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 12일 오후 3시 24분

중국과 중동의 ‘물량공세’에 대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대응은 ‘합종연횡’으로 요약된다. 범용 석유화학제품 생산량을 줄이는 동시에 생산 시스템도 효율화해야 해외 기업에 맞설 체력을 갖출 수 있어서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쿠웨이트국영석유화학회사(KIPIC)에 나프타분해설비(NCC) 사업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방식으로 합작사(JV)를 설립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남 여수 제2공장만 대상이었지만 충남 대산공장을 포함한 NCC 사업 전체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원유와 나프타를 싼값에 들여오기 위해 산유국의 국영기업과 손잡으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NCC는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정부는 해외 매각보다 국내 기업 간 합병을 희망할 것”이라며 “정부가 최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조조정 기업에 세제 지원 등을 검토하기로 한 만큼 합종연횡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용 석유화학제품 구조조정에 나선 건 LG화학뿐만이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진출의 선봉 역할을 해온 말레이시아 타이탄 공장을 매물로 내놨다. SK지오센트릭은 선제적으로 2020년 말 울산 NCC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발을 뺐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에틸렌 공급을 목적으로 세운 합작사인 여천NCC도 합작 기한이 끝나는 올해 말을 목표로 회사 분할 및 매각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까지가 국내 기업 간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멈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9조2580억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울산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COTC·샤힌 프로젝트)이 2026년부터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서 에틸렌 180만t을 포함해 연 320만t의 석유화학제품을 쏟아내면 기존 석유화학 업체들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진다.

화학업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NCC 사업에 진출한 2015년과 본격 가동에 들어간 2020년에도 경고음이 울렸지만 국내 기업들은 잠시 찾아온 단기 호황에 오히려 설비를 늘렸고 이게 지금의 위기를 부른 측면이 크다”며 “구조조정 외엔 별다른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준호/김형규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