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노동조합에 과도하게 배정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정상화를 추진하다 노조 반발에 부딪히며 산업현장 곳곳에서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근로시간면제 위반 사업장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정부도 올 들어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업들만 속앓이하고 있다. 노동계는 한발 더 나아가 근로시간면제 제도 폐지까지 주장하며 다음달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가능 인원 8명인데 35명이 ‘전임자’

타임오프 정상화 막은 노조…산업현장 곳곳서 파열음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서울교통공사 등에서 근로시간면제를 놓고 올 들어 노사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근로시간면제는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 간부(전임자) 등이 노조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사용자가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노조 규모에 비례해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도를 넘겨 임금을 지급하면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돼 사업주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선 노조가 법을 위반한 채 전임자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노사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부품인 섀시 모듈 등을 납품하는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모트라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현대모비스의 협력업체 9개를 통합해 출범한 회사다. 현행법상 근로시간면제 인원 한도는 8명인데 노조는 35명에 달하는 전임자를 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 명령을 받은 회사는 노조에 정상화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회사는 지난 4월 전임자들에게 현장 복귀명령을 내리는 강수를 뒀지만 노조는 특근 중단 등 쟁의에 나서겠다며 맞섰다.

업계 관계자는 “모트라스 작업이 중단되면 현대차·기아가 하루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도 근로시간면제에 따른 갈등으로 속앓이하고 있다. 회사는 고용부 시정명령에 따라 법적으로 가능한 1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임자에게 복귀명령을 내렸지만 노조는 이전처럼 40명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도 현행법상 1.5명인 전임자 수를 예전처럼 6명으로 유지해 달라며 원청을 상대로 상경투쟁을 예고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경북 경주, 울산 등 중견·중소 제조업체가 밀집한 지역은 근로시간면제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잘못은 노조가, 처벌은 기업이

고용부는 근로시간면제 제도 정상화를 목표로 지난해 9월 20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109곳의 위법사항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적발된 기업들은 전임자를 대상으로 업무 복귀명령을 내렸지만 노조는 되레 복귀명령 취소와 근로시간면제 확대를 임단협 쟁점으로 올리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산업계는 노조 요구로 근로시간면제를 과도하게 부여해도 사업주만 형사 처벌받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사업주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 이를 요구한 노조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경주 지역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은 “현장 복귀명령을 노조가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단속을 피하기 위해 노조 지원에 대한 이면계약을 요구하는 등 상황이 악화했다”고 말했다.

제조업 분야의 최대 산별 노조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도 다음달 근로시간면제 폐지를 내걸고 전면 총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근로시간면제가 올 하반기 노사관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