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가 남긴 원고는 누구의 것인가…'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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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기의 재판 추적한 논픽션…법정 드라마 보듯 생생
2007년 이스라엘 당국은 텔아비브에 살던 에바 호페라는 70대 여성에게 천재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생전에 카프카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그녀는 카프카의 고국 체코에서도 멀리 떨어진 텔아비브에서 어떻게 카프카의 원고를 갖고 있었을까.
또 프라하의 독일어 사용 유대인이었던 카프카의 유고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가 죽기 전에 친구였던 작가 막스 브로트에게 모두 불태워달라고 말했던 유고의 운명을 치밀하게 추적해 그 문화사적 함의를 짚은 논픽션이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프라하의 작가 막스 브로트의 유산은 에바 호페에게 가야 하는가, 아니면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으로 가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차라리 독일 마르바흐의 '독일문학 아카이브'에 보관돼야 하는가.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개인의 소유권과 두 나라의 공익이 맞부딪친 첨예한 다툼의 현장이었던 유명한 소송전의 처음과 끝을 치밀한 시선으로 따라가는데, 마치 한 편의 흥미로운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관계과 그에 따른 사후 유고 출간 등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까운 친구였던 카프카의 남다른 천재성을 알아채고 매니저를 자처했던 막스 브로트는 친구의 뜻을 거슬러 유고를 불태우지 않고 보관했다가 나중에 세상에 내놓았다.
브로트의 이런 결단으로 20세기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프카의 '성', '소송' 등의 소중한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고, 카프카는 사후에도 불멸성을 획득했다.
이 책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1939년 3월 나치가 유럽을 손아귀에 넣기 직전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원고가 담긴 트렁크를 품에 안고 프라하를 간신히 탈출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텔아비브에 정착한 그는 친구가 남긴 방대한 원고의 편집을 위해 같은 체코 난민 출신인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채용한다.
브로트는 이후 1968년 세상을 뜨는데, 자식을 남기지 않았던 그는 전 재산을 자신과 가까웠던 이 비서 호페에게 남긴다.
브로트의 사후 에스테르 호페는 카프카의 원고를 조금씩 매각하며 살아갔다.
1988년 '소송'의 원본 원고를 경매에 내놨을 때는 당시 200만 달러라는 거액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낙찰되기도 했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가 100세가 넘은 나이로 사망하자 두 딸인 에바와 루트는 상속 절차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등장해 두 딸에게는 카프카 유고의 상속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텔아비브 가정법원에서 그해 시작된 소송은 지방법원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적·윤리적·정치적·문화적 딜레마로 가득한 분쟁으로 치닫는다.
에바 호페는 좌절과 소외감 속에서 끝까지 싸우기로 하고 마지막 항소를 제기하는데, 이 장면이 바로 이 책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의 시작점이다.
당시 이스라엘 언론과 여론은 그녀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녀를 고양이들과 동거하는 괴짜 독신녀로 그리거나 개인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화재로 한몫 챙기려고 하는 기회주의자로 그리려고 작정한 듯했고, 그녀는 기자들이 지어내는 거짓말들에 억울해했다.
"(9쪽)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엄마인 에스테르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던 에바에게 카프카의 유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삶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고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에바 측의 핵심 논거였다.
반대로,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유산을 상속한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 선택할 권한은 줬지만, 그 결정을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카프카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됐는데 카프카의 유고가 독일(마르바흐 아카이브) 소관이라는 것도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카프카가 생전에 시오니즘(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인 국가에 의해 소유돼야 한다고 이스라엘 정부는 강변했다.
2016년에 나온 대법원 최종 판결은 이스라엘 정부의 승리였다.
그리고 에바는 2018년 84세로 숨을 거둔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법정 싸움을 이어갔던 에바의 삶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카프카 유고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스라엘 법정의 논쟁적 재판 과정과 그와 관련한 주요 인물의 삶 속으로 독자를 생생하게 인도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의 아픈 역사, 개인과 국가 권력의 관계, 문학과 종교 등에 관해 저자가 제기하는 굵직한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올해 사후 100주기를 맞은 카프카는 자신이 불태워버리라고 했던 원고의 소유권을 놓고 후대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진 것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렇게 말했을 것도 같다.
