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온라인 군중은 왜 '디지털 단두대' 세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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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9개월째 이어지면서 민간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의 참상에 대해 일부 유명인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접속하지 말고 언팔(팔로 취소)하자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디지털 단두대(digital guillotine, 디지틴)’ 캠페인인데요, 팝스타 설리나나 고메즈, 저스틴 비버, TV 리얼리티 쇼로 유명한 카다시안 가족 등 수백 명의 스타가 타깃이 됐습니다.
가자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계획이 알려진 지난달 초, 미국 뉴욕에선 ‘멧 갈라’라는 화려한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참가한 셀러브리티(유명인)들이 인류의 아픔에 공감을 표시하기는커녕 비아냥대는 듯한 영상으로 논란이 됐죠. 이에 한 소셜미디어 제작자는 “그들에게 준 조회 수, ‘좋아요’, 댓글, 돈을 되찾아야 한다”라며 “디지털 단두대 형에 처한다”라고 했어요. 언급된 유명인은 하루에만 수만,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잃고 있습니다.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한 사람을 보이콧하는 문화현상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고 하는데, 이게 다시금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한 행위까지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온라인상의 여러 활동이 정치·사회적 생명 못지않게 중요해진 디지털 시대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격리시킬 수 있을까요? 디지틴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의미, 우려되는 부작용과 주의할 점 등을 4·5면에서 짚어봤습니다."당신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디지털 단두대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디지털 단두대(디지틴)’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셀러브리티(유명인),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등도 일반 소비재나 브랜드처럼 이제는 소비의 대상이 됐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일상, 걸치고 있는 의상과 액세서리, 말투와 표현법 등에 ‘좋아요(like)’와 ‘구독’을 누르고 콘텐츠를 퍼 나르는(공유) 모든 행위는 이들을 ‘소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유명인에게 광고 수익 등 금전적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소셜미디어상의 모든 요소가 돈이 되는 디지털 시대의 단면이죠. 그래서 ‘디지틴’ 선언은 “오늘부터 당신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 볼 수 있습니다.
셀럽도 소비하는 시대
소셜네트워크를 포함한 미디어 소비자는 과거처럼 일방적인 콘텐츠 수용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정보를 직접 생산하고 전달하는 역할까지 하는 네트워크상의 중요한 노드(node, 접속점)가 되고 있어요.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플랫폼과 유명인이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독’이나 ‘좋아요’로 응답했다면 유명인 등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기죠. 디지틴은 유명인의 광고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가자지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동참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입니다.
디지틴 캠페인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서 시작된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일종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캔슬 컬처는 어떤 인물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2017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촉발시켰습니다. 당시엔 특정 인물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보이콧 성격이 강했죠. 지금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팔로를 취소한다는 뜻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온 저항운동인 셈이죠. 그런데 디지틴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유명인에게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행동주의(activism)적 요소가 강해졌습니다.
‘해야 할 무언가’를 요구
여기에서 우리는 디지털상의 해시태그(#) 문화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특정 주제나 내용을 담은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는 해시태그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데 핵심적입니다. 소득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2011년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WallStreet)’, 성범죄를 폭로한 2017년의 ‘나도 당했다(#MeToo)’,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2020년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LivesMatter)’ 등이 대표적이죠. 복잡한 상황을 짧은 메시지에 담아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주류 미디어나 셀러브리티의 관심,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해시태그를 다는 것도 게시물 공유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그리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참여 가능하다고 해서 ‘클릭티비즘(clicktivis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디지틴은 자신이 소비하고 즐기던 무언가를 ‘끊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 행위유형이라 볼 수 있죠. 디지틴을 디지털 행동주의(digital activism)의 진일보한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캔슬 컬처가 디지털 행동주의로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비판도 없지는 않습니다.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는 디지털 기반 사회운동은 오프라인 시위로 이어지면 중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몸집을 감당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좀 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유명인을 압박할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스스로 가자전쟁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한편으론 디지틴의 효과 여부를 떠나, 가자지구 전쟁에 침묵한 유명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미국 공영방송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2. 디지털 공간의 콘텐츠들이 어떻게 수익을 낳고 재생산되는지 경험을 공유해보자.
3. 해시태그를 활용한 행동주의의 구체적 사례를 찾아보자.반대의견 용납 않는 '캔슬 컬처'의 위험성
디지틴 캠페인은 반전·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옹호하고 성·인종·계층 등의 차별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사회적 약자와 비주류 그룹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긍정적 요소가 있죠. 그러나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자유로운 토론을 위축시키고 상대편을 낙인찍고 편 가르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에코 체임버 효과 주목
기본적으로 소셜미디어는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논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토론을 벌이고 해시태그를 다는 열린 공간이죠. 그러나 현실은 이상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증폭되는 여러 부작용 때문이죠.
