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약진하는 유럽의회, '녹색 반발' 거세질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유럽 내에서 녹색 정치에 대한 반발을 일컫는 ‘그린래시(Green + backlash)’가 점점 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캡션)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성향 정당이 크게 약진하며 유럽 내 기후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가 막을 내렸다. 반전은 없었다.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EPP)은 제일당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회 내에서도 의석수가 많은 주요국 정치권에서 극우 정당이 역대 최대 의석을 확보했다. 지난 2019년 이후 유럽 내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녹색 물결’이 한풀 꺾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그린딜, 그럼에도 높아지는 우려
지난 2019년 12월, 유럽연합(EU)은 역사적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야심 찬 목표였다. 온실가스배출량 감축뿐 아니라 환경과 경제를 조화시키며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5년간 무수히 많은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2021년 7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탄소감축 법안 ‘핏 포 55(Fit for 55)’가 대표적 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안 패키지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EU 배출권거래제와 연계해 2026년부터 탄소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역내 수입품에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도입하는 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반발을 불러왔다. 이른바 녹색(green)과 반발(backlash)이라는 의미를 합친 그린 래시, 즉 ‘녹색 반발’이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상황에서 러·우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유럽 사람들은 친환경 정책의 그들 ‘지갑’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값비싼 대가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 전역에서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EU의 환경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틈타 강경 우파들은 ‘친환경 정책’의 전환 속도를 늦추겠다는 약속을 ‘정치적 자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회 ‘우파의 약진’으로 EU 기후 정책 강화라는 큰 방향이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EU 내 기후 환경 정책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유럽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법안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EU의 규정이나 지침은 발표되기 전 유럽의회가 EU 정부의 합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선출된 새로운 유럽의회, 새로운 집행위원회, 회원국은 앞으로 몇 달 안에 2040년 배출량 목표에 합의해야 하며, 이는 2050년까지 기후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굵직한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5년은 유럽 내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키를 쥔 인물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다. 중도우파인 EPP 소속이긴 하지만 집행위원장 연임을 노리는 그로서는 중도우파까지 확장되는 다양한 정치 집단의 지지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FT)를 비롯한 외신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EU의 기후변화 목표 유연화를 시사하는 등 극우 동맹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내연기관차 폐지’ 등 재검토 거론되는 법안은
이 같은 분위기 변화는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인 지난 6월 10일 “유럽의회 선거 직후 우파가 크게 약진하며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법안의 재검토가 거론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EU는 지난 3월 2035년부터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연기관차 퇴출 법안을 최종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동안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이 예외 조항을 법안에 포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극우 성향의 정당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독일 정부는 그린 수소와 CO₂를 합성해 제조한 연료인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도 CO₂ 저감 효과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판매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탈리아 정부도 내연기관차 완전 판매 금지 시점을 EU가 정한 목표보다 늦추기 위해 프랑스, 독일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관련 쟁점은 다시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유럽의회 제일당인 EPP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내연기관차 퇴출 방침은 실수”라고 언급하며 조만간 이 방침을 되돌리는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가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 수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3년 12월 유럽의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채택된 EU의 중요 원자재법도 극우 세력의 득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집행위원회는 이 법안과 관련한 이행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특히 에너지전환과 디지털화에 필요한 금속과 광물의 국내 추출, 가공, 재활용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 극우 성향의 의회는 채굴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보호 장치를 약화시키는 새로운 채굴 규정을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관련 업계는 물론 지역사회, EU 규제 기관 및 환경단체 간 신뢰를 구축하고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이 약화될 수 있다.
