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안 울 것 같은 이사라의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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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개인전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6월 26일까지
철부지 공주님의 값비싼 취미라고?
3대에 걸쳐 완성된 이사라의 '원더랜드'
조부 이해랑 선생, 부친 이석주 화백에 이은 예술 3代
노동으로 완성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6월 26일까지
철부지 공주님의 값비싼 취미라고?
3대에 걸쳐 완성된 이사라의 '원더랜드'
조부 이해랑 선생, 부친 이석주 화백에 이은 예술 3代
노동으로 완성된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곱게 빗어넘긴 노란 머리카락과 순진무구한 미소, 우주를 담은 듯 맑게 빛나는 눈동자…. 이사라 작가가 그린 '원더랜드'를 처음 보면 TV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가 떠오를 만하다. 팝아트적 화풍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어른이 되며 잊고 살아온, 동심 가득했던 시절의 '어떤 기억'을 소환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사라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렸다.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원더랜드에 무슨 일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원더랜드 유니버스'를 묘사한 신작 20여점이 걸렸다. 원더랜드는 작가가 창조한 미지의 세계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모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동화 속 세상 같은 원더랜드에는 지켜야 할 6가지 규칙(Rule 6)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것. 열심히 일할 것. 나를 아름답게 가꿀 것.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완전한 행복을 꿈꿀 것. 어린이뿐 아니라 '착한 어른'에게도 요구되는 덕목들이다. 완벽할 줄 알았던 이곳에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Rule 6'을 어기며 알록달록했던 세계가 무채색 황무지로 변한 것이다. 원인을 찾아내야만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가던 작가는 작품에 그려진 '소녀'의 눈동자에 빠져들며 원더랜드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원더랜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은 작가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다. 조잘조잘 떠들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피아노와 플루트 연주가, 발레리나를 꿈꿨다. 예쁜 백설 공주 의상을 차려입고 친구들 앞에 나섰을 땐 진짜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화가가 됐다. 대학 졸업 직후 사실주의 기법을 연마하던 작가는 2000년대 '드림' 시리즈 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나섰다. 아침부터 마라톤처럼 이어지는 강의, 빼곡한 전시 일정과 비즈니스 미팅에 치였다. 꿈 많던 공주는 직장인이 됐다.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던 어릴 적 꿈도 온데간데없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초심으로 돌아간 결과다. 지난해 말부터 부산 밤바다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사랑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걸린 모든 작품의 배경은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지난 어느 시리즈보다 사랑이 넘치는, 로맨틱한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사실 원더랜드의 소녀는 작가 혼자만의 자화상이 아니다. 3대(代)에 걸친 예술가들의 삶의 태도가 투영된 가족화(畵)에 가깝다. 이사라 작가의 조부는 1세대 연극배우 고(故) 이해랑(1916~1989) 선생, 부친은 한국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이석주 숙명여대 명예교수다.
"할아버지는 생전 예술가로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죠. '여자도 당당히 일해야 한다' '예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한테는 성실함을 배운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캔버스 앞에 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어느새 제가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있네요."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의 '값비싼 취미'가 아니다. 매일 16시간씩 공들여 그려내는 그의 작품 활동은 노동에 가깝다. 목공소에서 합판을 고르고, 흰 아크릴 물감을 두텁게 칠하는 백그라운드 작업부터 시작이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감성을 더하기 위해 마카롱 한조각을 입에 넣는 것도 빠지지 않는 루틴이라고.
더 선명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진다. 아크릴 물감과 형광 안료를 배합한 뒤, 물감이 마르면 조각칼을 들고 작품 군데군데 미세한 흠집을 넣는다. 작품 속 소녀의 눈동자가 유독 빛나 보이는 비결이다. 무광의 질감을 내기 위해 수십번 사포질을 더 한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배경 액자마저 작가가 손수 색칠한 작품의 일부다.