소셜미디어의 특성 가운데에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태도·신념에 맞는 정보만 골라서 소비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경향이 있어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이런 정보를 가려서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영향도 크죠. 알고리즘에 따라 이용자에게 맞게 필터링된 정보가 마치 거품처럼 사용자를 가둬버린다고 해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선 인종·종교·교육 수준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많이 접촉하는 ‘유유상종(homophily)’ 현상도 나타납니다. 결국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해주는 정보를 더 찾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해지게 됩니다.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만 이뤄지는 의사소통 때문에 신념이 증폭되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 효과)’도 같은 얘기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하고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 통로가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목해볼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 있어요. 2020년 미국의 언론인, 작가, 시민운동가 등 유명 인사 161명은 월간 문예지 <하퍼스>에 ‘캔슬 컬처’의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인종적·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는 저항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열린 토론과 견해차에 대한 관용의 원칙을 약화시키려는 것은 소리 높여 반대한다. 반대의견에 대한 불관용, 공개적 망신 주기와 따돌림,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편향적 확신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그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군중심리가 ‘마녀사냥’을 부르지 않으려면, 디지털 시대에 정의감을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졌습니다.
브랜드 행동주의와 관련될 수도
다음으로 디지털 행동주의는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사례에서 나타난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에서 이를 엿볼 수 있어요. 브랜드 행동주의는 기업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과감하게 밝히고 소비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넘어 좀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소비자가 원한다는 점에 착안한 겁니다.
이런 논의는 2018년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에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등장시키면서 촉발됩니다. 캐퍼닉은 당시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어요. 이후 성조기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는 인종차별과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항의를 상징하게 됐죠. 이후 리그에서 퇴출된 캐퍼닉을 나이키가 광고모델로 삼으면서 “당신의 신념을 믿으세요”라는 광고를 하며 논란을 일으킵니다. 어떤 미국인은 나이키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기도 했어요. 마케팅론의 대가 필립 코틀러는 이런 브랜드 행동주의를 “앞으로의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브랜딩”이라고 평가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디지털 행동주의는 기업의 새로운 차원의 마케팅과 결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양상은 과연 정의로울까요? 아니면 상업성이 다분한 기획일까요?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2. 자유로운 토론과 반론 기회의 보장 등이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이유를 알아보자.
3. ‘브랜드 액티비즘’의 다른 사례들도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가자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계획이 알려진 지난달 초, 미국 뉴욕에선 ‘멧 갈라’라는 화려한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참가한 셀러브리티(유명인)들이 인류의 아픔에 공감을 표시하기는커녕 비아냥대는 듯한 영상으로 논란이 됐죠. 이에 한 소셜미디어 제작자는 “그들에게 준 조회 수, ‘좋아요’, 댓글, 돈을 되찾아야 한다”라며 “디지털 단두대 형에 처한다”라고 했어요. 언급된 유명인은 하루에만 수만,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잃고 있습니다.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한 사람을 보이콧하는 문화현상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고 하는데, 이게 다시금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한 행위까지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온라인상의 여러 활동이 정치·사회적 생명 못지않게 중요해진 디지털 시대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격리시킬 수 있을까요? 디지틴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의미, 우려되는 부작용과 주의할 점 등을 4·5면에서 짚어봤습니다.
"당신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디지털 단두대
세상을 바꿔나가려는 행동주의 단면이죠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디지털 단두대(디지틴)’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셀러브리티(유명인),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등도 일반 소비재나 브랜드처럼 이제는 소비의 대상이 됐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일상, 걸치고 있는 의상과 액세서리, 말투와 표현법 등에 ‘좋아요(like)’와 ‘구독’을 누르고 콘텐츠를 퍼 나르는(공유) 모든 행위는 이들을 ‘소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유명인에게 광고 수익 등 금전적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소셜미디어상의 모든 요소가 돈이 되는 디지털 시대의 단면이죠. 그래서 ‘디지틴’ 선언은 “오늘부터 당신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 볼 수 있습니다.셀럽도 소비하는 시대
소셜네트워크를 포함한 미디어 소비자는 과거처럼 일방적인 콘텐츠 수용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정보를 직접 생산하고 전달하는 역할까지 하는 네트워크상의 중요한 노드(node, 접속점)가 되고 있어요.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플랫폼과 유명인이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독’이나 ‘좋아요’로 응답했다면 유명인 등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기죠. 디지틴은 유명인의 광고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가자지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동참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입니다.
디지틴 캠페인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서 시작된 ‘캔슬 컬처(cancel culture)’의 일종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캔슬 컬처는 어떤 인물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2017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촉발시켰습니다. 당시엔 특정 인물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보이콧 성격이 강했죠. 지금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팔로를 취소한다는 뜻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온 저항운동인 셈이죠. 그런데 디지틴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유명인에게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행동주의(activism)적 요소가 강해졌습니다.
