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꽉 찼어요" 인기…강남서 반응 폭발한 투어의 정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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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강남 아트' 갤러리 투어 동행
관내 200여개 미술관·전시관 중 선별
도보로 이동하며 관람…"2시간이면 예약 꽉 차"
작가 초청해 직접 작품 설명 듣기도
설치 미술·비디오 아트 등 색다른 전시까지
관내 200여개 미술관·전시관 중 선별
도보로 이동하며 관람…"2시간이면 예약 꽉 차"
작가 초청해 직접 작품 설명 듣기도
설치 미술·비디오 아트 등 색다른 전시까지
"그냥 지나치듯 그림만 보는 것은 작품 감상이 아니죠"
서울 강남구에서 거주하는 50대 김재숙(가명)씨는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사진으로 담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퇴근 후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최근에는 입선까지 했다. 미래의 작가로서 집 근처에서 하는 갤러리 투어엔 당연히 참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14일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갤러리 가이아'에는 김씨 뿐만 아니라 그림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강남구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시 투어 프로젝트 '강남 아트' 코스의 첫 방문지였다. 참가자들은 대기하는 시간 동안 간단히 다과를 즐기면서 자유롭게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했다.
강남구청이 갤러리 투어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이다. 당시 10명 이내로 진행되던 투어는 코로나19로 인해 방역 정책이 강화되면서 중단됐지만, 팬데믹 이후 "갤러리 투어를 부활시켜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재개됐다. 강남 아트가 재개된 후 이제 겨우 3회차를 맞았지만, 벌써 입소문이 났다. 강남구 내에 있는 200여개의 갤러리와 미술관을 직접 도보로 돌아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코스와 프로그램도 매번 다르게 구성된다. 강남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신청할 수 있지만, 유독 인근 거주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이번 투어 신청일이었던 지난달 24일엔 접수 2시간 만에 30명 정원 예약이 모두 찼다.
이날 또 다른 투어 참가자 40대 최경림(가명)씨는 "최근 일이 바빠지면서 문화 생활을 즐길 틈이 없었는데 옛날의 취미를 다시 찾으려고 신청했다"며 "경쟁률이 높아 신청일에 대기하고 있다가 간신히 성공했다. 그런데 지인 몇명은 또 놓쳤다고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참가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작품은 '악어의 눈물'로 그림 속엔 회색빛의 호랑이와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가 담겨 있다. 악어의 눈에는 길게 풀어 놓은 파란 리본이 눈물처럼 달려 있다. 라이언 킴은 "패배한 정적 앞에서 흘리는 위선적인 눈물을 표현하려고 했다. 리본은 악어의 눈물이 가짜라는 의미"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작가의 설명을 듣던 김씨는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기회가 흔치 않다. 아무래도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고, 뻔하지 않은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음에 방문한 갤러리인 '에스파스 루이비통' 전시관은 도보로 5분 거리였다. 구청 담당자가 노란 깃발을 들면 참가자들은 이를 따라 이동했다. 최고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는 찜통같은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이동 중에도 작품에 대해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전시관은 실제로 루이비통을 판매하고 있는 매장이기도 했다. 전국 루이비통 매장 중 전시관을 같이 운영하는 곳은 청담점이 유일하다. 1~3층이 매장이고, 4층은 정기적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다. 이날은 미국의 섬유예술가 셰일라 힉스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었다. 힉스는 자수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섬유예술로 유명한 작가다.
특히 힉스의 대표작 '착륙'에 참가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이 작품은 여러 색상의 섬유가 공중에 매달린 형태로, 크기가 무려 3m에 달한다. 또 독특한 질감의 섬유 뭉치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 벽에 붙어 있는 '벽 속의 또 다른 틈'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 작품들이다. 루이비통 측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던 40대 홍예진(가명)씨는 "작품들이 대단한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닌데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것 같다"는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다.
투어를 동행한 강남구청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아무래도 명품 매장이 운영하는 전시장은 혼자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설치 미술' 작품전인 경우엔 더욱더 그렇다"며 "갤러리 투어를 통해 그 벽을 좀 깨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투어 때는 에르메스 전시관을 방문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갤러리는 '송은'이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스웨덴 출신의 듀오 아티스트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는 영상과 음악, 조형물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와 조각, 공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란 점에서 역시 대중적으로 익숙지 않은 형식이지만,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전문 큐레이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40대 허채은(가명)씨는 "일부러 그렇게 구성했는지 모르겠는데 투어가 진행될수록 작품들이 파격적"이라며 "마지막 전시가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혼자라면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하루에 몇 곳의 갤러리를 둘러볼 생각을 했겠나"라며 "갤러리 투어 자체가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시간만 충분하고, 경쟁률만 낮다면 정말 매달 오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신청자 중 강남구민이 30%고, 그다음으론 서초구와 송파구 거주자들이 많다. 물론 다른 구에서 신청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강남 지역 신청자가 반 이상인 상황"이라며 "앞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강남 아트가 서울 전 지역에서 신청자가 몰리는 갤러리 투어가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매월 1~2회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강남 아트는 이달 말 한 번 더 시행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과 코스는 나오지 않았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서울 강남구에서 거주하는 50대 김재숙(가명)씨는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사진으로 담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퇴근 후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최근에는 입선까지 했다. 미래의 작가로서 집 근처에서 하는 갤러리 투어엔 당연히 참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14일 오후 1시께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갤러리 가이아'에는 김씨 뿐만 아니라 그림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강남구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시 투어 프로젝트 '강남 아트' 코스의 첫 방문지였다. 참가자들은 대기하는 시간 동안 간단히 다과를 즐기면서 자유롭게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했다.
