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세 친구들, 또 다른 바다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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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연극 '연안지대'...와즈디 무아와드 전쟁 4부작 중 첫 작품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30일까지
“너의 아버지를 죽인 너야 말로,
여기 있는 시신을 잘 묻어드려야할 사람이야.”
소녀 사베가 친구 아메에게 소리쳤다. 아메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버지를 적군으로 착각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베의 고함에 아메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이 떠올랐다. 사베가 아메의 상처를 건드린 이유는 또 다른 친구 윌프리드의 아버지가 숨을 거뒀기 때문이고, 아메가 윌프리드의 아버지 시신을 아무데나 묻자고 했기 때문이다. 사베는 아메에게 속죄할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
사실은 소녀 사베의 아버지도 죽었다. 그는 전쟁통에 자신의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베, 아메, 윌프리드 모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윌프리드는 아버지의 시신을 소중히 짊어지고 친구들과 함께 장지를 찾아나선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2번째 연극인 ‘연안지대’는 주인공 윌프리드가 아버지 이스마일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전쟁의 민낯을 그렸다.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 원작이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 내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며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의 서사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전쟁의 화마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은 윌프리드의 아버지가 시신일지라도 머리와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다는 점에 경외심을 느낀다. 그리고 온전한 시체를 매장하는 행위에 숭고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마주하며 아이들은 희망에 대한 의심, 그리고 포기와 회피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전쟁이 횡행하는 땅에 이스마일을 묻을 수 없었기에, 결국 바다에 그를 떠나보낸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떤 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연안지대 전반부는 아버지 이스마일의 시신을 어머니 무덤에 합장하려는 아들 윌프리드와 그를 말리는 친척들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내뱉는 대사, 구질구질한 일상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고로 인해 조금이나마 영화 주인공 같아졌다고 하는 윌프리드의 철없는 모습 등이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 곁을 거절 당한 아버지를 들고,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후반부는 혀에 떨어진 펩사이신만큼 맵고 쓰라리다. 대사는 전쟁의 포화보다 끔찍한 인간의 잔인함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해 관객의 불쾌와 불편함을 두루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공연은 무대 배경을 조명과 반사판의 빛 등을 활용해 물결을 형상화했다. 물결의 형상이 배우들의 얼굴 위로 겹쳐질 때 비로소 실낱같은 희망을 담은 대사도 가끔 만나볼 수 있다.
바다는 극중 인물들처럼 의심, 회피, 포기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한번쯤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라고 말을 거는 듯 보였다.
연안지대의 물결은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우러지고, 전쟁 고아들이 마음의 결계를 풀고 속마음을 꺼내보이도록 한 곳. 바다는 모든 것을 쓸어가기도 하지만, 다시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상징성을 은유했다.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 김정, 윌프리드역 이상우, 이스마일역 윤상화 등 배우들이 꾸미는 연안지대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여기 있는 시신을 잘 묻어드려야할 사람이야.”
소녀 사베가 친구 아메에게 소리쳤다. 아메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버지를 적군으로 착각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베의 고함에 아메는 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이 떠올랐다. 사베가 아메의 상처를 건드린 이유는 또 다른 친구 윌프리드의 아버지가 숨을 거뒀기 때문이고, 아메가 윌프리드의 아버지 시신을 아무데나 묻자고 했기 때문이다. 사베는 아메에게 속죄할 기회를 잡으라고 했다.
사실은 소녀 사베의 아버지도 죽었다. 그는 전쟁통에 자신의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베, 아메, 윌프리드 모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윌프리드는 아버지의 시신을 소중히 짊어지고 친구들과 함께 장지를 찾아나선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2번째 연극인 ‘연안지대’는 주인공 윌프리드가 아버지 이스마일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전쟁의 민낯을 그렸다. 레바논 출신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전쟁 4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 원작이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 내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며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의 서사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전쟁의 화마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은 윌프리드의 아버지가 시신일지라도 머리와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다는 점에 경외심을 느낀다. 그리고 온전한 시체를 매장하는 행위에 숭고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내전으로 희생된 시신들로 가득 찬 세상을 마주하며 아이들은 희망에 대한 의심, 그리고 포기와 회피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전쟁이 횡행하는 땅에 이스마일을 묻을 수 없었기에, 결국 바다에 그를 떠나보낸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떤 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연안지대 전반부는 아버지 이스마일의 시신을 어머니 무덤에 합장하려는 아들 윌프리드와 그를 말리는 친척들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내뱉는 대사, 구질구질한 일상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고로 인해 조금이나마 영화 주인공 같아졌다고 하는 윌프리드의 철없는 모습 등이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 곁을 거절 당한 아버지를 들고,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후반부는 혀에 떨어진 펩사이신만큼 맵고 쓰라리다. 대사는 전쟁의 포화보다 끔찍한 인간의 잔인함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해 관객의 불쾌와 불편함을 두루 자극했다.
그러면서도 공연은 무대 배경을 조명과 반사판의 빛 등을 활용해 물결을 형상화했다. 물결의 형상이 배우들의 얼굴 위로 겹쳐질 때 비로소 실낱같은 희망을 담은 대사도 가끔 만나볼 수 있다.
바다는 극중 인물들처럼 의심, 회피, 포기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한번쯤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라고 말을 거는 듯 보였다.
연안지대의 물결은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우러지고, 전쟁 고아들이 마음의 결계를 풀고 속마음을 꺼내보이도록 한 곳. 바다는 모든 것을 쓸어가기도 하지만, 다시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상징성을 은유했다.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 김정, 윌프리드역 이상우, 이스마일역 윤상화 등 배우들이 꾸미는 연안지대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