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바람에 흔들려도 기분좋게 살아가는 꽃이 되길 바라요"
"내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리움이라 말하고싶어//
이승의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먼 길 떠나는 날//
그녀는/ 그리운 게 많아/ 그리움을 시로 쓰다/ 마침내 누군가에게/ 그리운 존재가 되었다고/그리 말해주는 건 어떨지"
(이해인, <그리움> 中)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소중한 보물들> 출간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며 이해인 수녀(79)는 책에 실린 시 중 하나인 <그리움>을 낭송했다. 이 책은 이해인 수녀가 수녀원에 입회한지 6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그동안 쓴 일기와 편지, 칼럼, 신작 시 10편 등을 엮은 단상집이다. 법정 스님과의 일화와 김수환 추기경의 서간문, 10대 초등학생부터 90대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나눈 덕담과 추억 등이 담겨 있다.

'시 쓰는 수녀'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내가 쓴 시 깊은 곳에 종교와 신성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언어로 별이나 꽃, 나무, 돌맹이 등 친숙한 사물을 노래한 것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녀원에 들어온 이후 꾸준히 남긴 메모들이 담긴 노트 184권 중 그간 발표하지 않은 글을 모아 책을 냈다"며 "모든 이를 보물로 생각하고, 보물을 캐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을 담아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 ""바람에 흔들려도 기분좋게 살아가는 꽃이 되길 바라요"
책에는 이해인 수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도 실려 있다. 1960년대에 쓰여진 편지에서 어머니는 딸을 '꼬마 수녀' 혹은 '애기 수녀'라고 부르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리운 수녀님'으로 호칭이 변한다. 이해인 수녀는 "오늘의 내가 된 건 어머니의 희생과 (수녀가 된) 언니의 기도 덕분"이라며 "돌아가신지 오래됐는데도 곁에 수호천사로 남아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해인 수녀에게 시를 읽고 쓰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 나이까지 소녀처럼 살 수 있는 건 시를 많이 읽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며 "감동과 감탄을 많이 하는 연습을 하다보니 내 안에 소녀가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는 수도생활을 지탱하게 해 준 없어선 안 될 기도 같은 존재"라며 "50년 가까이 시를 쓰고 보니 시가 나 대신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름천사'같은 역할을 해줬다"고 덧붙였다.

팔순에 가까운 수녀이자 시인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는 "<어린왕자> 같은 동화도 쓰고 싶고, 부산에 있는 '해인글방'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 ""바람에 흔들려도 기분좋게 살아가는 꽃이 되길 바라요"
한시간 반에 가까운 기자회견이 끝날 때쯤 이해인 수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시 하나를 읊으며 인사를 갈음했다. "바람에 흔들려도 기분좋게 살아가는 꽃이 되길 바란다"면서.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정을 나누면서/ 바람에도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꽃이 되리라"
(이해인, <봄 일기> 中)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