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타인의 꿈에 나타나 밈이 된 남자

그는 평범한 교수이다. 크게 성과를 내거나 유명하지도 않고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딸들도 아빠에게 별 기대나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엉망인 것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보편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어젯밤 아빠가 꿈에 나왔는데 자신이 공중으로 둥둥 떠오르는데도 아빠는 멀뚱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더라는 딸의 꿈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실제였다면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웃고 넘긴 교수는 강의 시간에 다른 때와 달리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뭔가 친근한 느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게 된다, 학생 중 몇이 말한다. 꿈에 교수님이 나왔는데 그저 멀거니 서 있더라는 것이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이미지 제공. 워너비펀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이미지 제공. 워너비펀
더욱 놀랍게도 이후 교수는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에 이 사실이 퍼져나가고 교수는 단숨에 밈이 된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반갑고 친근한 표정으로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청하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친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여기까지였으면 그에게 악몽 같은 시간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꿈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교수와 관련한 나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꿈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사람들은 이제 교수를 멀리하고 미워하고 저주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꿈에서 본 교수가 무서워 강의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급기야 심리학자가 동원돼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함께 극복해보자고 하지만 교수가 강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학생들은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우르르 몰려 나간다.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나 어떤 초능력으로 타인의 꿈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꿈속의 일은 현실이, 실제가 아닌 것이다. 자못 억울하지만 꿈속에서 교수에게 당한 타인들은 실존적 존재인 교수와는 상관없이 그를 질타하고 폭행하고 끌어내린다.

우리는 매일 꿈을 꾼다. 잠에서 깬 후 잊어버리는 것일 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뿐. 꿈속에는 누군가가 나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혹은 영화 속 군중처럼 그저 존재감 없는 사람들, 알지도 못하고 실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친한 사람이라면 비교적 자주 꿈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다지 친하거나 교류가 많은 사람이 아닌데 자신의 꿈에 등장함으로써 순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왠지 모르게 일방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꿈은 꿈을 꿀 때는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단편적인 서사는 가능하지만 파편적이거나 말이 되지 않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매일 꾸는 꿈은 아직도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신비롭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흥미롭고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린다.

도대체 꿈이란 무엇인가?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이미지 제공. 워너비펀
영화 <드림 시나리오> 스틸컷 / 이미지 제공. 워너비펀
# 2. 꿈을 통해 들여다본 집단 무의식

그, 히로아키는 ‘몽찰’이라는 방법으로 누군가에게서 추출된 꿈의 기록을 보면서 해석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사적인 누군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저 평범한 어느 날들 중 하루였던 그날,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운동장으로 뛰쳐나온다. 그 후로 아이들은 악몽에 시달리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아이들의 ‘몽찰’을 보게 되는데 유독 선명하게 기록된 한 아이의 꿈에서 삼족오를 보게 되고 동료들과 직접 현장으로 내려온다.

오래 함께 같은 일을 해 온 동료도 있고 처음 합류한 전문가들도 있지만 함께 일을 하러 가는 팀이라는 느낌이어서 큰 불편함이 없지만 낯익은 듯하면서도 초면인 경찰청 소속이라는 이와시미즈만은 왠지 마음에 자꾸만 걸려 온다.

게다가 10년 전 세상을 떠난, 예지몽을 꾸던 유이코와 비슷한 사람을 본 (혹은 보았다고 생각한) 이후 히로아키는 곳곳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어쩐지 이와시미즈의 말이 자꾸만 마음을 흔든다.

온다 리쿠는 히로아키의 말을 빌려 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꿈은 외부에서 온다. 우리가 잠든 사이 외계와 접하고 감지한다. 잠꼬대하는 사람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고 잠든 사람 가까이에서 큰 소리를 내면 잠든 사람은 꿈속에서 큰 소리를 듣는다.

게다가 영감이나 예술적 이미지는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개개인의 의식 외부에 인류 전체가 공유한 거대한 무의식이 있다. 꿈도 그중 하나이다.

그 거대한 무의식이 의지를 가졌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꿈은 우리 스스로와 연관이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는 별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무의식과 관련이 크다는 것이다. 내가 꾸는 꿈이지만 나의 뜻이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꿈은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환경, 우리의 내면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주변의 타인들과 어딘가 모르게 연결된 접점들을 가지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도 교류가 어려웠던 시대에는 지역마다 구성원들의 무의식 또는 꿈이 달랐을 것이다.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과 시각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세계가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문화와 비슷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고 동시간으로 문화콘텐츠를 나누고 향유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비슷한 취향, 비슷한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고 비슷한 영감과 비슷한 작품, 비슷한 감상,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곧 집단 무의식의 팽창 혹은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온다 리쿠 장편소설 <몽위> / 이미지 출처. 예스24
온다 리쿠 장편소설 <몽위> / 이미지 출처. 예스24
일상에서 풀어내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오싹하고도 서정적인 이야기를 정말 잘 쓰는 온다 리쿠의 소설 <몽위>. 한 초등학교의 4학년 학생들이 함께 겪은 사건을 해결하고자 아이들의 몽찰을 해석하며 집단 무의식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히로아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꿈과 집단 무의식에 대한 사고를 던진다.

과연 우리의 꿈은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이며 어떤 경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 3. 우정수 작가의 <머리맡에 세 악마>

벽면을 거의 채운 작품에는 갖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다.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꿈의 조각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와 미래적인 소재가 병렬되고 신화적 모티브가 차용되었으며 현재와 과거 또는 미래의 시제가 혼재되어 있다. 보자마자 느끼게 된다.

‘아, 이것은 꿈이로구나.’

뒤죽박죽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관통하는 서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부분 부분은 단편적이지만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꿈을 구경하는 듯한 팝아트적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한다. 미스터페인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캐릭터는 관람자에게 ‘이것은 꿈이니 그렇게 심각하게 바라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도 하다. 어차피 꿈은 해석하기 어려운 누군가의, 우리의, 당신의 무의식이 아니던가.

그중에 눈에 뜨이는 장면이 있다. 예술가로 보이는 누군가를 붙잡고 달콤하고 교묘한 협박을 하고 있는 악마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걸작을 남기고 싶다,는 일종의 클리셰 같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시대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예술가들이 그토록 갈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 (부분) / 이미지 제공. 신지혜 (전시장에서 직접 촬영)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 (부분) / 이미지 제공. 신지혜 (전시장에서 직접 촬영)
찬찬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예술가의 작품들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집단적 사고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집단의 가치관이었을 것이며 집단이 함께 향유한 문화였을 것이다. 그것은 집단의 행동양식과 삶의 기조를 이루는 집단 무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꿈은 집단 무의식과 개인의 파편적 서사가 부딪혀 만들어내는 융합체인 것인지...

과연 우리의 꿈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지혜 칼럼니스트•멜팅포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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