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는 청소년이 세상을 접하는 창구다. /미드저니 제작
소셜미디어는 청소년이 세상을 접하는 창구다. /미드저니 제작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 자녀가 유튜브에서 ‘국민가게’ 모 브랜드를 검색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해당 매장에서 성인용품을 구할 수 있다는 식의 콘텐츠가 검색 상단에 버젓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브라우저로 들어갔기 때문에 유튜브에 로그인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누가 보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성인용 콘텐츠를 ‘전체공개’로 띄우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요즘 아이들을 일러 ‘호모 스마트포니쿠스’라고 한다. 현실의 좁은 공간에 비해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세상은 넓고 한계가 없다. 대신 규칙도 없다. 소셜미디어는 미성년자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추천하고도 책임은 사용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10대 청소년, 하루 평균 8시간 인터넷 사용

1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22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하루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479.6분(모바일·PC 합산)에 달했다. 매일 평균 8시간가량을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상태로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배운다. 부모가 맞벌이일수록, 한부모 가정일수록 스마트폰의 영향력은 커진다. 현실 세계보다 화면 속 세상을 택하는 일도 늘고 있다. 하루 16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을 하며 보내다 새벽 6시가 돼서야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등교를 거부하는 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게임, SNS, 영화·TV·동영상, 숏폼 등 모든 콘텐츠 부문에서 자기 조절력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4명 중 1명은 스마트폰 때문에 가족 또는 친구·동료와 다투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험,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아동의 연령대별 비중. / Ofcom 2024년 보고서
온라인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아동의 연령대별 비중. / Ofcom 2024년 보고서

제발로 ‘토끼굴’에 들어가는 아이들

"속옷 차림 남녀가 누워서…" 13세 아이 스마트폰에 '충격' [알고리즘 지배사회]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유튜브와 틱톡 같은 ‘콘텐츠 소비형’ 소셜미디어는 중독적이고 유해하다. 2022년 네이처지에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X(옛 트위터)와 같은 양방향 소통형 소셜미디어에 비해 유튜브와 틱톡 같이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계의 소셜미디어 이용자에게서 우울감, 자살충동, 섭식장애, 낮은 행복감 등이 더 많이 관찰됐다는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앰네스티가 알고리즘 투명성 기구(ATI) 및 AI포렌식과 함께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틱톡은 13세로 설정한 계정에 대해 시작한 지 3~20분 사이에 ‘포유(추천)’ 영상 피드를 통해 성(性)적인 내용을 담거나 우울한 생각, 자기혐오, 자살충동을 부추기는 식의 유해 콘텐츠 제공을 시작했다.

이런 콘텐츠를 ‘토끼굴(rabbit holes)’이라고 부른다. 한번 들어가면 더 자극적인 콘텐츠에 이끌려 클릭을 계속 하게 되고, 이런 콘텐츠를 보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힘든 것을 토끼굴에 비유한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이런 콘텐츠를 ‘깔아 놓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튜브 이용자(YT)는 다른 플랫폼 이용자(All) 대비 자살에 관한 생각을 하는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F는 페이스북, T는 트위터(현 X), I는 인스타그램, S는 스냅챗. / 네이처 2022
유튜브 이용자(YT)는 다른 플랫폼 이용자(All) 대비 자살에 관한 생각을 하는 비중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F는 페이스북, T는 트위터(현 X), I는 인스타그램, S는 스냅챗. / 네이처 2022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많이 내놓을수록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이를 금전적, 비금전적으로 보상한다. 틱톡은 최근 숏폼 영상 시청시간에 비례해 현금 포인트를 지급하는 ‘틱톡라이트’도 시작했다. 신종 앱테크로 불리는 틱톡라이트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미성년자도 가입할 때 생년월일만 성인이라고 입력하면 된다며 유혹하는 글이 적지 않다. 추천 가입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보상을 유도하는 알고리즘 때문이다.

앰네스티와 유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미국 비영리단체 디지털혐오방지센터(CCDH)는 “디지털 공간은 식민지화됐다”며 “혐오와 잘못된 정보를 도구로 사용하는 악의적인 이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튜브 이용자(YT)는 다른 플랫폼 이용자(All) 대비 주관적인 행복감을 낮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F는 페이스북, T는 트위터(현 X), I는 인스타그램, S는 스냅챗. / 네이처 2022
유튜브 이용자(YT)는 다른 플랫폼 이용자(All) 대비 주관적인 행복감을 낮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F는 페이스북, T는 트위터(현 X), I는 인스타그램, S는 스냅챗. / 네이처 2022
빅테크 플랫폼은 그런 콘텐츠는 모두 ‘성인용’이라고 주장한다. 유튜브의 경우 ‘유튜브 키즈’ 앱을 깔면 비교적 건전한 콘텐츠만 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유튜브 키즈 콘텐츠에는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요즘 청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손에 ‘(디지털) 마약’이 쥐어지는 셈”이라며 “알콜중독 등 다른 중독 치료와 마찬가지로 여가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지 않아도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7세 미성년 설정해도 19금 콘텐츠 띄우는 유튜브

유튜브는 미성년자 회원 가입에 엄격한 제한을 둔다. 가족 계정을 통해 미성년자 계정을 생성할 때 만 9~12세와 만 13~17세를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설정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19금’ 동영상이 뜨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게 마련이다.

14일 한국경제신문이 스마트폰 공기계 3대를 이용해 5일간 실험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유튜브키즈’가 아니라 일반 ‘유튜브’ 앱은 미성년자에게도 19금 콘텐츠를 버젓이 추천했다. 관련 검색어를 치면 빠른 속도로 계정이 19금화됐다. 일반 성인용 유튜브 계정과 차이는 있었지만 구멍이 숭숭 난 체를 쓰는 수준이었다.

