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을 빼곡히 채운 자료들… "일본의 영화 열정이 이렇게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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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국립영상자료원 르포 (下)
[上편에 이어] ▶▶▶ 긴자 옆 '영화의 거리' 쿄바시, 일본 영화의 100년사가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전시장, 7층으로 향했다. 7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부터 전시를 보러 오는 방문객들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과 유학생 방문객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사실 일본의 (영화)음악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 이번 전시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일본의 영화 산업, 즉 영화 제작에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특히 일본 만화 (극장용)에 등장하는 당대의 음악가, 그리고 영화 음악가들의 스코어, 노래 등은 다른 차원의 예술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수려하고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인류의 첫 유성 영화는 1927년에 공개된 <재즈 싱어> (주연 알 졸슨)이다. 이는 일대의 사건이자 충격이었다. 영화가 공개된 날, 관객들과 영화 관계자들은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 영화로 인해 유성 영화의 시대로의 전환이 바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유성 영화의 상영과 제작을 위해서 상당한 기계들이 필요했는데 당시 뉴욕에 기반하고 있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공간과 인적 자원이 풍부한 서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유성 영화가 현재의 할리우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유성 영화들 (talkies)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가령 MGM의 전매특허인 뮤지컬 영화들은 유성 영화의 발명 이래로 탄생한 영화들 중 가장 사운드와 음악이 집약적으로 쓰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 영화의 황금기인 1950년대 영화들에서 음악이 중요한 부분으로 기능했다는 것은 일본의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의 행보에서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시의 서문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일본의 영화산업은 다양한 예술과의 협업을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당시 활약했던 상당수의 작곡가들이 이 시기부터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일본 영상자료원에서는 이 시기에 가장 빛나는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들이 참여한 영화 61편을 선정해 상영하고 다양한 관련 자료들과 사진을 전시하는 중이었다. 발매된 LP와 영화 포스터, 그리고 글 자료를 둘러보던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작곡자 중 한 명은 하야사카 후미오였다. 하야사카는 <라쇼몽>,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를 포함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들의 음악을 담당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이자 영화 음악가이다.
이번 전시와 함께 상영되는 작품은 구로사와의 또 다른 협업 <주정뱅이 천사> (1948, 醉いどれ天使)라는 누아르 영화다. 영화는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결핵에 걸린 야쿠자 두목과 그를 치료하고자 하는 가난한 의사와의 우정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하야사카는 “이미지의 톤과는 대조되는 음악을 붙이는 대위법적 접근을 통해 영상과 음악의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야사카 후미오 역시 영화 속 야쿠자 캐릭터와 같은 병, 결핵으로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 인터뷰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막역한 친구, 하야사카를 잃은 후 오랫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 온 작품은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 (1951)이다. 영화는 스트리퍼, 카르멘이 고향으로 돌아오며 생기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뮤지컬이다.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영화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작곡가인 키노시타 타다시는 감독 키노시타의 친동생으로 <여자 이야기> (1954), <카르멘 사랑에 빠지다> (1952) 등 케이스케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곡가는 이번 전시에서 일본 영화의 황금기에 '가장 약진한 아티스트'로 소개되었던 아쿠타가와 야스시이다. 그는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음악가로 그의 저서 <음악의 기초>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일본 영상자료원 전시 이벤트를 통해 상영되는 그의 작품은 총 4편으로 그중 한편인 <내면의 굴레> (1955)는 아쿠타가와의 음악적 실험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시카와 다쓰조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아쿠타가와는 단일 악기, 챔발로를 이용해 음악을 완성하는 시도를 했고, “챔발로를 거의 최초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 음악사에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전시장은 영화의 스틸 사진들과 사운드트랙의 커버들, 영화의 홍보 전단지 등으로 빼곡했다. 비교적 서둘러서 둘러보고 해설을 읽는 데만도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전시장을 떠나면서, 자료원을 떠나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배가 고프다는 생각 이외에) 일본이 자국 영화, 특히 고전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들이는 정성이었다. 이는 자료원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자료원을 찾는 방문객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통해서도 느낀 점이었다. 물론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뛰어난 기획과 자료 복원들로 성취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에 비해 관객들의 (고전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전은 위대하다. 