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돌리고 고구마 구우며…'악마와 춤추라'는 스위스 최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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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바젤 최고의 미술관 바이엘러의 파격
'Dancing with the Daemons(악마들과의 춤을)'
아트바젤 만든 바이엘러 부부의 소장품
현대미술 조합해 '움직이는 미술관'
계속 바뀌는 그림의 위치와 전시 제목
설치미술 기계 작동하며 소음과 냄새까지
샘 켈러 관장 포함 8명 큐레이터가 2년 기획
20명 이상 예술가 참여한 '살아있는 미술관'
야외 정원엔 필립 파레노 '멤브레인'
하얀 안개에 사라졌다 나타나는 미술관
"이 기획을 이해하려면 여러 번 방문할 것"
아트바젤 기간 동안 도시 곳곳에선 '바이엘러 재단-LUMA재단 5.19-8.11'이라는 검정 글씨의 포스터가 휘날렸다. 미술관에 들어설 때까지 무슨 전시인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입장을 하고 나서야 전시명이 'Dancing with Daemons(악마들과의 춤을)'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전시명이 'Home for Strangers- 낯선 이들을 위한 집'으로 바뀌어 있고, 전시장에서 받은 안내문에는 'Cloud Chronicles'와 'All My Love Spilling Over-나의 사랑을 흩뿌려줘'라는 제목이 써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바이엘러 재단 영구 컬렉션들이 벽에 걸린 모습. 간격을 두지 않고 명작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전시됐다. 피에트 몬드리안, 엘스워스 켈리의 추상화 옆에 로니 혼의 올빼미 두 마리가 배치돼 있다. 그림들의 위치는 전시 기간 동안 여러 번 바뀐다. (c) Bora Ki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825.1.jpg)
예술품들의 아름다운 묘지, 바이엘러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은 1997년 지어졌다. 에른스트(1921-2010)와 그의 아내 힐디(1922-2008) 바이엘러가 400여 점의 소장품을 기증하며 설립됐다. 모네의 인상주의, 반 고흐의 후기 인상주의부터 피카소와 마티즈 등의 현대 걸작, 마크 로스코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잭슨 폴록에 이르는 전후 거장, 안젤름 키퍼 등 동시대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까지 그야말로 명작 중의 명작들이 영구 소장돼 있다.![전시장이 관람객들로 붐비는 가운데, 갤러리 직원들이 모네의 그림을 옮기고 있다. 컬렉션들은 전시 기간 동안에도 시도 때도 없이 위치를 여러 번 바꾼다. (c)Beyeler Foundation](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25.1.jpg)
여기까지는 유럽과 미국의 명성 높은 미술관들과 큰 차이가 없겠다. 그런데 이곳엔 샘 켈러(57)라는 '천재' 기획자가 관장으로 있다. 샘 켈러는 예술을 배운 적도 없고,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기업가에 가까웠던 그는 우연히 아트바젤의 디렉터로 일하다 아트바젤을 마이애미 비치로 옮기는 아이디어를 실행했고(2001년), "유럽 수퍼 박람회를 글로벌 더블 이벤트로 만든 천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예술계에 진입했다.
에른스트의 요청으로 2008년 바이엘러 재단에 합류한 그는 올라퍼 엘리아슨, 폴 고갱, 프란시스 데 고야, 게오르그 바젤리츠, 조지아 오키프와 몬드리안 전시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에른스트는 생전 "예술은 영혼을 씻는 것"이라는 친구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이 미술관이 영원히 모든 예술품들의 아름다운 묘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무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대를 거듭해 누구나 찾아와 이들의 작품을 기념하고 추모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묵상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 것.
