Border'(2014), 베를린의 대표적 테크노 이벤트인 ‘CTM 페스티벌’에 선보인 라이트 작업 등으로 알려져 있고, 라이트를 활용해 마치 건축과 음악,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진 클럽과 같은 공간을 개관하였다.
다크 매터는 크게 어두운 실내 공간에 설치된 상설전 '다크 매터'와 주로 6월부터 9월까지 여름 동안 야외에 열리는 일시적 전시 '섬머 라이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올해는 'Flow'란 제목의 작품을 보여준다. 'Flow'는 크리스토퍼 바우어와 네덜란드 출신 뮤지션 크리스 쿠이즈텐(Chris Kuijten)이 협업해 만든 대형 작품으로 1000㎡의 야외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쿠이즈텐이 만든 다채널의 사운드트랙에 맞춰 1000개 이상의 라이트가 다채로운 색상과 형태, 패턴으로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마치 해변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빛의 향연을 펼친다.
한 번의 라이트 쇼는 45분으로 구성되어 해 질 녘 시작해 주중 저녁 10-11시까지 선보이고 DJ 공연이 있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라이트 쇼와 음악, 음료가 있는 '섬머 라이트'는 마치 오픈에어 클럽에 입장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들뜬 여름밤을 밝혀준다.
한편, 베를린의 개방적 성문화를 나타내는 은밀한 ‘다크 룸’이나 박스형 클럽을 연상하게 하는 상설 전시 '다크 매터'는 7개의 라이트 설치 작품을 보여주는 7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트 블랙으로 칠해진 검은 방을 가득 채운 움직이는 라이트 설치 작품과 일렉트로닉 음악은 클럽과 아트의 경계를 오가며 ‘내가 이 공간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은 과연 예술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몇몇 전시 작품을 살펴보자면, 유일하게 거울이 사방의 벽을 채운 공간에 설치된 'Liquid Sky'는 800여 개의 라이트가 8채널 사운드트랙에 맞춰 하늘의 별 혹은 강이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윤슬처럼 넘실거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다크 매터' 전시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Inverse'는 169개 구형 매체가 사운드에 따라 조명을 밝힌 벽 앞에서 마치 춤을 추듯 대형을 변화시키며 리듬감을 전한다. 전시에서 가장 커다란 크기의 작품 'Grid'는 천정에 설치된 라이트의 색과 형태를 변화시키며 공간을 가득 채운다. 45분 길이의 쇼로 구성된 작품은 때로는 역동적으로, 때로는 명상할 때 듣는 음악처럼 조용하게 흐르는 사운드에 따라 변화하며 우주선 혹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처럼 움직인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리듬을 나타내는 'Grid'는 테크놀로지와 사운드, 라이트가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7개의 독립적 전시 공간은 어떤 연결성이나 내러티브를 가지기보다 각 공간의 체험을 제공하는데 집중한 듯 보이고, 개념을 담거나 보는 이의 관점을 전환시키거나 확장하도록 돕는 예술적 경험이라기보다 단순한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계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칭하는 ‘화이트 큐브’의 반대 지점에 위치한 ‘다크 매터’ 공간은, 소위 ‘몰입형’ 전시라 불리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소로 느껴졌다.
미술계에서 클럽은 음악과 건축, 그래픽, 조명 디자인, 테크놀로지 등이 결합된 공간으로서 유흥을 넘어 실험적인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클럽을 닮은 아트 공간은 엔터테이닝한 예술이 아닌, 그저 체험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공간에 그치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 듯 보인다.
아트를 닮은 클럽은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클럽 같은 아트는 과연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시금 묻게 만들었다. 물론 들뜨고 설레는 여름밤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 오픈에어 클럽에 가는 기분으로 들린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변현주 큐레이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클럽 문화는 서독과 동독 젊은이들이 테크노 하우스 파티를 함께 즐기며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게 하는 데 공헌했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클럽의 문화는 성 소수자를 포용하고 성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베를린의 대표적 클럽 베르크하인(Berghain)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검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클럽에서 주로 착용되는 블랙 컬러는 쿨함과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이 도시의 색으로 여겨진다.