전시를 인상 깊게 봤다면 작가가 최근 출간한 책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헤르몬하우스)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원더랜드 세계관을 풀어서 설명한 아트 노블(Art Novel·예술 소설)이다. 이 밖에도 작가는 원더랜드의 시즌 2, 시즌 3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구상하고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안시욱 기자
곱게 빗어넘긴 노란 머리카락과 순진무구한 미소, 우주를 담은 듯 맑게 빛나는 눈동자…. 이사라 작가가 그린 '원더랜드'를 처음 보면 TV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가 떠오를 만하다. 팝아트적 화풍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어른이 되며 잊고 살아온, 동심 가득했던 시절의 '어떤 기억'을 소환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사라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렸다.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원더랜드에 무슨 일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원더랜드 유니버스'를 묘사한 신작 20여점이 걸렸다. 원더랜드는 작가가 창조한 미지의 세계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모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동화 속 세상 같은 원더랜드에는 지켜야 할 6가지 규칙(Rule 6)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것. 열심히 일할 것. 나를 아름답게 가꿀 것.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완전한 행복을 꿈꿀 것. 어린이뿐 아니라 '착한 어른'에게도 요구되는 덕목들이다. 완벽할 줄 알았던 이곳에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Rule 6'을 어기며 알록달록했던 세계가 무채색 황무지로 변한 것이다. 원인을 찾아내야만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가던 작가는 작품에 그려진 '소녀'의 눈동자에 빠져들며 원더랜드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원더랜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은 작가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다. 조잘조잘 떠들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피아노와 플루트 연주가, 발레리나를 꿈꿨다. 예쁜 백설 공주 의상을 차려입고 친구들 앞에 나섰을 땐 진짜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화가가 됐다. 대학 졸업 직후 사실주의 기법을 연마하던 작가는 2000년대 '드림' 시리즈 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나섰다. 아침부터 마라톤처럼 이어지는 강의, 빼곡한 전시 일정과 비즈니스 미팅에 치였다. 꿈 많던 공주는 직장인이 됐다.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던 어릴 적 꿈도 온데간데없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초심으로 돌아간 결과다. 지난해 말부터 부산 밤바다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사랑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걸린 모든 작품의 배경은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지난 어느 시리즈보다 사랑이 넘치는, 로맨틱한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사실 원더랜드의 소녀는 작가 혼자만의 자화상이 아니다. 3대(代)에 걸친 예술가들의 삶의 태도가 투영된 가족화(畵)에 가깝다. 이사라 작가의 조부는 1세대 연극배우 고(故) 이해랑(1916~1989) 선생, 부친은 한국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이석주 숙명여대 명예교수다.
"할아버지는 생전 예술가로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죠. '여자도 당당히 일해야 한다' '예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한테는 성실함을 배운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캔버스 앞에 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는데, 어느새 제가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있네요."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의 '값비싼 취미'가 아니다. 매일 16시간씩 공들여 그려내는 그의 작품 활동은 노동에 가깝다. 목공소에서 합판을 고르고, 흰 아크릴 물감을 두텁게 칠하는 백그라운드 작업부터 시작이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감성을 더하기 위해 마카롱 한조각을 입에 넣는 것도 빠지지 않는 루틴이라고.
더 선명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진다. 아크릴 물감과 형광 안료를 배합한 뒤, 물감이 마르면 조각칼을 들고 작품 군데군데 미세한 흠집을 넣는다. 작품 속 소녀의 눈동자가 유독 빛나 보이는 비결이다. 무광의 질감을 내기 위해 수십번 사포질을 더 한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배경 액자마저 작가가 손수 색칠한 작품의 일부다.
전시를 인상 깊게 봤다면 작가가 최근 출간한 책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헤르몬하우스)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원더랜드 세계관을 풀어서 설명한 아트 노블(Art Novel·예술 소설)이다. 이 밖에도 작가는 원더랜드의 시즌 2, 시즌 3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구상하고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