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성장률이 올 들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엔화 약세 등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개인 소비가 위축된 영향이 가장 크다. 일본 경제가 오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벗어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엔저 후폭풍…日, 1분기 GDP -0.5%
일본 내각부는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개정치)이 전기 대비 0.5%, 연율 기준 1.8% 감소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작년 3분기에 전기 대비 -0.9%, 4분기에 0%를 기록했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가 위축된 영향이다. 개인 소비는 전 분기보다 0.7% 감소해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네 분기 연속 감소세는 2009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 이후 15년 만이다.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3.1% 오르며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싱크탱크인 NLI연구소의 사이토 다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성장이 거의 없고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개혁 외면한 채 밀어붙인 '슈퍼 엔저'…日 국민이 가난해졌다
1년새 무역적자 4배 이상 급증…내년 GDP 인도에 역전당할 듯

일본 무역수지는 지난 4월 6615억엔 적자를 나타냈다. 적자 폭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4배 늘었다. 엔저 등에 따라 수입은 8.5% 증가한 9조897억엔을 기록한 반면 수출은 8조4282억엔으로 2.4%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일본 무역수지는 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다.

수출로 돈을 벌어 성장의 원천으로 삼는 일본 경제의 성장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스터 엔’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재무관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엔저가 수출을 늘렸지만, 일본 기업들이 대거 해외로 떠나면서 환율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질 경우 주요 기업의 경상이익 증가 효과는 올해 기준 0.4%로, 2003년 대비 절반으로 감소했다. 일본 기업이 수출 대신 해외 거점에서 직접 돈을 버는 구조가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최근 도요타자동차 등이 품질 인증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기업들이 신뢰성에 타격을 받은 것도 악재로 꼽힌다.

슈퍼 엔저가 일본을 서서히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인재 확보, 과학기술 발전, 방위력 개선 등 중장기 국력 강화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지수(2020년=100)는 1995년 4월 193.97로 정점을 기록한 뒤 지난 4월 69.99까지 떨어졌다. 57년 만의 최저치다.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감소시키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일본의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25개월 연속 하락해 최장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가계 저축률도 줄어들고 있다. 일본 내각부 산하 경제사회종합연구소에 따르면 가계 저축률은 2021년 6.6%, 2022년 3.4%에서 지난해 0.1%로 떨어졌다.

세계 경제에서 일본의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작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55년 만에 독일에 밀리며 세계 4위로 내려앉았다. 내년에는 인도에도 역전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GNI)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에도 밀렸다.

막대한 국가부채도 일본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7개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252.4%로, 미국(122.1%)과 영국(101.1%)의 두 배를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조속히 일본 경제를 구조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보기술(IT) 투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 이민을 포함한 노동력 확보,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자급률 향상 등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