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년 6·10항쟁 기념 토론회…이재오 "韓 민주주의 가장 큰 위기는 지금"
성낙인 "외형적 민주화 이뤘지만, 권위적 대통령 모습 벗어나지 못해"
토론회서 "'디지털 독재' 대응 고민"…"성평등 돼야 저출산 극복"
이재오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해야"…성낙인 "여야 갈등 우려"(종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37주년 6·10민주항쟁 기념: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에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한국 민주주의 37년, 성찰과 모색'을 주제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과 함께 기조 대담에 참여했다.

대담에서 이 이사장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지금"이라며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 분열을 해소해야 했으나, 정작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전국에서 민주주의를 잘해보자고 6·10 민주항쟁이 일어났다"며 "그동안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지역, 빈부, 세대 등 각종 갈등이 심화한 게 오늘날의 현주소"라고 우려했다.

첨예해진 사회적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현 제도를 지목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격차로 신승했지만, 나라의 전권을 쥐었다"며 "이 때문에 대통령 임기 내내 여야가 협치는커녕 다음에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개헌을 이루기 힘들고, 현 제도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여야의 '양보'라고 했다.

양당 모두 '우리가 권력을 잡았으니 무조건 의견을 따르라'고 버틸 게 아니라,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상대 진영과 합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2년 후, 3년 후에 선거는 계속 이어진다"며 "그때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가.

국민의힘은 안 진다는 보장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러한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분권'에 핵심을 둔 개헌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외교·통일·국방 분야는 대통령이 맡되, 내치는 국무총리에 일임하고, 지자체에 일부 권리를 이양하는 등 현 제왕적 대통령체제를 '분권적 대통령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현 정부가 '내치는 내각에 맡기겠다' 등의 획기적인 안을 제시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며 "임기 말에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한다면 다음 정권에선 새 법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갈등을 키우는 또 다른 원인은 현대판 매관매직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공천제도"라며 "여야가 결단해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의 공천자는 지역 주민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담에 함께 참석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도 "1987년 이후 대통령과 적대적인 의회 다수파가 탄생한 적은 있었지만, 단일 정당이 재임 기간에 다수파를 형성한 적은 지난 4월 총선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여야 갈등은 더 과격한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재오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해야"…성낙인 "여야 갈등 우려"(종합)
그는 한국이 두 차례에 걸쳐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를 이뤘을 정도로 성공한 민주주의의 외연을 보여줬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성 전 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 도어스테핑을 진행했으나 말썽이 생기자 이후 2년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예는 거의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아들들의 구속으로 동력을 잃었던 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스캔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을 언급한 그는 "한국이 외형적으로 민주화가 됐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권위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평생을 헌법학자로 살아오면서 갖게 된 기본 소신은 바로 '현실을 도외시하는 규범과 제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라며 "현재 (여러 실정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이재오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해야"…성낙인 "여야 갈등 우려"(종합)
이날 행사에는 우리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토론도 이어졌다.

'갈등극복과 국민통합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발표에서 최응식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최근 들어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위장시킨 이른바 '가짜 3.3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증가하지만,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와 성평등 민주주의 퇴조에 깊은 우려를 전했다"며 "정부와 언론은 저출산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을 내놓지만, 저출산 극복에 성공한 선진국에선 성평등이 전제됐다는 점은 성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권기석 한밭대 교수는 "AI로 작성한 선거 캠페인·보도자료나 지지자 식별 등의 기능이 신진정치 그룹의 진입장벽을 낮출 것"이라며 "당원들의 의사가 스마트폰을 통해 신속하게 수렴되면서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리라 본다"고 예측했다.

권 교수는 "반면에 빅테크 기업과 국가의 결탁으로 시민 감시 강화나 정치 성향에 대한 선택적 노출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디지털 독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날 행사는 사업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이재오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해야"…성낙인 "여야 갈등 우려"(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