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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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
<코끼리 없는 동물원>김정호 지음, MID, 2021
왜 판다는 사랑하고, 사육 곰은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판다 좋아하세요? 사육 곰은요?
<코끼리 없는 동물원>김정호 지음, MID, 2021
왜 판다는 사랑하고, 사육 곰은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판다 좋아하세요? 사육 곰은요?
주말 낮, 시내 대형 쇼핑몰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200석 가까운 상영관에 관객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영화 제목은 '생츄어리'. 청주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생츄어리’란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편안하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을 뜻한다. 동물원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 구조 후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를 꿈꾸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길러지던 사육 곰을 구조해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최태규 수의사 등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그중 한 명인 김정호 수의사의 에세이다.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재직하며 동물원의 동물 이야기와 동물원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고민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청주동물원은 ‘앙상한 갈비뼈 사자’로 언론을 오르내렸던 사자 바람이,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 등 동물원 동물에 관한 뜨거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며,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동물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주동물원이 처음부터 남달랐던 건 아니다. 여느 동물원처럼 건립 당시에는 동물원의 제1 기능을 위락에 두고 그에 맞는 행정을 해왔다. 전시 종을 늘리기 위해 구입한 백로는 동물판매업자가 나무를 흔들어 떨어진 새끼 백로 중 살아남은 개체들이었다. 사랑새 100마리를 사들여서는 먹이주기 체험을 위해 사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표범 ‘직지’는 제법 귀여운 어린 시절에는 전시장에서 지내다 덩치가 커지자 사육장으로 옮겨졌다. 비좁은 사육장에서 직지의 정형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동물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것으로 수의사의 본분을 다한 것일까, 김정호 수의사는 고민 끝에 조금씩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갇혀 있던 다람쥐는 동물원 내에 풀어주고, 물새장 가까이에 있던 관람로를 없애고, 전시장의 풀이 제멋대로 자라 동물의 모습이 가려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관람객의 편의보다 동물의 편의를 우선했다. 그의 욕심은 ‘동물이 살기 좋은 동물원’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김정호 수의사는 사육 곰 세 마리를 구조해 청주동물원으로 데려온 사례를 언급하며 청주동물원이 ‘생추어리’가 될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판다 푸바오에게 전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귀엽다는 이유로, 멸종위기종이라는 이유로, 중국으로 돌아가면 영영 못 본다는 이유로 푸바오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동안,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삵, 수달, 고라니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농수로에 갇혀 죽고, 올무에 걸려 다리가 잘리고, 독극물에 중독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판다의 얼굴 위로 영화에서 본 사육 곰의 얼굴이 겹쳐진다. 비좁고 더러운 사육장에 갇혀 오물을 잔뜩 묻힌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던 곰의 얼굴. 우리에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책 <코끼리 없는 동물원>과 영화 '생츄어리'를 통해, 김정호 수의사를 통해 내가 얻은 질문이다.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
‘생츄어리’란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편안하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을 뜻한다. 동물원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 구조 후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를 꿈꾸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길러지던 사육 곰을 구조해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최태규 수의사 등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그중 한 명인 김정호 수의사의 에세이다.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재직하며 동물원의 동물 이야기와 동물원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고민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청주동물원은 ‘앙상한 갈비뼈 사자’로 언론을 오르내렸던 사자 바람이,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 등 동물원 동물에 관한 뜨거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며,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동물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주동물원이 처음부터 남달랐던 건 아니다. 여느 동물원처럼 건립 당시에는 동물원의 제1 기능을 위락에 두고 그에 맞는 행정을 해왔다. 전시 종을 늘리기 위해 구입한 백로는 동물판매업자가 나무를 흔들어 떨어진 새끼 백로 중 살아남은 개체들이었다. 사랑새 100마리를 사들여서는 먹이주기 체험을 위해 사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표범 ‘직지’는 제법 귀여운 어린 시절에는 전시장에서 지내다 덩치가 커지자 사육장으로 옮겨졌다. 비좁은 사육장에서 직지의 정형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동물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 것으로 수의사의 본분을 다한 것일까, 김정호 수의사는 고민 끝에 조금씩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갇혀 있던 다람쥐는 동물원 내에 풀어주고, 물새장 가까이에 있던 관람로를 없애고, 전시장의 풀이 제멋대로 자라 동물의 모습이 가려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관람객의 편의보다 동물의 편의를 우선했다. 그의 욕심은 ‘동물이 살기 좋은 동물원’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김정호 수의사는 사육 곰 세 마리를 구조해 청주동물원으로 데려온 사례를 언급하며 청주동물원이 ‘생추어리’가 될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판다 푸바오에게 전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귀엽다는 이유로, 멸종위기종이라는 이유로, 중국으로 돌아가면 영영 못 본다는 이유로 푸바오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동안,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삵, 수달, 고라니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농수로에 갇혀 죽고, 올무에 걸려 다리가 잘리고, 독극물에 중독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판다의 얼굴 위로 영화에서 본 사육 곰의 얼굴이 겹쳐진다. 비좁고 더러운 사육장에 갇혀 오물을 잔뜩 묻힌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던 곰의 얼굴. 우리에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책 <코끼리 없는 동물원>과 영화 '생츄어리'를 통해, 김정호 수의사를 통해 내가 얻은 질문이다.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