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 칼럼] 연금개혁, 정부안부터 내라
연금개혁 논의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제1 야당 대표는 연금개혁을 하자고 하는데 정부·여당은 수세에 몰린 채 똑 부러진 대안을 못 내고 있다. 야당안은 개혁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인데 여권은 받을지 말지를 두고 적전분열 양상을 보였다. 그나마 21대 국회 막바지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처리하는 건 피했지만 정부·여당이 연금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오리무중이다. 연금개혁은 한시가 급한데 이러다 미궁에 빠질까 걱정이다.

현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소득의 9%만 보험료로 내고 40%(40년 가입 기준)를 받아 가도록 돼 있다. 이대로면 2055년 고갈되기 때문에 젊은 층은 ‘폰지 사기’라며 불신한다. 파국을 피하고 미래세대에 빚을 넘기지 않으려면 기성세대가 더 내고 적게 받거나, 적어도 더 내고 그대로 받는 고통 분담을 감수해야 한다. 스웨덴처럼 아예 낸 만큼 받도록 연금 구조를 고치고 기초연금을 저소득층에 두텁게 몰아주도록 바꾸는 것도 대안이다.

야당의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안(13%-44%안)은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야당안대로면 연금 고갈 시점은 9년 미뤄지는 데 그치고 현재도 1825조원(GDP의 80.1%)에 달하는 미적립 부채는 2050년 6366조원(123.2%), 2093년 4경250조원(313.3%)으로 불어난다(전영준 한양대 교수). 연금 지급을 위해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이 급증하는 것이다. 13%-44%안은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과도 거리가 멀다. 직장인은 보험료의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한다. 보험료 인상분의 절반인 2%만 더 내면 받는 돈은 4% 늘어난다. 그래서 야당이 13%-44%안을 미는 건 표 계산이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연금 고갈을 걱정하는 미래세대를 달래려고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을 법에 못 박자는 야당 측 주장도 표를 의식한 조치로 들린다. 말이 좋아 국가 보장이지 연금개혁이 안 된 상태에서 연금이 펑크 나면 결국 미래세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연금개혁 논의가 이렇게 흐르게 된 건 정부 책임도 크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연금개혁안을 제출할 때 모수개혁 시나리오만 24개나 늘어놓는 등 정부안을 뚜렷이 제시하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넘겼다. 그 결과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과정에서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득세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토대로 13%-44%안을 꺼냈다. 정부·여당은 처음엔 13%-43%안으로 맞서다가 나중엔 ‘구조개혁도 같이 하자’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조개혁을 하자는 게 틀린 건 아니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그동안 어떤 구조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밝히지 않다가 야당이 모수개혁을 밀어붙이자 불쑥 꺼냈다는 점이다. 그러니 국민에겐 생뚱맞게 들리고 대통령의 연금개혁 의지마저 의심받는다.

따지고 보면 연금개혁을 국회에 떠넘긴 것부터 실수였다. 연금개혁을 위해선 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국회 협의는 필수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선 정부가 총대를 메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두 차례 연금개혁은 모두 정부가 주도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을 미뤘다.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윤석열 정부도 연금개혁을 하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말잔치뿐이다. ‘임기 내 연금개혁안을 마련하겠다’는 건 지금 안 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연금개혁에 진심이라면 국회에 미루지 말고 최대한 빨리 정부안부터 내야 한다. 모수개혁이든, 구조개혁이든 정부가 생각하는 개혁안을 낸 뒤 그걸 가지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게 정공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