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교육 입시 열풍은 더 거세진 것으로 나타났다./한경DB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교육 입시 열풍은 더 거세진 것으로 나타났다./한경DB
정부가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 킬러문항 배제와 사교육 카르텔 혁파를 선언한 지 1년째를 맞았지만 ‘입시광풍’은 더욱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킬러문항이 사라지는 등의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의대 증원, 무전공 확대 등으로 입시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로 인한 사교육비 부담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고등학생 사교육비 8% 이상 급증

정부는 지난해 6월 15일 킬러문항을 배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사교육 카르텔 혁파를 선언했다.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를 킬러문항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유지되면 사교육 의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치러진 9월 모의평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킬러문항이 배제됐다. 또 사교육 업체와 현직 교사들의 유착을 밝혀내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10일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총 사교육비는 27조1144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 증가했다. 특히 사교육 카르텔 및 킬러문항 배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7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8.2% 급증했다. 2016년(8.7%) 후 최대 증가율이다.

전문가들은 킬러문항 배제 등 교육 정책의 변화 자체가 불안감을 키우고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교육 정책 급변에 따른 불안감이 정책 수요자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더욱 내모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한 입시 관계자는 “대입 정책 4년 예고제 등을 마련한 것도 예측 가능성 때문인데 최근에는 예외라는 명목하에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현장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수능에 학원 찾는 학생들

킬러문항은 없애면서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 때문에 수능시험 난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 4일 치러진 6월 모의평가도 국어 수학 등의 1등급 커트라인이 80점대 초반으로 어렵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1등급 커트라인이 90점대 초반이면 평이한 수준, 80점대 초반이면 불수능으로 분류한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수능에서 킬러문항은 없지만 변별력이 중요하고, 그 결과 시험은 어렵게 출제된다는 것이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며 “어려운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 무전공 등으로 재수생이 많이 진입하면서 사교육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수능에 응시한 n수생은 17만7942명으로 전체 수험생의 35.3%를 차지했다. 재수 이상 수험생 비율이 35%를 넘어선 것은 1995학년도(38.9%)와 1996학년도(37.3%) 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6월 모평에서도 n수생은 8만8300명으로 2011학년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n수생은 사교육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가계에는 고가의 학원비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n수생과 경쟁하기 위해 고3 수험생도 사교육을 늘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재수학원 관계자는 “반수, 재수, n수 등이 늘어나며 한 학생에게 평생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가정 경제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입시의 예측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9월부터 모집하는 수시 인원이 5월 말에 확정되면 방학 전 한 달 만에 모든 학생의 진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4년 예고제의 취지대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정해진 입시 기준에 따라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