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갖고 싶은 달항아리,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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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우리에게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 문화가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는 토기가, 고려 시대에는 비취색 청자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에는 분청사기가, 조선시대에는 백자가 각 시대의 문화를 대표한다.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착을 품었던 이론가, 작가가 많지만, 그중에서 일본 도예가 도미모토 켄키치(富本憲吉, 1886∼1963)는 유독 조선시대 백자를 깊이 애착한 인물이다. 그는 완전한 형태의 백자야말로 자신의 이상이자 ‘최고급’이라고 칭송하며, 장식을 뺀 백자의 형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서 ‘무늬의 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도미모토가 백자를 칭송한 것은 그만큼 일체 속임 없이 오직 형태로만 충분한 단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대변하고 있다.
흔히 일본을 태양(日)의 나라라고 하면, 한국은 ‘달(月)의 나라’라고 한다. 과장하고 위용 당당한 중국의 예술형식 그리고 감정과 응축미, 간결한 짜임새가 특징인 일본예술에 비해 우리 것은 은은한 달빛처럼 절제와 중용을 추구하는 은근함이 미적 특질이다. 특히 품위와 고아함, 간결하고 절도 있는 형식을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전체 조화로움을 범하지 않는 변격과 다양한 개성의 공존을 허용하는 열린 포용성 즉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있다. 이처럼 한국민 중에 은근하고 정갈함이 드러나는 미학, 좌우대칭의 완전한 곡선이 아닌 강산이 구비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형태, 담백함과 순박함이 마음을 끌어당겨 오랫동안 싫증 나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하고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한국민이 유독 달항아리를 애정하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한국민이 추구하는 멋과 풍류가 온전히 깃들어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달항아리’의 원래 명칭은 백자대호(白瓷大壺)다. 해방 이후 미술사가이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故 최순우(1916-1984) 그리고 화가 수화 김환기(1913-1974)가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 같은 백자라 칭한 이후 ‘달항아리’라는 별칭이 생겼다. 이들 덕분에 ‘달항아리’, ‘잘생긴 며느리’ 등 여러 비유가 생겨났다.
하지만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2000년대 초까지는 학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첫 전시 제목으로 ‘백자 달항아리전’을 사용하며 인식이 바뀌었다. 결국 2011년 국보 명칭이 종전의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인데 문화재가 가장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현 고미술계와 현대미술계 통틀어 가장 인기 많은 키워드는 ‘달항아리’다. 요즘 한국 화단 원조 격인 인사동을 비롯해 대한민국 화랑 어디를 가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조각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아트페어, 전시를 두루 가본 사람들은, ‘달항아리 그림 안 걸린 화랑이 거의 없다’라는 말에 동감할 것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실이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단장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2년 리모델링한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내 한국실 역시 주요 소장품은 민예운동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가 귀국길에 가지고 간, 이후 영국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1902-1995)의 품에 안겼던 한국의 달항아리다. 그것이 유럽 문인·예술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추상화가들부터 사진작가 구본창, 설치미술가 강익중, 이수경 등 주요 현대미술가들까지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관련 칼럼] 11만 명 승선한 구본창의 '항해'…500점의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러한 이슈와 현대미술의 주목 덕분에 달항아리는 한국미술의 아이콘으로서 대중의 인기까지 얻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이 롯데홈쇼핑에 나와 완판되기도 했고, 설화수의 모델 블랙핑크 로제가 달항아리와 함께 광고에 등장했다. 다이소에서는 MZ세대를 타깃으로 ‘달항아리’를 출시해 인기몰이 중이고, SNS에서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굿즈와 디자인 상품이 흔하다.
▶▶▶[관련 칼럼] RM도 끌어안은 둥글고 허연 저것, '달멍'위해 3년을 바쳤다
여기에 올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56만달러(약 60억원)에 거래된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리움미술관이 열었던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도 성황을 이뤘다. 달항아리가 ‘재복(財福)을 불러오는 아이템’이라는 속설이 항간에 퍼지면서 달항아리 인기가 치솟았지만, 기존 달항아리 고유의 미학은 사라지고 지나치게 달항아리가 과열화, 상업화, 소재주의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도공들의 후예인 현대 공예가들 역시 달항아리 제작에 열심이다. 기존 달항아리를 제작했던 전통 명장뿐 아니라 많은 공예가들이 재료와 방법을 달리하며 다양한, 새로운 유형의 달항아리를 제작, 발표하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색, 선, 형태, 비율이 좋다고 여기는 유물을 견본으로 삼아 작업실 한편에 이미지를 붙여두고 수시 완상한다. 달항아리 특유의 ‘자연스러운 일그러짐과 비대칭선’을 눈에 익히며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감각과 안목, 경험을 더해 자신만의 달항아리를 꿈꾼다. 달항아리의 불완전한 균형미 즉, 좌우, 상하 비대칭의 선은 ‘업다지 기법’ 즉, 두 개의 대형 사발을 물레로 빚고 그것을 위아래 맞물려 잇는 독특한 제작 방식에 있다. 대호(大壺)라고 지칭하려면 높이가 40㎝ 이상은 되어야 한다. 1300도 가까이 열기가 치솟는 고온의 가마 속에서 기물이 화력을 견디지 못하면 가장 취약한 부위(대부분 상하 접합 부위)부터 찢어지고, 터지고, 결국 주저앉는다.
