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낳은 70살 홍학 ‘거트루드’가 둥지를 짓는 모습 / 사진 = 영국 노포크 노리치시의 펜스솔프 보호구역 제공
알을 낳은 70살 홍학 ‘거트루드’가 둥지를 짓는 모습 / 사진 = 영국 노포크 노리치시의 펜스솔프 보호구역 제공
번식과 짝짓기와는 거리가 멀 거라 여겨진 70살 된 암컷 홍학이 이번에 알을 낳았다. 평균 수명이 35살 안팎인 홍학에게 있어 이같은 일은 최초다.

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영국의 한 자연보호구역에 사는 대홍학(Phoenicopterus roseus) '거트루드'가 지난 5월 초 알을 낳았다고 보도했다. 큰홍학은 야생에서 평균 30~40년을 사는데, 거트루드는 평균 수명을 훌쩍 넘겨 올해 만 70살이다. 보호구역은 대홍학이 거트루드처럼 70살에 번식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거트루드는 지난 2018년부터 영국 노포크 노리치시의 '펜스솔프 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에서 지냈다. 홍학은 1년에 한 차례 정도 번식을 하는데, 거트루드는 지난 6년간 짝짓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보호구역 관리자인 벤 마셜은 워싱턴포스트에 "거트루드는 아주 특별한 존재지만, 그동안 사랑에는 운이 없었고 남자친구를 만든 적도 없다"고 말했다. 보호구역에는 거트루드를 제외하고도 62마리의 홍학이 더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말 거트루드의 생활에 변화가 감지됐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무리에서도 조용했던 거트루드가 자신보다 33살이나 어린 수컷 홍학 '길'과 애정행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셜은 "거트루드와 길은 서로 (홍학의 구애 행동 가운데 하나인) '날개 인사'를 하고 다양한 구애의 춤을 서로에게 해 보였다"고 말했다.

마셜은 "거트루드는 평소 짝짓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올해 번식기에는 자신감을 내보였다"라며 "연하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짝짓기 본능을 일깨우는 걸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거트루드의 짝짓기는 실제 알낳기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5일 보호구역 직원들은 거트루드가 알을 낳아 둥지를 만든 것을 발견했다. 알이 부화하기까지는 26~31일이 걸리는데 거트루드는 열흘 동안 꼼짝없이 앉아 알을 품었다. 그러나 5월 중순에 이르러 알품기를 포기했다. 거트루드가 알이 부화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직원들은 추측했다.

대홍학이 거트루드처럼 장수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전례가 없진 않다. 미국 워싱턴디시(D.C)의 '미국 국립동물원'에 살던 '베티'는 2022년 6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퀸즐랜드주의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원'에 살던 홍학 '그레이터'는 83살까지 살고 2014년 사망했다.

비록 거트루드의 알이 부화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거트루드가 짝짓기 본능을 되찾은 만큼 다시 번식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마셜은 "거트루드가 최근에는 '새우'라는 이름의 17살 수컷 홍학과 어울리고 있다"라며 "아직 로맨틱한 모습은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같이 먹이를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