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마르게리트 위모 개인전 'Dust' 전시 전경.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마르게리트 위모 개인전 'Dust' 전시 전경.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올여름 '불볕더위'가 벌써 심상치 않다. 더위에 지칠 때면, 도심에 오아시스처럼 흩어진 갤러리들을 찾는 건 어떨까. 오늘날 직면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전시라면 금상첨화다.

해외 신진작가들이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국 미술 무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국내 첫 개인전을 연 프랑스의 마르게리트 위모(38)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파라 알 카시미(33)다. 작품 구석구석 숨겨진 기후 위기에 관한 경고음이 등골 서늘해지는 오싹함을 선사한다.

예술로 되살린 20만평 황무지

미국의 버려진 황무지가 예술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에서 열린 마르게리트 위모의 아시아 첫 개인전에서다. 198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는 영국을 중심으로 영상과 회화, 사운드, 설치를 오가며 활동중이다. 이번 전시엔 미국의 휴경지를 배경으로 제작한 사진 연작과 조각 7점, 수채화 4점을 선보였다.
마르게리트 위모가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Dust'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마르게리트 위모가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Dust'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위모와 화이트큐브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화이트큐브 서울점 개관 기념 그룹전에서 새하얀 흰개미 집 조각으로 국내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순백의 전시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더스트(Dust)'로 정했다. 흙먼지와 거미줄 등 황폐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작가의 예술관이 반영된 결과다.

작가는 지난해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 콜로라도 산루이스 협곡을 찾았다. 움푹 패인 황무지가 현 세대와 미래를 잇는 '차원 관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광활한 벌판에 서식하는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을 환기하는 키네틱 조각 84점을 설치했다. 총규모 20만평에 달하는 대지 미술 '기도(Orisons)'가 탄생한 배경이다.
마르게리트 위모, 'Orisons' 연작, 2023.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마르게리트 위모, 'Orisons' 연작, 2023.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이번 전시는 기도의 연장선에 있다. 사막처럼 메마른 대지를 촬영한 사진들 사이로 이들을 연결하는 조각을 배치했다. 작가가 '3차원 뜨개질'이라고 명명한 기법으로 제작했는데, 조각들은 거미줄이 쳐진 듯 그물에 감싸진 모양새다. 거미줄 안에는 귀향길이 막힌 철새, 인간이 길들인 가축 등이 갇혀 있다.
마르게리트 위모, 'the disappearance of the bird', 2024.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마르게리트 위모, 'the disappearance of the bird', 2024.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위모의 조각은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며 자연의 찰나를 기록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우연한 조각(Chance Piece)'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황무지에 들어선 그의 조각은 바람에 의해 흩날리고, 세월에 의해 빛이 바랜다. 작가는 "앞으로 척박해질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삶의 나침반"이라고 설명했다.

"대지 위 모든 게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사체와 바람, 파리 한 마리까지도 제 작품의 일부에요." 전시는 8월 17일까지.

자연을 대체한 대형마트의 '가짜 태양'들

국내에서 걸프 지역의 현대미술을 만나볼 기회는 좀처럼 드물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쉽지 않은 문화권의 '여성 사진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서울 소격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린 파라 알 카시미의 국내 첫 개인전은 그의 최근 사진 작품 19점과 영상을 한 번에 만나볼 기회다.
파라 알 카사미 개인전 '블루 데저트 온라인' 전시 전경.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파라 알 카사미 개인전 '블루 데저트 온라인' 전시 전경.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카시미는 일찌감치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았다. 작가는 지난해 LG전자가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신예 아티스트'에 올랐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모던, 퐁피두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인터넷과 기술이 발달하며 나타나는 환경문제와 가상현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UAE에서 태어나 17세에 미국으로 이주하며 인터넷과 게임에 익숙해진 작가의 배경이 녹아든 덕분이다. 전시 제목 '블루 데저트 온라인'도 국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검은 사막'에서 따왔다.
파라 알 카시미, '드래곤 마트 조명 디스플레이(Dragon Mart Light Display)', 2018, Archival Inkjet Print, 175 x 127 cm.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파라 알 카시미, '드래곤 마트 조명 디스플레이(Dragon Mart Light Display)', 2018, Archival Inkjet Print, 175 x 127 cm.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온라인 게임에서 태양은 유토피아나 목표지점을 상징하곤 하는 매개체다. 그런데 카시미의 태양 이미지엔 함정이 숨어있다. 태양처럼 생긴 물체 중 일부는 마트에 진열된 오렌지나 망고, 전구 등이다. 어느새 태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상품이 대체한 현대사회의 허영심을 지적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태양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를 나타내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작가는 지난해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여파로 스모그에 뒤덮인 뉴욕 하늘을 촬영했다. 작가는 "북미에선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에게 자연이 보내는 경고"라고 말했다.
파라 알 카시미, '돌고래 분수(Dolphin Fountain)', 2023, Archival Inkjet Print, 76 x 101 cm.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파라 알 카시미, '돌고래 분수(Dolphin Fountain)', 2023, Archival Inkjet Print, 76 x 101 cm. /바라칸컨템포러리 제공
그런데도 작가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뉴욕의 일몰을 촬영한 사진 속 태양이 다른 작품들보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늘이 너무 맑으면 태양이 잘 보이지 않아요. 스모그로 물든 하늘에서 오히려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태양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8월 11일까지.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