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 소설가 중 하나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두 천재 여성 스파이의 두뇌 대결을 그린 신작 장편 소설 <퀸의 대각선>으로 돌아왔다.이번 소설의 주인공 모니카와 니콜은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는 점 외에는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니콜은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믿는 반면, 모니카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긴다. 개인의 힘을 믿는 모니카는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권의 정보기관인 영국 MI5와 미국 CIA 에서 활동한다. 반면 집단의 힘을 믿는 니콜은 반대 성향의 진영인 아일랜드 무장단체 IRA와 KGB에서 군중을 해방시키고자 한다.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IRA 무장 투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 붕괴, 이란 핵위기, 9·11 테러 등 실제 사건이 소설 속 인물들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다는 가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상상과 현실에 절묘하게 엮인 서사 속에서 니콜과 모니카는 때로는 전략가로서, 때로는 현장 요원으로서 사건에 참여한다. 제목 '퀸의 대각선'은 체스 게임에서 강력한 말인 퀸이 적을 위협하며 거침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뜻한다. 주인공 모니카와 니콜이 적을 향해 나아가며 싸우는 모습을 묘사했다. 니콜은 체스에서 폰을 움직이듯 거대 군중을 움직이는 전략을 세운다. 반대로 모니카는 퀸을 이용해 상대를 일대일로 타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냉전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작가는 여전히 형태를 바꾸어서 개인과 집단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는 뛰어난 개인의 힘으로 발전하는 것일까, 혹은 집단의 지혜를 통해 나아가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모니카와 신념을 저울질하며 인류 진보의 답이 어디에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뮤지컬 '시카고'가 공연 중인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링크아트센터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어깨를 움츠리고 다녀야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출연진들의 얼굴이 담겨 있는 캐스팅보드 앞은 초만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인파로 장사진이다. 공연장 객석은 빈자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2층 맨 뒤 자리조차 구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시카고 열풍'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이유는 일단 화려한 캐스팅이다. 2000년 초연 공연부터 함께 한 최정원부터 민경아, 박건형, 아이비, 윤공주, 정선아, 최재림, 티파니 영까지 뮤지컬계에서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유한 출연진 한명 한명의 존재감이 강력하다. 무대가 단출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존재감이 더욱 드러난다. 음악을 하는 밴드가 계단식으로 앉아 무대 뒤를 병풍처럼 지키고 있는 것 외에 배경은 없다. 계단 한 가운데에 배우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리프트 외에 별다른 무대 장치도 없다. 그렇기에 인물 한명 한명의 역량이 더욱 중요한 작품. 첫 장면을 장식하는 최정원의 등장부터 압도한다. 팔을 살랑살랑 흔들며 등장하는 순간 24년째 시카고 무대를 지킨 그만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무게 잡지 않고 푼수 같은 연기와 애드립까지 선보이는 폭넓은 연기력이 돋보인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주인공 록시 하트역을 맡은 민경아의 광기 어린 연기와 변호사 빌리 플린을 분한 최재림의 성량은 곡예를 보는 듯한 놀라움이 느껴진다. 록시 하트는 불륜남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있는 코러스걸로 변호사 빌리 플린의 조력이 필요하다. 빌리 플린이 복화술로 노래하는 넘버 '서로 그 총을 뺏으려 했네'가 시작하자 기대감에 부푼 객석이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여자 죄수들의 큰언니 '마마 몰튼'과 록시의 찌질한 남편 '에이모스 하트'까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의 매력과 배우들의 역량이 '시카고'의 힘이다.'시카고'의 또 한 가지 매력 포인트는 앙상블. 화려한 캐스팅에 이끌려 갔다가 앙상블에 놀라게 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무대처럼 배경 역할을 하다가도 힘찬 코러스로 무대를 채우기도 한다. 딱 들어맞는 군무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격정적인 아크로바틱한 안무부터 시카고 특유의 은은하고 끈적이는 동작까지 맛깔나게 살린다. 자세히 보면 얼굴 근육을 전부 동원해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도 인상 깊다.주연들이 묘기를 부리고 앙상블이 몸을 바쳐 만들어진 무대. 고음을 내지르며 성대를 뽐내는 웅장한 넘버가 많지 않다. 대신 쫀쫀한 재즈 음악과 재즈 템포에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는 안무가 녹진함을 더한다. 내연남을 살인하는 록시 하트와 그녀의 미모에 반한 언론과 대중들. 도발적인 이야기에 사회와 인간을 비웃는 블랙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덕분에 유머가 튀지 않으면서도 재치가 있다.시원한 고음과 웅장한 무대 없이 진득하게 빨아들이는 작품. 이따금 앙상블로 시선을 돌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 집중해서 관람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공연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링크아트센터에서 9월 29일까지 열린다.구교범 기자
