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나빠지자…슬쩍 발언수위 낮춘 '강경파' 이복현 [금융당국 포커스]
12일 오전 9시. 금융감독원이 보도자료 수정본을 금융당국·기재부 기자단에 배포했다. 오전 9시 30분에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가 풀리는 자료다. 기사 배포 30분 전에 금감원이 부랴부랴 보도자료 수정본을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금감원이 수정을 요청한 보도자료는 이복현 원장의 자본시장연구원·한국증권학회의 공동 정책 세미나 축사였다. 축사 내용 가운데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었다. 발언 강도를 몇 단계 낮춘 것이다.

오탈자를 고치는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발언 강도를 조정하는 보도자료 수정 재배포 사례는 많지 않다. 이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원장이 축사를 하는 이번 행사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다룬다.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손질할 계획이다. 현행 상법에 있는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이사는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로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다.

야당과 개인 투자자들은 이 같은 개정안 통과를 지지하고 있다. 이 원장도 이 같은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축사에서도 "다수의 시장 참여자도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를 지적하고 있다"면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 같은 상법개정안이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주주의 지분 보유 목적이 단기 투자, 장기 투자, 배당 수익 등으로 제각각이란 점에서 이사가 어떤 경영 판단을 하든 일부 주주에게는 충실의무 위반이 될 여지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반발이 커지면서 이 원장도 발언 강도를 낮추는 등 자세를 낮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부처 일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를 중심으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것"이라며 이 같은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반발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정책 추진 강도를 낮추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김익환/선한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