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불교, 차, 범패의 '성지'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지리산 남쪽 중턱 해발 800m 고지 일대는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렸다.

[여행honey] 호리병 속 별천지, 삼신산 쌍계사
◇ 우리가 꿈꾸던 그곳

청학동은 푸른 학이 울면 태평성대가 온다는 곳, 이상향을 뜻한다.

청학동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달리 지목됐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은 쌍계사 일원을 '호리병 속 별천지'(壺中別有天地)라며 청학동이라고 했고 고려 시대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다고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불일폭포, 불일암, 세석평전, 덕평 등을 청학동이라고 기록했다.

지리산 산간 마을인 의신, 매계, 묵계가 청학동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는 쌍계사에서 계곡을 따라 북동쪽으로 2.5㎞ 정도 올라가면 있다.

불일폭포에서 삼신봉(1,284m)을 지나면 도인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옆에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홍익인간 사상을 기리는 삼성궁이 있다.

쌍계사에서 삼신봉, 청학동까지 승경이 이어진다.

쌍계사와 삼신봉은 약 8.8㎞의 등산로로 연결된다.

삼성궁∼상불재∼삼신봉∼청학동을 산행하는 지리산국립공원 탐방코스(8.3㎞)도 있다.

삼신산은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뜻한다.

봉래산은 금강산, 영주산은 한라산, 방장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다.

지리산 주 능선에 자리한 삼신봉은 하동 악양으로 흘러내린 형제봉 능선과 멀리 남해의 일망무제를 감상할 수 있는 경승지이다.

[여행honey] 호리병 속 별천지, 삼신산 쌍계사
◇ 선종 불교, 차, 범패의 성지…쌍계사

쌍계사의 이름은 지리산의 맑은 계곡 두 줄기가 산문 앞에서 합쳐지는 데서 유래했다.

쌍계의 지점에는 두 개의 큰 바위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석문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고운 최치원이 지팡이로 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쌍계사는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 잡았다.

템플스테이를 다녀간 청소년들은 '꿈속에서 왔다 간 것 같다'며 이곳의 아름다움을 소감문에 표현하곤 한다.

쌍계사는 한국 종교와 문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선종 불교, 차(茶), 불교음악인 범패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시대인 723년 삼법 스님과 대비 스님은 중국 선종의 6대조인 육조혜능조사의 정상(두상)을 모시고 와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곳이 쌍계사 금당이다.

금당 안에는 육조정상탑이 있다.

당나라에 유학해 혜능의 선법을 이은 진감(774~850) 선사가 귀국해 혜능의 정상을 봉안한 곳에 840년에 지은 절이 현재의 쌍계사이다.

진감 선사는 선과 범패를 가르쳤다.

불교 의식 때 사용하는 음악인 범패는 국악의 시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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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 선사가 쌍계사를 창건하기 전인 828년에는 신라의 김대렴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감 선사는 차나무를 쌍계사 주변에 번식시켰다고 한다.

이를 한국 차 문화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쌍계사 옆에는 차나무 시배지와 하동야생차문화센터가 있다.

대웅전에서 계곡을 가로지른 돌다리를 건너면 금당으로 이어지는 108계단이 나온다.

금당은 계단을 만들기 전 깎아지른 절벽이었음 직한 곳에 고요히 앉아 있다.

선원인 동방장, 서방장을 좌우에 거느린 금당에서 바라보니 안개에 휩싸인 첩첩산중이 선계와 다름없었다.

◇ 거름과 농약을 치지 않는 하동 야생차…세계중요농업유산

5월 25일은 '차의 날'이다.

연두색 신록이 지리산을 뒤덮고 야생차 나무에도 연한 새순이 돋아난 5월 하동에는 야생차문화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쌍계사에서는 월초 나흘 동안 108헌다, 육법공양, 들차회, 다맥전수 등의 행사가,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는 중순 5일 동안 야생차문화축제가 계획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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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전통차 농업은 풀을 직접 뽑아 거름을 대신하고, 차 부산물을 밭에 뿌려 토양 산성화, 수분 증발, 유기물 유실을 방지하는 전통 차밭 관리 방식을 고수한다.

해발 1,200m가 넘는 지리산에 둘러싸여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 흐르는 일대에 1천200여 년 전승된 하동 전통차 농업은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8천여 평의 시배지에는 수령 50년가량의 차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 차나무는 전지조차 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연한 찻잎을 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수확량이 적다.

시배지에서 생산되는 차의 양은 0.5t 정도에 불과하다.

진감 선사 추앙 비 등 차 시배를 기리는 비석이 여럿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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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폭포와 형제봉

불일폭포와 형제봉은 지리산 남쪽 사면의 주요 명승지이다.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협곡에 형성된 불일폭포는 높이가 60여m에 이른다.

수직 낙하하는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로 인해 사시사철 뿌연 물안개에 싸여 있는 듯하다.

폭포 입구인 불일암에서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대가 마련돼 있다.

불일암은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수도하던 곳이다.

'불일'은 고려 희종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해 내린 시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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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은 지리산국립공원 경계 바깥에 있다.

우애 깊은 형제처럼 나란히 솟은 두 봉우리(1,112m, 1,108m)는 지리산 남부 능선의 끝자락으로, 지리산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준봉이다.

'형'의 경상도 사투리가 '성'이다.

형제봉 정상에 오르니 '聖弟峰'(성제봉)이라고 씐 정상석이 반겼다.

발밑에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 벌판이 펼쳐졌다.

형제봉에 오르는 등산로는 다양하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형제봉(50분), 악양 외둔마을∼고소성∼신선대∼형제봉(4시간), 강선암∼철쭉군락지∼형제봉(2시간) 등의 코스이다.

외둔마을에서 고소성을 거쳐 형제봉, 시루봉, 회남재, 깃대봉, 구재봉, 악양미서로 이어지는, 총거리 30㎞에 이르는 종주 등산코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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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공장에서 능선길을 약 1.5㎞만 가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 활공장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임도가 나 있다.

형제봉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신선대에는 거대한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섬진강을 허리에 끼고 19번 국도를 달리는 차 안에서도 출렁다리는 뚜렷이 보였다.

형제봉 일대는 봄에 붉은 철쭉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5월이면 지리산에서 철쭉제가 열리는 곳 중 하나다.

◇ 배달민족 성전 삼성궁

삼성궁은 한반도 최초 국가 고조선의 개국을 기억하자는 취지를 담고 지어졌다.

'삼성'은 환인, 환웅, 단군 등 배달민족의 시조로 추앙받는 세 성인을 뜻한다.

삼성궁은 고조선 시대 소도를 재현하는 형식을 띤다.

소도는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였다.

도망해 들어온 죄인이라도 잡아갈 수 없을 만큼 성스러운 곳이었다.

하동 출신인 한풀선사(속명 강민주)의 집념이 담긴 삼성궁은 수많은 돌탑, 돌벽,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돌무더기들은 태초의 원시성을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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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은 한반도의 역대 나라를 건국한 태조 각 성씨의 시조, 국가를 빛낸 현인 무장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궁을 소개한 푯말에는 고조선 천지화랑들이 수행하던 신선도를 수행하는 수도 도량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매년 10월이면 개천 대제가 열린다.

민족 대화합의 염원이 서린 삼성궁에는 연중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