극우 정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또 다른 법안은 2024년 2월 의회에서 채택한 자연 복원법이다. 2030년까지 EU 육지와 해역의 최소 20%, 2050년까지 모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극우 단체는 이 법이 농부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농부들의 거리 시위와 맞물리며 이 법안과 관련한 논의의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엄격한 환경 분야로부터 ‘농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에서 환경 정책을 맡고 있는 체코의 알렉산드르 본드라 의원은 “앞으로 5년 동안 기후 정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며 “녹색 합의를 운전에 비유하면, 새로 구성되는 유럽의회는 가속페달뿐 아니라 운전대와 브레이크페달도 사용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CR은 이 외에도 EU 집행위가 지난 2024년 2월에 제안한 2040년까지 90%의 탄소감축 목표에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EU는 2023년 12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전 세계적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촉구하며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방안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유럽이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EU가 기후 정책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 역할을 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정흔 객원기자=런던
지난 6월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가 막을 내렸다. 반전은 없었다.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EPP)은 제일당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회 내에서도 의석수가 많은 주요국 정치권에서 극우 정당이 역대 최대 의석을 확보했다. 지난 2019년 이후 유럽 내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녹색 물결’이 한풀 꺾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그린딜, 그럼에도 높아지는 우려
지난 2019년 12월, 유럽연합(EU)은 역사적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야심 찬 목표였다. 온실가스배출량 감축뿐 아니라 환경과 경제를 조화시키며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5년간 무수히 많은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2021년 7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탄소감축 법안 ‘핏 포 55(Fit for 55)’가 대표적 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안 패키지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EU 배출권거래제와 연계해 2026년부터 탄소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역내 수입품에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도입하는 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반발을 불러왔다. 이른바 녹색(green)과 반발(backlash)이라는 의미를 합친 그린 래시, 즉 ‘녹색 반발’이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상황에서 러·우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유럽 사람들은 친환경 정책의 그들 ‘지갑’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값비싼 대가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 전역에서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EU의 환경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틈타 강경 우파들은 ‘친환경 정책’의 전환 속도를 늦추겠다는 약속을 ‘정치적 자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회 ‘우파의 약진’으로 EU 기후 정책 강화라는 큰 방향이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EU 내 기후 환경 정책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유럽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법안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EU의 규정이나 지침은 발표되기 전 유럽의회가 EU 정부의 합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선출된 새로운 유럽의회, 새로운 집행위원회, 회원국은 앞으로 몇 달 안에 2040년 배출량 목표에 합의해야 하며, 이는 2050년까지 기후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굵직한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5년은 유럽 내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키를 쥔 인물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다. 중도우파인 EPP 소속이긴 하지만 집행위원장 연임을 노리는 그로서는 중도우파까지 확장되는 다양한 정치 집단의 지지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FT)를 비롯한 외신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EU의 기후변화 목표 유연화를 시사하는 등 극우 동맹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내연기관차 폐지’ 등 재검토 거론되는 법안은
이 같은 분위기 변화는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인 지난 6월 10일 “유럽의회 선거 직후 우파가 크게 약진하며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법안의 재검토가 거론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EU는 지난 3월 2035년부터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연기관차 퇴출 법안을 최종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동안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이 예외 조항을 법안에 포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극우 성향의 정당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독일 정부는 그린 수소와 CO₂를 합성해 제조한 연료인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도 CO₂ 저감 효과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판매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탈리아 정부도 내연기관차 완전 판매 금지 시점을 EU가 정한 목표보다 늦추기 위해 프랑스, 독일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관련 쟁점은 다시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유럽의회 제일당인 EPP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내연기관차 퇴출 방침은 실수”라고 언급하며 조만간 이 방침을 되돌리는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가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 수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3년 12월 유럽의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채택된 EU의 중요 원자재법도 극우 세력의 득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집행위원회는 이 법안과 관련한 이행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특히 에너지전환과 디지털화에 필요한 금속과 광물의 국내 추출, 가공, 재활용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 극우 성향의 의회는 채굴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보호 장치를 약화시키는 새로운 채굴 규정을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관련 업계는 물론 지역사회, EU 규제 기관 및 환경단체 간 신뢰를 구축하고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이 약화될 수 있다.
극우 정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또 다른 법안은 2024년 2월 의회에서 채택한 자연 복원법이다. 2030년까지 EU 육지와 해역의 최소 20%, 2050년까지 모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극우 단체는 이 법이 농부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농부들의 거리 시위와 맞물리며 이 법안과 관련한 논의의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엄격한 환경 분야로부터 ‘농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에서 환경 정책을 맡고 있는 체코의 알렉산드르 본드라 의원은 “앞으로 5년 동안 기후 정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며 “녹색 합의를 운전에 비유하면, 새로 구성되는 유럽의회는 가속페달뿐 아니라 운전대와 브레이크페달도 사용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CR은 이 외에도 EU 집행위가 지난 2024년 2월에 제안한 2040년까지 90%의 탄소감축 목표에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EU는 2023년 12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전 세계적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촉구하며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방안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유럽이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EU가 기후 정책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 역할을 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정흔 객원기자=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