덕후답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최신(!) 소식을 부지런히 추천한다. 저작권을 가진 방송사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자신만만한 고화질 영상으로 장식된 레퀴엠, 으름장과 울화라는 지극히 한국스러운 감정을 버무린 '강호동 협주곡' 등이 최근 알고리즘의 신이 덕후에게 간택해준 영상들이다. 교향곡, 그것도 말러나 브루크너 스케일의 우람하고 기골 장대한 곡을 들으며 망양지탄을 느끼다가도 이런 재기발랄하고 힙한(!) 영상으로 풀어낸 클래식 음악에 낄낄거리는 덕후의 삶이란...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근엄하면서도 난잡한 덕후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신 알고리즘은 단연 계촌 클래식 축제, 일명 ‘레전드 포 핸즈'다. 왜 레전드냐 하면 바로 김선욱과 조성진의 네 손이 한 피아노 위를 유영하는 꿈같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곡목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푸릇한 야외 배경, 악보를 들고 엉거주춤 등장하는 김선욱, 멋쩍게 그러나 용기 있고 집중력 있게 페이지 터너 (연주자의 악보를 넘겨주는 보조인) 역할을 수행한 바이올린 단원, 야외 음향과 비전문 레코딩의 음질을 그냥 뚫고 나와 찬란하게 빛나는 조성진의 음색까지…. 완벽한 힐링 레전드 영상 그 자체였다. 출근길에 이 영상을 접한 후 얼마나 많은 포 핸즈를 찾아보았던지. 같은 곡을 15년 전의 조성진이 신수정 교수와 함께 연주한 포 핸즈 영상이 한경 arteTV 유튜브에 남아있었다. 스승과 함께하는 포 핸즈는 동료 뮤지션과 함께하는 포 핸즈와 큰 차이가 있어 좋은 비교가 되었다. [조성진 & 신수정 - 브람스 헝가리 무곡 (채널. 한경arteTV)] 주로 홀로 피아노 앞에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두 명이 나란히 앉아 건반과 페달을 공유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니, 세팅 자체가 벌써 흐뭇하다. 당연히 뮤지션 간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하다. 빠르기부터 음악의 기승전결까지 정교하게 조율된 음악보다는, 케미스트리가 빚어내는 즉흥성이 오히려 미덕이 된다. 계촌 클래식 축제 현장에 있던 누구라도 오래도록 두 피아니스트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관련 뉴스] 김선욱과 조성진, 계촌마을에서 선보인 특별한 협연 운명인지 우연인지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앨범도 <포 핸즈-알렉상드르 타로와 친구들>이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진행한 포 핸즈 프로젝트가 앨범으로 나왔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곡목들도 최단 1분에서 최장 6분가량의 짧은 곡들 위주다. 베아트리체 라나, 비킹구르 올라프손, 브루스 리우(조성진-김선욱의 포 핸즈와 같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다!)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슈퍼스타 첼리스트 고티에 가퓌숑도 알렉상드르 타로와 피아노를 공유했으니 프로젝트의 규모가 남다르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니콜라스 안겔리치(관련 칼럼 읽기)가 타계 불과 1년 전 타로와 함께 연주한 장면(관련 영상 보기)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남아 있어 귀하다. 둘의 돌리 모음곡은 듣기만 해도 포근한 이불을 덮은 듯 따사롭기 그지없다. 돌리 모음곡은 원래부터 피아노 포 핸즈 곡이지만,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하이든 피아노 3중주 등 다른 형태의 원곡을 피아노 포 핸즈로 편곡한 곡들도 실려 있다.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소품들이지만 연주 퀄리티만큼은 굉장하다. 특히 라벨 장인 두명(베르트랑 샤메유, 알렉상드르 타로)이 만나 여유와 관록 넘치게 연주하는 '어미 거위 모음곡 5곡 [요정의 정원]'에서는 느릿하고 우아한 걸음걸이가 점차 무게감을 더하다가 박진감 넘치는 글리산도로 감쪽같이 이행해 마무리하는데 앨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편의 멋진 드라마가 되었다 (관련 영상 보기). 아이슬란드의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알렉상드르 타로와 같이 연주한 '그리그: 4개의 노르웨이 무곡 2번'도 그의 팬이라면 환호하며 들을 만하다.포 핸즈에 대해 길게 썼지만 사실 우리 모두 자신 있는 포 핸즈가 하나씩 있다. 어렸을 적 친구와 함께 치던 ‘젓가락 행진곡'이 바로 포 핸즈다. 연탄곡이 포 핸즈로, 젓가락 행진곡이 필립 글래스의 Stokes로만 바뀌었을 뿐 음악을 좋아하고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그때의 감정만큼은 여전하다. 3분의 시간을 내 조성진과 김선욱의 ‘레전드 포 핸즈’를 감상해 보면 어떨까. 내친김에 알렉상드르 타로의 앨범도 BGM 삼아 틀어놓아 일상에 음악의 품격을 더해 보기를 추천한다. /이은아 칼럼니스트 [조성진 & 김선욱 -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 (채널. 셈플리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