유튜브에 미성년자로 회원가입을 하면 부모 계정과 연동할 수 있는 옵션이 뜬다. 부모는 본인·카드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증을 마치면 ‘자녀에게 적합한 콘텐츠 설정 선택하기’ 화면이 뜨고 여기에서 연령제한을 설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만 X세 이상 시청자에게 적합한 콘텐츠 등급에 따라 설정됩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필요에 따라 △둘러보기(만 9~12세) △더 둘러보기(만 13~17세) △대부분의 유튜브(만 18세 이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3세로 설정한 계정은 처음에는 고양이 영상, 여자 아이돌 직캠 등을 검색하자 비교적 무난한 콘텐츠를 띄웠다. 그러나 ‘노출’과 관련한 키워드를 검색한 순간 콘텐츠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극적인 19금 영상이 가감 없이 떴다. 성(性)에 관한 콘텐츠를 클릭하거나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나이와 관계없이 성인용 콘텐츠로 직행한다는 얘기다.

13세 계정으로 설정한 휴대폰에는 ‘요즘 10대들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 ‘결국 끝까지 가버린 여자’ ‘치마를 부여잡지만’ ‘쾌감이 오는 자세’ 같이 적나라한 제목의 동영상과 쇼츠가 상위 콘텐츠에 버젓이 추천됐다. 속옷 차림의 남녀가 누워서 스킨십을 하는 영상도 보였다. 성인 알고리즘과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9세로 설정한 계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19금 콘텐츠가 뜨진 않았지만 ‘노출’을 검색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남성이 여성의 신체 중요 부위를 더듬는 영상이 맨 앞머리에 추천됐고 ‘마음에 드는 부위에 뽀뽀’ ‘좁은 공간에서 닿으면 생기는 일’ 등의 제목이 달린 쇼츠가 올라왔다. 베드신을 보여주는 중국 드라마 영상도 상위 콘텐츠에 올라왔다. 미성년자 연령제한을 걸어둔 스마트폰에서도 성인과 차이가 나지 않는 19금 동영상이 추천되는 것이다.

다만 키워드를 검색할 때는 각 계정 간 차이가 있었다. 검색란에 ‘노출’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 성인용 유튜브에는 적나라한 19금 동영상이 다수 검색됐지만 미성년자 계정에서는 해당 동영상이 보이지 않았다. 또 만 9~12세 계정에는 동영상에 댓글을 달거나 읽는 기능이 없다. 만 13~17세 계정에서는 댓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다.

유튜브 고객센터에 따르면 ‘둘러보기’ 설정에서는 유튜브키즈보다 조금 더 폭넓은 주제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유튜브는 만 9~12세를 위한 이 계정이 “낮은 수위의 애정 표현과 매력 어필이 포함된 로맨스 소재의 동영상”과 “연령대에 적합하고 성적 취향 및 성 정체성 주제 또는 사춘기, 생식과 같은 성교육 주제를 다루는 교육적인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더 둘러보기’ 계정에서는 “성적 행위에 관한 명시적이지 않은 설명, 신체 접촉 장면과 같은 성적 주제를 다루는 동영상”과 “성적 취향 및 성 정체성 주제 또는 성 발달, 생식 건강, 금욕, 질병 예방과 같은 성교육 주제를 다루는 교육용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스스로 주체성을 갖게 도와줘야"

“알고리즘은 굳이 세상의 총천연색 빛깔을 다 보여주지 않아요. 오히려 ‘나의 세계’에 갇히도록 맞춤 추천을 하는 데 골몰하죠.”

지난해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책을 발간한 디지털에이전시 스텔러스의 김지윤 대표(사진)는 청소년 스마트폰 이용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한 인물이다.
김지윤 작가
김지윤 작가
김 대표는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알고리즘에 갇힌 아이들은 ‘다른 길’에 대한 상상력이 약해지고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며 “이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에만 몰입하는 게 본인의 손실이고 누군가에겐 이득이 된다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주체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온라인 마케팅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한 김 대표는 소셜미디어 화면(알고리즘)이 ‘인위적으로 디자인된 것’이라는 점에 경각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유튜브 등의 무한 스크롤은 이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디자인”이라며 “콘텐츠를 담는 ‘그릇’에 해당하는 미디어의 모양과 작동 방식은 사용자의 생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특히 “숏폼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가 눈뜨는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하는 것, 시간을 모두 바치는 것은 분명 ‘과몰입’이나 ‘중독’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 플랫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되 너무 많이 추구하지 말자는 식으로 “모순된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부의 규제와 통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인공지능(AI) 등장 후 빅테크 스스로도 가이드라인이 돼줄 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무조건 빅테크 플랫폼을 쓰지 않는 게 좋다거나 부정적인 점만 거듭 얘기하는 것은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원격근무, 재택근무도 10년 전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제일 간단하고 궁극적인 해법은 ‘언어화’다. 청소년이 ‘나는 왜 이것(스마트폰)을 쓰고, 무엇에 쓰고, 어떻게 쓰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성장 방향에 스마트폰이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말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알고리즘을 일부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속 세상이 역동적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밋밋하고 진부하다”며 “청소년이 새롭고 낯선 것을 알아가며 느끼는 ‘경이감’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자극적인 콘텐츠를 퍼붓는 대신 발견과 상상을 하는 빈 곳이 있는 경험을 해야 하고, 알고리즘도 이런 부분을 자극하는 쪽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은/장서우/임다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