21세기 미술관은 사람을 위한 곳
이번 전시는 샘 켈러가 8명의 세계적인 큐레이터들과 2년 간 머리를 맞댔다.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공동 관장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로슈의 상속녀이자 아를 박물관 단지를 운영하는 루마재단 설립자 마야 호프만 등이 참여했다. 예술가들의 면면은 더 화려하다.현재 리움에서도 전시하고 있는 현대미술가 필립 파레노를 포함해 후지코 나카야, 피에르 위그, 리크리트 티라바니야, 구정아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미술관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큰 주제는 자연과 세계, 생태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샘 켈러 관장은 평소 "미술관은 관습을 깨는 곳이어야 한다. 20세기 미술관이 작품을 위한 곳이었다면, 21세기 미술관은 사람을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미술관 숲속에 설치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c) Bora Ki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838.1.jpg)
![약 10분에 한번씩 분사되는 물안개에 필립 파레노의 '멤브레인'이 가려졌다 나타난다.
Fujiko Nakaya (*1933) Untitled, 2024.
Philippe Parreno (*1964), Membrane, 2024, © Fondation Beyeler, Riehen/Basel](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30.1.jpg)
![약 10분에 한번씩 분사되는 물안개에 필립 파레노의 '멤브레인'이 가려졌다 나타난다.
Fujiko Nakaya (*1933) Untitled, 2024.
Philippe Parreno (*1964), Membrane, 2024, © Fondation Beyeler, Riehen/Basel](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09.1.jpg)
![프레셔스 요코오몬의 '태양은 아이들을 잡아먹는다', 2024 (c)Beyeler Foundation](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28.1.jpg)
베이컨을 보는 자코메티, 모네 수련 위 돌덩어리
실험적인 쇼는 전시장 안에서도 계속된다. 전통적인 박물관 작업의 경계는 로비에서부터 무너진다. 갤러리 직원들이 쉴새 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그림을 옮기는 장면에 사람들은 "잘못 들어왔나" 두리번 거린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형 여성 조각 'Grand femmeⅢ과 Ⅳ'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인을 기리는 3부작 '조지 다이어를 기억하며' 앞에 서있는데 이 사연을 아는 이들에겐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작품들이 예상 밖으로 배치되어 있으니, 사람들의 동선도 일정하지 않다. 앉아서 보고, 좌우로 움직이며 보고,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서 보는 등 모두가 움직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그랑드 팜므 3'(1960)이 프랜시스 베이컨의 '조지 다이어를 기억하며'(1971)를 바라보고 있다. 루돌프 스팅켈의 '무제'(2019)도 나란히 걸렸다. (c) Bora Ki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808.1.jpg)
![모네의 수련 (Le bassin aux nymphéas) 위에 떠있는 구정아 작가의 '불가사의 불가사리'(2024). (c)Fondation Beyeler](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05.1.jpg)
![왼쪽부터 Max Ernst- Humboldt Current(1951), Wolfgang Tillmans-Transit of Venus(2012)과 In flight astro (2010) (c)Bora Ki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804.1.jpg)
![Beyeler Summer Show 2024. (c) Bora Kim](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801.1.jpg)
![Adrián Villar Rojas (*1980), The End of Imagination VII, 2024, (c)Fondation Beyeler](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22.1.jpg)
![Thomas Schütte, Frauenkopf(2006)과 마주하고 있는 Constantin Brancusi, L'oiseau, (1923)/ Fondation Beyeler](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04.1.jpg)
![세탁기 돌리고 고구마 구우며…'악마와 춤추라'는 스위스 최고 미술관](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28747.1.jpg)
![바이엘러 재단의 2024 여름 전시 'Dancing with Daemons' (c)Beyeler Foundation](https://img.hankyung.com/photo/202406/01.37077110.1.jpg)
예술 작품에 대해 배경 지식의 너비와 깊이에 따라 이 전시는 누군가에겐 '인생 전시회'로, 누군가에겐 '기묘한 기획'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의 기획자들이 모토로 삼았다던 '모든 것은 흐른다'는 그리스 격언 '판타 레이(Panta rhei)'는 실현됐다. 미술관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 지 그 실험의 끝을 보여준 건 확실해 보인다. 전시는 8월 11일까지다. 언제 방문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나올 수 있으니, 여러 번 다시 찾아도 좋겠다. 바젤(스위스)=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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