한형모의 <자유부인>과 박남옥의 <미망인>은 영화 연구자와 평론가들, 일부 매니아 층에서만 소구될 영화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그리고 세계 영화사에서도 언급될 수 있을 만한 가치와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번 일본 영상자료원 방문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를 넘어, 영화에 대한 예찬과 사랑이 담긴 러브 레터를 읽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한국의 영상자료원이 보유한 고전들, 그리고 그들이 써 내려가는 ‘러브 레터’ 역시 더 많은 한국 관객을 통해 공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마지막으로 대망의 전시장, 7층으로 향했다. 7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부터 전시를 보러 오는 방문객들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과 유학생 방문객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사실 일본의 (영화)음악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 이번 전시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일본의 영화 산업, 즉 영화 제작에 있어 음악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특히 일본 만화 (극장용)에 등장하는 당대의 음악가, 그리고 영화 음악가들의 스코어, 노래 등은 다른 차원의 예술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수려하고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인류의 첫 유성 영화는 1927년에 공개된 <재즈 싱어> (주연 알 졸슨)이다. 이는 일대의 사건이자 충격이었다. 영화가 공개된 날, 관객들과 영화 관계자들은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 영화로 인해 유성 영화의 시대로의 전환이 바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유성 영화의 상영과 제작을 위해서 상당한 기계들이 필요했는데 당시 뉴욕에 기반하고 있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공간과 인적 자원이 풍부한 서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유성 영화가 현재의 할리우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유성 영화들 (talkies)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가령 MGM의 전매특허인 뮤지컬 영화들은 유성 영화의 발명 이래로 탄생한 영화들 중 가장 사운드와 음악이 집약적으로 쓰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 영화의 황금기인 1950년대 영화들에서 음악이 중요한 부분으로 기능했다는 것은 일본의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의 행보에서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시의 서문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일본의 영화산업은 다양한 예술과의 협업을 시도했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당시 활약했던 상당수의 작곡가들이 이 시기부터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일본 영상자료원에서는 이 시기에 가장 빛나는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들이 참여한 영화 61편을 선정해 상영하고 다양한 관련 자료들과 사진을 전시하는 중이었다. 발매된 LP와 영화 포스터, 그리고 글 자료를 둘러보던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작곡자 중 한 명은 하야사카 후미오였다. 하야사카는 <라쇼몽>,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를 포함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들의 음악을 담당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이자 영화 음악가이다.
이번 전시와 함께 상영되는 작품은 구로사와의 또 다른 협업 <주정뱅이 천사> (1948, 醉いどれ天使)라는 누아르 영화다. 영화는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결핵에 걸린 야쿠자 두목과 그를 치료하고자 하는 가난한 의사와의 우정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하야사카는 “이미지의 톤과는 대조되는 음악을 붙이는 대위법적 접근을 통해 영상과 음악의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야사카 후미오 역시 영화 속 야쿠자 캐릭터와 같은 병, 결핵으로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 인터뷰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막역한 친구, 하야사카를 잃은 후 오랫동안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 온 작품은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 (1951)이다. 영화는 스트리퍼, 카르멘이 고향으로 돌아오며 생기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뮤지컬이다.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영화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작곡가인 키노시타 타다시는 감독 키노시타의 친동생으로 <여자 이야기> (1954), <카르멘 사랑에 빠지다> (1952) 등 케이스케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곡가는 이번 전시에서 일본 영화의 황금기에 '가장 약진한 아티스트'로 소개되었던 아쿠타가와 야스시이다. 그는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음악가로 그의 저서 <음악의 기초>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일본 영상자료원 전시 이벤트를 통해 상영되는 그의 작품은 총 4편으로 그중 한편인 <내면의 굴레> (1955)는 아쿠타가와의 음악적 실험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시카와 다쓰조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아쿠타가와는 단일 악기, 챔발로를 이용해 음악을 완성하는 시도를 했고, “챔발로를 거의 최초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 음악사에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전시장은 영화의 스틸 사진들과 사운드트랙의 커버들, 영화의 홍보 전단지 등으로 빼곡했다. 비교적 서둘러서 둘러보고 해설을 읽는 데만도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전시장을 떠나면서, 자료원을 떠나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배가 고프다는 생각 이외에) 일본이 자국 영화, 특히 고전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들이는 정성이었다. 이는 자료원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자료원을 찾는 방문객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통해서도 느낀 점이었다. 물론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뛰어난 기획과 자료 복원들로 성취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에 비해 관객들의 (고전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전은 위대하다. 한형모의 <자유부인>과 박남옥의 <미망인>은 영화 연구자와 평론가들, 일부 매니아 층에서만 소구될 영화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그리고 세계 영화사에서도 언급될 수 있을 만한 가치와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번 일본 영상자료원 방문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를 넘어, 영화에 대한 예찬과 사랑이 담긴 러브 레터를 읽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한국의 영상자료원이 보유한 고전들, 그리고 그들이 써 내려가는 ‘러브 레터’ 역시 더 많은 한국 관객을 통해 공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