‘해야 할 무언가’를 요구
여기에서 우리는 디지털상의 해시태그(#) 문화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특정 주제나 내용을 담은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는 해시태그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데 핵심적입니다. 소득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2011년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WallStreet)’, 성범죄를 폭로한 2017년의 ‘나도 당했다(#MeToo)’,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2020년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LivesMatter)’ 등이 대표적이죠. 복잡한 상황을 짧은 메시지에 담아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주류 미디어나 셀러브리티의 관심,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해시태그를 다는 것도 게시물 공유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그리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참여 가능하다고 해서 ‘클릭티비즘(clicktivis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디지틴은 자신이 소비하고 즐기던 무언가를 ‘끊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 행위유형이라 볼 수 있죠. 디지틴을 디지털 행동주의(digital activism)의 진일보한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캔슬 컬처가 디지털 행동주의로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비판도 없지는 않습니다.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는 디지털 기반 사회운동은 오프라인 시위로 이어지면 중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몸집을 감당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좀 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유명인을 압박할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스스로 가자전쟁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한편으론 디지틴의 효과 여부를 떠나, 가자지구 전쟁에 침묵한 유명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고 미국 공영방송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디지털 단두대 등장의 배경을 다시 확인해보자.2. 디지털 공간의 콘텐츠들이 어떻게 수익을 낳고 재생산되는지 경험을 공유해보자.
3. 해시태그를 활용한 행동주의의 구체적 사례를 찾아보자.
반대의견 용납 않는 '캔슬 컬처'의 위험성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조심해야
디지틴 캠페인은 반전·평화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옹호하고 성·인종·계층 등의 차별을 용납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사회적 약자와 비주류 그룹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긍정적 요소가 있죠. 그러나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자유로운 토론을 위축시키고 상대편을 낙인찍고 편 가르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필터 버블·에코 체임버 효과 주목
기본적으로 소셜미디어는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논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토론을 벌이고 해시태그를 다는 열린 공간이죠. 그러나 현실은 이상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증폭되는 여러 부작용 때문이죠.
소셜미디어의 특성 가운데에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태도·신념에 맞는 정보만 골라서 소비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경향이 있어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이런 정보를 가려서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영향도 크죠. 알고리즘에 따라 이용자에게 맞게 필터링된 정보가 마치 거품처럼 사용자를 가둬버린다고 해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선 인종·종교·교육 수준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많이 접촉하는 ‘유유상종(homophily)’ 현상도 나타납니다. 결국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해주는 정보를 더 찾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해지게 됩니다.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만 이뤄지는 의사소통 때문에 신념이 증폭되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 효과)’도 같은 얘기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하고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 통로가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목해볼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 있어요. 2020년 미국의 언론인, 작가, 시민운동가 등 유명 인사 161명은 월간 문예지 <하퍼스>에 ‘캔슬 컬처’의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인종적·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는 저항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열린 토론과 견해차에 대한 관용의 원칙을 약화시키려는 것은 소리 높여 반대한다. 반대의견에 대한 불관용, 공개적 망신 주기와 따돌림,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편향적 확신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그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군중심리가 ‘마녀사냥’을 부르지 않으려면, 디지털 시대에 정의감을 올바르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졌습니다.
브랜드 행동주의와 관련될 수도
다음으로 디지털 행동주의는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사례에서 나타난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에서 이를 엿볼 수 있어요. 브랜드 행동주의는 기업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과감하게 밝히고 소비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넘어 좀 더 많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를 소비자가 원한다는 점에 착안한 겁니다.
이런 논의는 2018년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에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등장시키면서 촉발됩니다. 캐퍼닉은 당시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어요. 이후 성조기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는 인종차별과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항의를 상징하게 됐죠. 이후 리그에서 퇴출된 캐퍼닉을 나이키가 광고모델로 삼으면서 “당신의 신념을 믿으세요”라는 광고를 하며 논란을 일으킵니다. 어떤 미국인은 나이키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기도 했어요. 마케팅론의 대가 필립 코틀러는 이런 브랜드 행동주의를 “앞으로의 자본주의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브랜딩”이라고 평가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디지털 행동주의는 기업의 새로운 차원의 마케팅과 결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양상은 과연 정의로울까요? 아니면 상업성이 다분한 기획일까요?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NIE 포인트
1. 소셜미디어의 여러 부정적 특성에 대해 경험한 바를 친구들과 이야기해보자.2. 자유로운 토론과 반론 기회의 보장 등이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이유를 알아보자.
3. ‘브랜드 액티비즘’의 다른 사례들도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