옛 도공들은 변변한 도구나 고운 흙, 성능 좋은 가마 없었을 텐데 40㎝ 이상, 균형 있는 형태, 아름다운 색채 등을 두루 갖춘 완성작을 여럿 빚었다. 지금 기술로도 달항아리 제작은 쉽지 않다. 수작(秀作)의 희소성도 시중 달항아리 폭발적 수요와 인기 치솟는 과열의 원인이다.
작가들 중에는 옛 유물을 견본 삼아 똑같은 것을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이도 있고, 재현보다는 달항아리를 실마리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새로운 조형을 꺼내려는 이도 있다. 분명 달항아리 특유의 텅 빈 충만함은 오늘날 여러 현대미술가의 시도에서 볼 수 있듯 현대 미술의 추상 정신과 조우하는 면이 있고, 공예를 한국을 넘어 세계와 만나게 할 요소도 있다. 달항아리 특유의 비움, 충만한 미완의 여운은 오늘날 자본주의, 속도와 능률 위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미의식이다. 그것이 우리가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 달항아리를 유독 애정하는 이유다. 옛것을 익혀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도, 여러 재료와 방법을 바꿔 다양하게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작가에게는 우리가 달항아리를 현대 미술로, 디자인으로, 공예로 달항아리를 달리 만들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물은 사람들이 보고 싶고 바라마지않는 소망과 미감을 드러내고 대변해 온 것들이다. 요동치는 격변과 유행 속에서도 오래 살아남아 영속하는 것의 비결이다.
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
▶▶▶[관련 인터뷰] 韓 고미술 경매담당하는 뉴욕의 일본인 "백자 인기 높아질 것"
▶▶▶[관련 리뷰] 달항아리로 풀어낸 40년 보따리 여정, 파리에 거울왕국 지은 김수자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착을 품었던 이론가, 작가가 많지만, 그중에서 일본 도예가 도미모토 켄키치(富本憲吉, 1886∼1963)는 유독 조선시대 백자를 깊이 애착한 인물이다. 그는 완전한 형태의 백자야말로 자신의 이상이자 ‘최고급’이라고 칭송하며, 장식을 뺀 백자의 형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서 ‘무늬의 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도미모토가 백자를 칭송한 것은 그만큼 일체 속임 없이 오직 형태로만 충분한 단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대변하고 있다.
흔히 일본을 태양(日)의 나라라고 하면, 한국은 ‘달(月)의 나라’라고 한다. 과장하고 위용 당당한 중국의 예술형식 그리고 감정과 응축미, 간결한 짜임새가 특징인 일본예술에 비해 우리 것은 은은한 달빛처럼 절제와 중용을 추구하는 은근함이 미적 특질이다. 특히 품위와 고아함, 간결하고 절도 있는 형식을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전체 조화로움을 범하지 않는 변격과 다양한 개성의 공존을 허용하는 열린 포용성 즉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있다. 이처럼 한국민 중에 은근하고 정갈함이 드러나는 미학, 좌우대칭의 완전한 곡선이 아닌 강산이 구비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형태, 담백함과 순박함이 마음을 끌어당겨 오랫동안 싫증 나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하고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한국민이 유독 달항아리를 애정하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한국민이 추구하는 멋과 풍류가 온전히 깃들어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달항아리’의 원래 명칭은 백자대호(白瓷大壺)다. 해방 이후 미술사가이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故 최순우(1916-1984) 그리고 화가 수화 김환기(1913-1974)가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 같은 백자라 칭한 이후 ‘달항아리’라는 별칭이 생겼다. 이들 덕분에 ‘달항아리’, ‘잘생긴 며느리’ 등 여러 비유가 생겨났다.
