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드라이버는 십자 나사만 푼다… 세상 이치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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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
정답일지는 모르지만 틀리지는 않는 법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정답일지는 모르지만 틀리지는 않는 법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수학자에게 배우는 ‘중립 놀이’
수학자는 증명하는 사람이다. 대단한 수학자이든 ‘덜’이 붙은 쪽이든 추상의 극치인 수학 이론에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한다. 허투루 아무 가설에나 호기롭게 베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자기 자신과 미리 싸운다. 말 그대로다. 어떤 이론을 증명하려 한다면, 낮에는 그것을 증명하려 애쓰고 밤에는 반증하려 애쓴다. 요즘 말로, “중립 기어” 제대로다.왜 어긋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라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신이 결국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명제가 실제로 거짓이라면, 당신의 노력은 모조리 헛수고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더 심오한 이유가 있다. 만일 어떤 명제가 실제로 참인데 당신이 그것을 반증하려고 애쓴다면, 당신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나쁜 것으로 여기도록 배웠지만, 모든 실패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틀리지 않는 법> 중에서
수학자처럼 별나게 진실 찾기
수학자 엘렌버그가 주장하는 역설로써 진실 찾기는 두 권의 픽션을 인용하며 계속된다. 이 두 픽션은 거짓말 조금 보태 모든 영미권 논픽션에서 인용되는 픽션이 되겠다. 사실보다 더욱 사실 같은 가짜, 진실에 가까운 허구라는 걸까? 그중 하나가 SF 드라마 <스타 트렉>이다.<스타 트렉>의 제임스 커크 (우주 함대) 선장이 독재적인 인공지능들을 무력화시키는 원리가 '역설'이다. 선장은 그들에게 역설을 입력함으로써 그들의 추론 모듈이 기진맥진하다가 멎어버리게 만든다. (...) 하지만 커크 선장의 수법은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런 방식으로 추론하지 않는다. 수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조차. 인간은 모순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딘다. <틀리지 않는 법> 중에서
예민한 수학자들은 일반적인 말에서도 모순을 찾아내는데, AI는 한술 더 뜬다는 얘기다. 생성형 AI에게 “문 닫고 들어와.”라고 물어봤더니,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행위는 위험합니다”라고 답한다. 별나긴 한데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다.
이 책에 인용된 또 다른 ‘베스트 인용 도서상’은 저자의 이름을 대는 게 낫다. 수많은 저자들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소설 <시스템의 빗자루>를 언급하는 듯하다.
월리스는 수학자의 방식으로 역설들과 씨름했다. 일단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를 모두 믿자. 거기서부터 나아가는 것이다. 한 발 한 발, 덤불을 쳐내고,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분리하며, 모순되는 두 가설을 마음속에 나란히 놓아 두고서 각각을 대립되는 상대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틀리지 않는 법> 중에서
아는 함수가 여럿일 때의 장점
<틀리지 않는 법>의 저자는 십자드라이버 하나만으론 기계의 모든 나사를 풀 수 없지 않느냐, 여러 가지 수학적인 사고법을 활용해서 윤택한 삶을 살아보라 권한다. 이를테면 아는 함수가 여럿이면 사는 데 보탬이 된다. 다다익선이라는 선형 함수에서 벗어나 행복의 문제를 최적점이 있는 포물선 이차 함수로 생각한다면? 지지부진한 과정이 답답한 학습자라면, 어느 순간을 지나 급성장하는 지수함수를 떠올려보자. 저자의 말마따나 모든 기계를 십자드라이버로 분해하려고 나서면 나사를 망가뜨린다. 그런데 말이다. 이 새 도구는 값싸지 않아서 얼마쯤 집중력이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참신하지만 생소하다. 그럴 땐 이런 위로가 도움이 된다. 시집을 읽으며 전부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으스댈 사람은? 수학책과 과학책도 마찬가지다.정소연 세종서적 편집주간