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다음번에 못 나오면 어쩌나 긴장…이승주·루나 발견 큰 보람"
한 수 보여주러 연기의 달인들이 왔다…노익장 빛난 연극 '햄릿'
"춥다! 뼈가 시리도록 추워."
무대에 선 60년 관록의 배우 박정자(82)가 비탄에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가 이 장면에서 맡은 대사는 고작 몇 줄. 그러나 특유의 낮고 준엄한 어조로 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말 그대로 압도됐다.

이달 9일부터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은 노장 배우들의 관록이 빛나는 작품이다.

유랑극단 배우1과 배우2 역을 각각 맡은 박정자와 손숙(80), 선왕 역의 이호재와 전무송(83), 클로디어스 역의 정동환(75), 무덤파기 역의 김재건(77) 등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연기의 달인들이 모였다.

마치 '연기는 이런 것'이라고 한 수 보여주려는 것처럼 3시간 동안 무대를 장악한다.

손진책이 이해랑(1916~1989)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선보인 초연에 이어 2022년 재연, 올해 삼연까지 연출을 맡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살리되, 죽은 자의 시선으로 산 자를 바라봄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린 연출이 이번 공연의 특징이다.

한 수 보여주러 연기의 달인들이 왔다…노익장 빛난 연극 '햄릿'
신·구 배우들이 어우러진 무대로 호평받았던 재연 때처럼 이번에도 원로 배우들은 조연으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그러나 존재감만큼은 햄릿을 비롯한 주요 캐릭터 못지않게 크다.

그중에서도 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클로디어스 역의 정동환은 특히 눈에 띈다.

1977년 햄릿으로 무대에 섰던 그는 이번엔 햄릿과 대립각을 세우는 숙부로 변신했다.

젊은 햄릿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그는 쩌렁쩌렁한 소리로 무대 구석구석 대사를 전달한다.

어려운 고어로 이뤄진 대사를 쏟아내면서도 강약 조절과 감정 연기 또한 놓치지 않는다.

선왕을 연기하는 이호재는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이 맺혀 유령으로 떠도는 선왕이 아들에게 건네는 "안녕, 나를 잊지 마라"는 당부는 관객의 뇌리에도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박정자와 손숙의 콤비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1막 하이라이트인 10장에서는 왕을 풍자하는 극중극을 통해 도입부와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를 빚어낸다.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시선을 오랫동안 잡아끈다.

한 수 보여주러 연기의 달인들이 왔다…노익장 빛난 연극 '햄릿'
박정자는 13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연극은 방송이나 영화와 달리 매번 라이브다.

관객이 매번 새롭게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배우들의 책무"라면서 "저희는 (무대에서) 늘 살아 있다"고 했다.

손숙은 "재연 때 출연한 배우분 중에 이번엔 연세가 많으셔서 참여하지 못한 분도 계시다"며 "다음에는 '내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 때문에 굉장히 긴장된다"고 했다.

원로 배우들은 '햄릿'에 새롭게 합류한 후배들에 대한 격려도 빼놓지 않았다.

손숙은 "저번에는 강필석이란 배우를 탄생시켰다면 이번에는 이승주와 루나를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

굉장히 큰 보람"이라고 했다.

전무송 역시 "훌륭한 후배들이 제 뒤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의 후배들이 나타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며 웃었다.

이승주는 강필석과 함께 햄릿을 연기하며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루나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다.

원로와 중견, 젊은 배우 24명이 어우러져 오는 9월 1일까지 3개월간 대장정을 이어간다.

한 수 보여주러 연기의 달인들이 왔다…노익장 빛난 연극 '햄릿'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