하지만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2000년대 초까지는 학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첫 전시 제목으로 ‘백자 달항아리전’을 사용하며 인식이 바뀌었다. 결국 2011년 국보 명칭이 종전의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인데 문화재가 가장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현 고미술계와 현대미술계 통틀어 가장 인기 많은 키워드는 ‘달항아리’다. 요즘 한국 화단 원조 격인 인사동을 비롯해 대한민국 화랑 어디를 가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조각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아트페어, 전시를 두루 가본 사람들은, ‘달항아리 그림 안 걸린 화랑이 거의 없다’라는 말에 동감할 것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실이 달항아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단장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2년 리모델링한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내 한국실 역시 주요 소장품은 민예운동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가 귀국길에 가지고 간, 이후 영국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1902-1995)의 품에 안겼던 한국의 달항아리다. 그것이 유럽 문인·예술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추상화가들부터 사진작가 구본창, 설치미술가 강익중, 이수경 등 주요 현대미술가들까지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관련 칼럼] 11만 명 승선한 구본창의 '항해'…500점의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러한 이슈와 현대미술의 주목 덕분에 달항아리는 한국미술의 아이콘으로서 대중의 인기까지 얻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이 롯데홈쇼핑에 나와 완판되기도 했고, 설화수의 모델 블랙핑크 로제가 달항아리와 함께 광고에 등장했다. 다이소에서는 MZ세대를 타깃으로 ‘달항아리’를 출시해 인기몰이 중이고, SNS에서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굿즈와 디자인 상품이 흔하다.
▶▶▶[관련 칼럼] RM도 끌어안은 둥글고 허연 저것, '달멍'위해 3년을 바쳤다
여기에 올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56만달러(약 60억원)에 거래된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리움미술관이 열었던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도 성황을 이뤘다. 달항아리가 ‘재복(財福)을 불러오는 아이템’이라는 속설이 항간에 퍼지면서 달항아리 인기가 치솟았지만, 기존 달항아리 고유의 미학은 사라지고 지나치게 달항아리가 과열화, 상업화, 소재주의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도공들의 후예인 현대 공예가들 역시 달항아리 제작에 열심이다. 기존 달항아리를 제작했던 전통 명장뿐 아니라 많은 공예가들이 재료와 방법을 달리하며 다양한, 새로운 유형의 달항아리를 제작, 발표하고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색, 선, 형태, 비율이 좋다고 여기는 유물을 견본으로 삼아 작업실 한편에 이미지를 붙여두고 수시 완상한다. 달항아리 특유의 ‘자연스러운 일그러짐과 비대칭선’을 눈에 익히며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감각과 안목, 경험을 더해 자신만의 달항아리를 꿈꾼다. 달항아리의 불완전한 균형미 즉, 좌우, 상하 비대칭의 선은 ‘업다지 기법’ 즉, 두 개의 대형 사발을 물레로 빚고 그것을 위아래 맞물려 잇는 독특한 제작 방식에 있다. 대호(大壺)라고 지칭하려면 높이가 40㎝ 이상은 되어야 한다. 1300도 가까이 열기가 치솟는 고온의 가마 속에서 기물이 화력을 견디지 못하면 가장 취약한 부위(대부분 상하 접합 부위)부터 찢어지고, 터지고, 결국 주저앉는다.
옛 도공들은 변변한 도구나 고운 흙, 성능 좋은 가마 없었을 텐데 40㎝ 이상, 균형 있는 형태, 아름다운 색채 등을 두루 갖춘 완성작을 여럿 빚었다. 지금 기술로도 달항아리 제작은 쉽지 않다. 수작(秀作)의 희소성도 시중 달항아리 폭발적 수요와 인기 치솟는 과열의 원인이다.
작가들 중에는 옛 유물을 견본 삼아 똑같은 것을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이도 있고, 재현보다는 달항아리를 실마리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새로운 조형을 꺼내려는 이도 있다. 분명 달항아리 특유의 텅 빈 충만함은 오늘날 여러 현대미술가의 시도에서 볼 수 있듯 현대 미술의 추상 정신과 조우하는 면이 있고, 공예를 한국을 넘어 세계와 만나게 할 요소도 있다. 달항아리 특유의 비움, 충만한 미완의 여운은 오늘날 자본주의, 속도와 능률 위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미의식이다. 그것이 우리가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 달항아리를 유독 애정하는 이유다. 옛것을 익혀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도, 여러 재료와 방법을 바꿔 다양하게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작가에게는 우리가 달항아리를 현대 미술로, 디자인으로, 공예로 달항아리를 달리 만들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물은 사람들이 보고 싶고 바라마지않는 소망과 미감을 드러내고 대변해 온 것들이다. 요동치는 격변과 유행 속에서도 오래 살아남아 영속하는 것의 비결이다.
홍지수 공예평론가•미술학박사•CraftMIX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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