"이런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이미 패소했다는 뜻이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문학과지성사. 김정아 옮김. 396쪽.
/연합뉴스
생전에 카프카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그녀는 카프카의 고국 체코에서도 멀리 떨어진 텔아비브에서 어떻게 카프카의 원고를 갖고 있었을까.
또 프라하의 독일어 사용 유대인이었던 카프카의 유고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가 죽기 전에 친구였던 작가 막스 브로트에게 모두 불태워달라고 말했던 유고의 운명을 치밀하게 추적해 그 문화사적 함의를 짚은 논픽션이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프라하의 작가 막스 브로트의 유산은 에바 호페에게 가야 하는가, 아니면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으로 가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차라리 독일 마르바흐의 '독일문학 아카이브'에 보관돼야 하는가.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개인의 소유권과 두 나라의 공익이 맞부딪친 첨예한 다툼의 현장이었던 유명한 소송전의 처음과 끝을 치밀한 시선으로 따라가는데, 마치 한 편의 흥미로운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관계과 그에 따른 사후 유고 출간 등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까운 친구였던 카프카의 남다른 천재성을 알아채고 매니저를 자처했던 막스 브로트는 친구의 뜻을 거슬러 유고를 불태우지 않고 보관했다가 나중에 세상에 내놓았다.
브로트의 이런 결단으로 20세기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프카의 '성', '소송' 등의 소중한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고, 카프카는 사후에도 불멸성을 획득했다.
이 책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1939년 3월 나치가 유럽을 손아귀에 넣기 직전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원고가 담긴 트렁크를 품에 안고 프라하를 간신히 탈출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텔아비브에 정착한 그는 친구가 남긴 방대한 원고의 편집을 위해 같은 체코 난민 출신인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채용한다.
브로트는 이후 1968년 세상을 뜨는데, 자식을 남기지 않았던 그는 전 재산을 자신과 가까웠던 이 비서 호페에게 남긴다.
브로트의 사후 에스테르 호페는 카프카의 원고를 조금씩 매각하며 살아갔다.
1988년 '소송'의 원본 원고를 경매에 내놨을 때는 당시 200만 달러라는 거액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낙찰되기도 했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가 100세가 넘은 나이로 사망하자 두 딸인 에바와 루트는 상속 절차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등장해 두 딸에게는 카프카 유고의 상속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텔아비브 가정법원에서 그해 시작된 소송은 지방법원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적·윤리적·정치적·문화적 딜레마로 가득한 분쟁으로 치닫는다.
에바 호페는 좌절과 소외감 속에서 끝까지 싸우기로 하고 마지막 항소를 제기하는데, 이 장면이 바로 이 책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의 시작점이다.
당시 이스라엘 언론과 여론은 그녀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녀를 고양이들과 동거하는 괴짜 독신녀로 그리거나 개인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화재로 한몫 챙기려고 하는 기회주의자로 그리려고 작정한 듯했고, 그녀는 기자들이 지어내는 거짓말들에 억울해했다.
"(9쪽)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엄마인 에스테르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던 에바에게 카프카의 유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삶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이었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고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에바 측의 핵심 논거였다.
반대로,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유산을 상속한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 선택할 권한은 줬지만, 그 결정을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카프카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됐는데 카프카의 유고가 독일(마르바흐 아카이브) 소관이라는 것도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카프카가 생전에 시오니즘(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인 국가에 의해 소유돼야 한다고 이스라엘 정부는 강변했다.
2016년에 나온 대법원 최종 판결은 이스라엘 정부의 승리였다.
그리고 에바는 2018년 84세로 숨을 거둔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법정 싸움을 이어갔던 에바의 삶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카프카 유고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스라엘 법정의 논쟁적 재판 과정과 그와 관련한 주요 인물의 삶 속으로 독자를 생생하게 인도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의 아픈 역사, 개인과 국가 권력의 관계, 문학과 종교 등에 관해 저자가 제기하는 굵직한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올해 사후 100주기를 맞은 카프카는 자신이 불태워버리라고 했던 원고의 소유권을 놓고 후대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진 것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렇게 말했을 것도 같다.
"이런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이미 패소했다는 뜻이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문학과지성사. 김정아 옮김. 39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