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년부터 지하 500m 깊이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스템의 성능을 실험·연구하는 시설을 짓는다.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방폐장법) 제정이 무산되자 정부가 우선 할 수 있는 대책을 시행해 최종 건설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함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용 지하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부지 공모를 시작한다고 18일 밝혔다. 연구용 지하 시설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과 비슷한 심도인 지하 약 500m에서 한국 고유의 암반 특성과 한국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스템의 성능 등을 실험한다. 고준위 방폐장과는 별개 부지에 건설하는 ‘순수 연구시설’이다. 방폐물을 땅에 묻지 않고도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열과 지하수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실험·연구한다.

방폐장법이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면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자 정부가 대응책을 낸 것이다.

정부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제출한 유치 계획서와 현장 부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연내 부지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지자체가 별도로 받는 보조금은 없지만 시설 건설 등 경제적 효과 유발을 고려해 관심을 표한 지자체가 여러 곳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정부가 추산한 경제적 기대효과는 1000억~3000억원이다.

일각에선 연구시설이 고준위 방폐장이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암반 등 비슷한 지질 환경을 갖춘 다른 지역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연구시설 건설은 고준위 방폐장과는 완전히 별개 과정으로 진행된다”며 “특정 지자체가 ‘두 개 다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연구시설이 들어섰다고 해서 고준위 방폐장이 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2026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2032년 준공할 계획이다. 운영 기간은 2030년부터 약 20년간으로 예상된다. 건설에 드는 사업비는 5138억원으로 추산되며 정부는 내년 상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관련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