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진 국수·민족주의 정서에 "중국서 먼저 발표해 국가 위상 제고" 목소리 커져
달 기원·구조 파악 매머드급 연구물 가능성…"中중심 활용은 편협한 생각" 반론도

중국이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샘플'을 채취한 '창어 6호'의 탐사 활동 논문을 영어로 서방 과학 저널에 먼저 발표할지 아니면 중국 내 출판을 택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9일 보도했다.

'세계 첫 달뒷면 탐사'논문 발표 국내서? 서방저널? 고민하는 中
보도에 따르면 창어 6호 달 탐사를 주도한 중국 국가항천국(국가우주국)은 해당 논문을 어디에 먼저 공개할 것인지를 숙고 중이다.

중국 내에서도 중요 과학 연구는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 또는 영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하는 게 관례지만, 중국 내 과학잡지를 통해 중문으로 발표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중국 최초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던 투여우여우 중국중의과학원 교수는 관련 논문을 자국 내 과학 잡지에 중문으로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최근 몇 년 새 거세진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정서가 선(先) 중문 논문 발표의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다.

2019년 말 당시 중국 교육부 산하 과학기술개발센터의 리즈민 소장은 "정부 돈을 지원받은 연구 논문은 국가 언어로 출판돼야 한다"며 "그래야 자금을 지원한 측이 더 쉽게 연구를 검토하고 중국 내 상대와 교류를 촉진해 국가 과학 소양을 향상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창어 6호가 지난 2∼3일 달 뒷면 '남극-에이킨 분지'에서 무게 2㎏ 분량의 토양·암석 시료를 채취해 귀환한 뒤 이를 분석한 이번 논문은 달 기원과 구조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돼 국제사회 이목이 쏠릴 전망이어서 중국에서 먼저 발표돼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중국 국립천문대 소속 천문학자인 덩리차이는 "독립적이고 최첨단인 국가적 주요 과학 프로젝트에 대해선 중국을 부각하고 중국 학술지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출판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과 2010년 창어 1호와 2호에 이어 2013년 달 착륙에 성공한 창어 3호, 2019년 달 남극 부근 뒷면 착륙에 성공한 창어 4호와 2020년 창어 5호 그리고 이달 초 창어 6호에 이어 2026년과 2028년에 각각 창어 7·8호 발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관련 논문의 중국 내 우선 발표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과학원(CAS) 산하 과학 저널 출판사인 사이언스 차이나 프레스(SCP) 소속 학자는 "중요 연구 결과를 중국 중심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편협하다"면서 "연구자금과 자원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세계 첫 달뒷면 탐사'논문 발표 국내서? 서방저널? 고민하는 中
SCMP는 2020년 12월 17일 창어 5호가 달 탐사 과정에서 채취한 표본 1.73㎏을 분석한 논문은 그다음 해인 2021년 10월 사이언스에 영문 논문으로 발표됐고, 같은 달 관련 논문 3건도 네이처에 게재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중국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팀은 코로나19 발병 초기인 2020년 1월 미국 의학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코로나19 역학 관련 연구 논문을 싣기도 했다.

SCMP는 "중국 과학계에서도 영어 출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자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는 가교 구실을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중국어 논문 출판을 꺼리는 경향"이라면서 "이는 국제적 수용을 위한 침묵의 희생"이라고 짚었다.

이 신문은 "뉴턴,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의 중요 논문이 각각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출판됐지만 20세 중반부터 세계 과학계에 변화가 생겼다"며 "이제 대부분 과학 연구는 세계 인구의 18%만이 사용하는 영어로 출판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