이곳의 클럽 문화는 여름에 가장 활짝 피어나는데, 바로 어두운 실내 공간을 활용한 ‘박스 클럽’과 더불어 공원과 강변 등 야외 공간에 펼쳐지는 ‘오픈에어 클럽’이 열려서 실내와 야외 모두에서 다양한 음악과 열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슈프레 강을 따라 위치한 클럽들은 마치 야외 페스티벌 같은 바이브를 전하며 여름의 에너지를 만끽하게 한다. 이러한 베를린 클럽 바이브를 미술 공간으로 전환한 듯한 장소이자 박스형 클럽과 오픈에어형 클럽을 결합한 것 같은 공간인 ‘다크 매터(Dark Matter)’를 소개하려 한다.
다크 매터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이트 아티스트(light artist) 크리스토퍼 바우더(Christopher Bauder)가 2021년 베를린 동부 리히텐베르크에 설립한 미술 공간이다. 바우더는 독일 통일 기념행사를 위해 제작한 대형 라이트 설치 작업 'Light Border'(2014), 베를린의 대표적 테크노 이벤트인 ‘CTM 페스티벌’에 선보인 라이트 작업 등으로 알려져 있고, 라이트를 활용해 마치 건축과 음악,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진 클럽과 같은 공간을 개관하였다.
다크 매터는 크게 어두운 실내 공간에 설치된 상설전 '다크 매터'와 주로 6월부터 9월까지 여름 동안 야외에 열리는 일시적 전시 '섬머 라이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올해는 'Flow'란 제목의 작품을 보여준다. 'Flow'는 크리스토퍼 바우어와 네덜란드 출신 뮤지션 크리스 쿠이즈텐(Chris Kuijten)이 협업해 만든 대형 작품으로 1000㎡의 야외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쿠이즈텐이 만든 다채널의 사운드트랙에 맞춰 1000개 이상의 라이트가 다채로운 색상과 형태, 패턴으로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마치 해변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빛의 향연을 펼친다.
한 번의 라이트 쇼는 45분으로 구성되어 해 질 녘 시작해 주중 저녁 10-11시까지 선보이고 DJ 공연이 있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라이트 쇼와 음악, 음료가 있는 '섬머 라이트'는 마치 오픈에어 클럽에 입장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들뜬 여름밤을 밝혀준다.
한편, 베를린의 개방적 성문화를 나타내는 은밀한 ‘다크 룸’이나 박스형 클럽을 연상하게 하는 상설 전시 '다크 매터'는 7개의 라이트 설치 작품을 보여주는 7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트 블랙으로 칠해진 검은 방을 가득 채운 움직이는 라이트 설치 작품과 일렉트로닉 음악은 클럽과 아트의 경계를 오가며 ‘내가 이 공간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은 과연 예술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몇몇 전시 작품을 살펴보자면, 유일하게 거울이 사방의 벽을 채운 공간에 설치된 'Liquid Sky'는 800여 개의 라이트가 8채널 사운드트랙에 맞춰 하늘의 별 혹은 강이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윤슬처럼 넘실거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다크 매터' 전시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Inverse'는 169개 구형 매체가 사운드에 따라 조명을 밝힌 벽 앞에서 마치 춤을 추듯 대형을 변화시키며 리듬감을 전한다. 전시에서 가장 커다란 크기의 작품 'Grid'는 천정에 설치된 라이트의 색과 형태를 변화시키며 공간을 가득 채운다. 45분 길이의 쇼로 구성된 작품은 때로는 역동적으로, 때로는 명상할 때 듣는 음악처럼 조용하게 흐르는 사운드에 따라 변화하며 우주선 혹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처럼 움직인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리듬을 나타내는 'Grid'는 테크놀로지와 사운드, 라이트가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7개의 독립적 전시 공간은 어떤 연결성이나 내러티브를 가지기보다 각 공간의 체험을 제공하는데 집중한 듯 보이고, 개념을 담거나 보는 이의 관점을 전환시키거나 확장하도록 돕는 예술적 경험이라기보다 단순한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계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칭하는 ‘화이트 큐브’의 반대 지점에 위치한 ‘다크 매터’ 공간은, 소위 ‘몰입형’ 전시라 불리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소로 느껴졌다.
미술계에서 클럽은 음악과 건축, 그래픽, 조명 디자인, 테크놀로지 등이 결합된 공간으로서 유흥을 넘어 실험적인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클럽을 닮은 아트 공간은 엔터테이닝한 예술이 아닌, 그저 체험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공간에 그치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 듯 보인다.
아트를 닮은 클럽은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클럽 같은 아트는 과연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시금 묻게 만들었다. 물론 들뜨고 설레는 여름밤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 오픈에어 클럽에 가는 기분으로 들린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변현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