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실사구시 저출생 대책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또 한 번 저출산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1분기 기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연간 합계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6년째 초저출산을 이어가는 나라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국가 소멸의 대표적 사례로 한국이 지목되고 있다.

저출생 대책은 경제, 사회, 복지 등 모든 분야 정책의 종합판이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최대 난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을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 경제기획원 차원의 부처를 만들어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저출생대응기획부와 저출생수석을 신설하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저출생 대책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한다. 10년은 지나야 성과가 나타난다. 정부와 상관없이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성공 비결이다.

저출생 대책은 젊은 세대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여건을 조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출산수당 등 재정을 투입하면 출산율이 반등할 것이라는 재정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가정 양립 문화가 중요하다.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출산 패턴을 보이는 것은 일·가정 양립 전통과 관련이 깊다. 돌봄 문화가 제대로 정착해야 한다. 돌봄 인력은 2022년 기준 19만 명이 부족하다. 한국은행은 2042년 61만~255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논란이 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예외 적용은 수용되지 않았다.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육아휴직 활성화가 시급하다.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률은 28%로 2016년 8.7%에서 크게 늘었지만, 아직 유럽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육아휴직 사용 기간도 남성 7.5개월, 여성 9개월로 남성의 사용 실적이 부진하다. 일본은 남성 17.1%, 여성 83%로 보수적인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일본은 6년 내에 남성 육아휴직률을 85%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유연근무제도 널리 확산돼야 한다. 일본 이토추상사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채택해 오전 5~8시 출근하고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방식을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같은 기간 회사 내 출산율은 0.6명에서 1.97명으로 증가했다.

주거 문제가 결혼과 출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높은 집값이 저출생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사교육보다 크게 작용한다. 주거 마련 비용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크다. 지난 정부 때 급등한 주택 가격과 급격한 출생아 감소는 상관관계가 높다. 1인 가구 급증도 비슷한 맥락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와 지급 요건 개선이 저출생 타파의 주요 타깃이 돼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5~39세 맞벌이 부부의 무자녀 비율은 2022년 36.3%를 기록했다. 무자녀 부부의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은 34.6%로 유자녀 부부의 52%보다 크게 떨어진다. 주거 불안정성이 무자녀 부부의 출산 저해 요인임을 보여준다.

개방적 이민정책도 적극 추진돼야 한다.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나라다. 미국 상위 인공지능(AI) 기업 43개 중 28개를 이민자가 설립했다. 스페인은 이민자 600만 명을 받아들여 총인구 감소 위기에 대처했다. 보수적인 일본조차 이민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독일도 줄어드는 생산인구를 외국인 근로자 고용으로 해결해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유연한 비자 정책으로 노동력을 보충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경제학적으로 이민이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조선업 전체 인력의 16%, 신규 인력의 86%가 외국인 근로자다. 생산 현장의 고령화, 높은 임금 수준, 낮은 생산성 문제가 산적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이민 문호 개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합계출산율 1.5명대인 영국에서는 “추락하는 출산율은 다음 세계대전에서 우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널리 통용된다. 0.6명대 합계출산율이 현실이 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출생은 제2의 국란이라는 위기의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