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2018년부터 샴푸와 보디워시 등 생활용품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한다. 여러 플랫폼에 같은 상품을 올리는데 네이버쇼핑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40%)이 높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고객 분석이 아니라 알고리즘 분석이다. 알고리즘 노출이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A씨는 “연관 검색어를 분석하는 데만 하루 2~3시간씩 쓴다”며 “탈모, 기능성, 약산성, 쿨, 멘솔, 멘톨 등과 같은 샴푸 관련 키워드를 상품에 태그하고 매출 추이를 지켜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키워드를 바꿔 넣는다”고 말했다.

10일 네이버쇼핑에선 약 390만 개의 페이지에서 샴푸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A씨는 “검색어 상위권에 노출하기 위해 광고비를 집행하고 때때로 가공 매출을 일으킨다”며 “상위 5개 페이지 안에 노출되지 않는 상품 매출은 ‘0원’에 수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고리즘으로 제품 사재기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A씨와 같은 셀러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주요 플랫폼 알고리즘 분석이 가장 큰 화두다. 요즘 알고리즘을 이렇게 바꾼 것 같다거나 알고리즘 공략을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등을 치열하게 논한다. 순위를 올려주는 업체도 있다. 소위 ‘슬롯업체’라고 부르는 곳이다. 네이버쇼핑의 판매업자 B씨는 “슬롯업체들은 하루에도 수시로 순위를 올릴 타이밍을 알고리즘으로 포착해 판매업자에게 제품 사재기를 종용한다”고 했다. 네이버의 ‘채점 기준’에 맞춰 순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는 “슬롯업체 요청을 맞춰주면 6위 정도는 보장할 수 있다”며 “플랫폼에선 다들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생산자라고 해서 이런 전쟁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판매망을 장악한 플랫폼과 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이른바 ‘제·판(제조사 대 판매사) 전쟁’이다. 노출 권력을 쥔 데다 소비자 정보를 보유한 플랫폼의 가장 큰 무기는 소위 자체브랜드(PB) 상품이다.

'샴푸' 쳤더니 390만개 와르르…"알고리즘 '픽' 없인 매출 쪽박"
다른 생산자의 상품을 팔아주면서 정보를 취하다가 시장 규모가 적정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이면 즉각 PB 상품을 생산해 수직계열화를 도모한다. 쿠팡의 ‘곰곰’ 등이 대표적이다. 2022년 말 국내 최대 e커머스인 쿠팡에서 CJ제일제당이 로켓배송 납품을 중단한 것도 제조사와 플랫폼 간 주도권 싸움의 일환이다.

롱테일 시장 형성 효과도

동시에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비주류 상품들로 구성된 ‘니치 마켓’을 육성하는 역할도 한다. 판매량이 많은 유명 브랜드의 상품에 가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비인기 상품이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일종의 롱테일 효과다.

지난해 2월 모바일 앱에 초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도입한 G마켓은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상품 수가 도입 이전보다 약 15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G마켓 관계자는 “다양한 판매자의 상품을 소개할 수 있게 돼 판매자는 매출이 늘어났고 소비자는 선택지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노출 상품 다양화는 중·소규모 신생업체에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상품 인지도와 판매량을 기반으로 상품을 정렬하는 기존 검색 방식과 달리 개개인의 취향을 우선으로 고려해 상품을 노출하는 추천 알고리즘은 판매량이 적은 중소업체의 상품이라도 검색 결과 리스트 상단에 띄워준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로부터 선택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상은/양지윤/김대훈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