강남구청이 갤러리 투어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이다. 당시 10명 이내로 진행되던 투어는 코로나19로 인해 방역 정책이 강화되면서 중단됐지만, 팬데믹 이후 "갤러리 투어를 부활시켜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재개됐다. 강남 아트가 재개된 후 이제 겨우 3회차를 맞았지만, 벌써 입소문이 났다. 강남구 내에 있는 200여개의 갤러리와 미술관을 직접 도보로 돌아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코스와 프로그램도 매번 다르게 구성된다. 강남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신청할 수 있지만, 유독 인근 거주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이번 투어 신청일이었던 지난달 24일엔 접수 2시간 만에 30명 정원 예약이 모두 찼다.
이날 또 다른 투어 참가자 40대 최경림(가명)씨는 "최근 일이 바빠지면서 문화 생활을 즐길 틈이 없었는데 옛날의 취미를 다시 찾으려고 신청했다"며 "경쟁률이 높아 신청일에 대기하고 있다가 간신히 성공했다. 그런데 지인 몇명은 또 놓쳤다고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화제의 강남 아트 '갤러리 투어' 직접 가보니
높은 경쟁률을 뚫고 모인 참가자들은 투어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날 투어는 갤러리 가이아에서 진행 중인 작가 라이언 킴의 작품전을 감상하는 데서 시작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는 특정 동물의 행동을 통해 우리 사회 이면을 드러내는 그림을 주로 그려왔다. 갤러리 1층과 지하에는 그의 그림 수십 점이 빼곡하게 걸렸다. 작가도 갤러리에서 직접 참가자들을 맞았다.참가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작품은 '악어의 눈물'로 그림 속엔 회색빛의 호랑이와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가 담겨 있다. 악어의 눈에는 길게 풀어 놓은 파란 리본이 눈물처럼 달려 있다. 라이언 킴은 "패배한 정적 앞에서 흘리는 위선적인 눈물을 표현하려고 했다. 리본은 악어의 눈물이 가짜라는 의미"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작가의 설명을 듣던 김씨는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기회가 흔치 않다. 아무래도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고, 뻔하지 않은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음에 방문한 갤러리인 '에스파스 루이비통' 전시관은 도보로 5분 거리였다. 구청 담당자가 노란 깃발을 들면 참가자들은 이를 따라 이동했다. 최고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는 찜통같은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이동 중에도 작품에 대해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전시관은 실제로 루이비통을 판매하고 있는 매장이기도 했다. 전국 루이비통 매장 중 전시관을 같이 운영하는 곳은 청담점이 유일하다. 1~3층이 매장이고, 4층은 정기적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다. 이날은 미국의 섬유예술가 셰일라 힉스의 개인전이 진행 중이었다. 힉스는 자수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섬유예술로 유명한 작가다.
특히 힉스의 대표작 '착륙'에 참가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이 작품은 여러 색상의 섬유가 공중에 매달린 형태로, 크기가 무려 3m에 달한다. 또 독특한 질감의 섬유 뭉치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 벽에 붙어 있는 '벽 속의 또 다른 틈'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 작품들이다. 루이비통 측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던 40대 홍예진(가명)씨는 "작품들이 대단한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닌데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것 같다"는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다.
투어를 동행한 강남구청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아무래도 명품 매장이 운영하는 전시장은 혼자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설치 미술' 작품전인 경우엔 더욱더 그렇다"며 "갤러리 투어를 통해 그 벽을 좀 깨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투어 때는 에르메스 전시관을 방문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갤러리는 '송은'이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스웨덴 출신의 듀오 아티스트인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버그는 영상과 음악, 조형물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와 조각, 공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란 점에서 역시 대중적으로 익숙지 않은 형식이지만,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전문 큐레이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40대 허채은(가명)씨는 "일부러 그렇게 구성했는지 모르겠는데 투어가 진행될수록 작품들이 파격적"이라며 "마지막 전시가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혼자라면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하루에 몇 곳의 갤러리를 둘러볼 생각을 했겠나"라며 "갤러리 투어 자체가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시간만 충분하고, 경쟁률만 낮다면 정말 매달 오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제 '강남' 아트에서 '서울' 아트로"
강남구는 강남 아트가 강남을 넘어서 서울 전 지역민이 찾는 명물이 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현재까진 참가자 대부분이 소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지역 거주자들이다.강남구청 관계자는 "신청자 중 강남구민이 30%고, 그다음으론 서초구와 송파구 거주자들이 많다. 물론 다른 구에서 신청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강남 지역 신청자가 반 이상인 상황"이라며 "앞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강남 아트가 서울 전 지역에서 신청자가 몰리는 갤러리 투어가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매월 1~2회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강남 아트는 이달 말 한 번 더 시행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과 코스는 나오지 않았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