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 작가님, 스누피 만화에는 왜 흑인 캐릭터가 없나요" [서평]

신간 <친애하는 슐츠 씨>
'피너츠' 흑인 캐릭터 탄생 비화
차별 넘어선 선구자들 소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캐릭터 '스누피'의 아버지 만화가 찰스 슐츠는 1968년 독자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스누피가 나오는 만화 '피너츠'에 백인뿐 아니라 흑인 아이 캐릭터도 넣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인종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 아이들의 태도와 인식 변화에 슐츠의 그림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친애하는 슐츠 씨>엔 이 편지로부터 시작해 피너츠에 첫 흑인 캐릭터 '프랭클린'이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슐츠는 처음 편지를 받고나선 "해결책을 모르겠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단순히 흑인 캐릭터 하나를 넣는 것은 흑인을 오히려 내려다보는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슐츠는 '토큰 블랙'(백인 등장인물 사이에 형식적으로 넣은 흑인 조연 캐릭터)이란 비판적인 시각을 우려했다.

하지만 편지를 쓴 해리엇 글릭먼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설득의 편지를 썼고, 흑인 이웃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슐츠와 글릭먼이 몇달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프랭클린이 탄생했다.

슐츠는 프랭클린이 등장하는 장면과 대사를 세심하게 설계해 당시 논란이 되던 인종 관련 문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흑인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속설과 편견을 위트 있게 반박하거나, 흑인도 미국 시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을 일상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식이다.

책은 슐츠 외에도 인종과 젠더, 장애 등 사회 속 오래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과거 미국에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주도한 주디 휴먼은 뉴욕 한복판 매디슨 애비뉴를 막는 시위를 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며 욕을 먹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러나 휴먼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날 미국에선 버스가 휠체어를 탄 승객을 태우느라 잠시 멈춰선 것에 불평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무례한 질문에도 꼬박꼬박 답해야 하는 기자 회견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고 싶다고 선언한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스포츠 선수로서 정신력과 애국심을 강요하는 올림픽에서 기권한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미묘한 폭력이 횡행하는 촬영장에서 동료 여배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운 케이트 윈슬릿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로 미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양성과 편견, 차별의 주제는 지구촌 곳곳에서 긴급한 화두다. 우리 곁엔 차별의 관습을 끊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구자들이 있다. 사회의 변화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특별한 한 사람이 없으면 일어나기 힘들다. 특별한 그들을 응원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